자율주행은 일반적으로 주변 사물의 행동을 예측하고 위치를 파악하며, 안전 주행 경로를 계산해 의사결정을 내리는 구도다. 센서로 주변 교통 상황을 감지하고 위치를 파악하는 매핑은 부품의 영역이고, 의사결정은 소프트웨어 영역이다. PC에서 중앙처리장치(CPU) 역할이 가장 중요하지만 자율주행에선 센서와 레이더 등 부품이 더욱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만큼 자율주행차는 기술이 많고 독자적으로 할 수 없는 분야이기도 하다. 동맹이 자연스레 형성되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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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보쉬 동맹, 완성차 주목

현재 가장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동맹은 엔비디아(NVIDIA) 동맹이다. 엔비디아는 인공지능(AI)을 처리하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기술을 처음 구현한 업체다. 기존의 CPU로 처리할 수 없는 방대한 용량의 데이터를 GPU로 해결했다. 엔비디아는 여기에 세계 최대 부품업체인 보쉬와 협약을 맺고 인공지능 자율주행 시스템 ‘엔비디아 드라이브 PX2’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레벨4(완전자율직전) 수준의 자율주행을 위한 AI 기반의 차량용 슈퍼칩(자비에르)이다. 드라이브 PX2는 노트북 150대분의 처리 성능과 최대 12대의 카메라 및 각종 센서에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여기에 포함되는 부품들은 보쉬가 개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부품회사들의 각종 경험이 자율주행차 개발에서도 가장 큰 도움이 된다”며 “엔비디아 동맹의 핵심 기업은 오히려 보쉬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차량용 슈퍼칩 개발사와 세계 최대 부품사의 결합에 완성차 업체들이 눈독을 들이는 건 당연하다. 엔비디아 동맹에 자동차 업체가 유독 많은 건 이 때문이다. 독일 폭스바겐, 아우디, 다임러벤츠와 도요타 등이 이 동맹에 참여하고 있다.

◆인텔-콘티넨탈 동맹의 도전

엔비디아 동맹에 도전장을 내민 건 인텔이다. 인텔은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 시내에 실리콘밸리 랩을 열고 자율주행차 연구에 본격 뛰어들었다. 컴퓨터 프로세서 종주 기업이란 아성을 지켜내려는 의도다.

인텔은 지난 3월 이스라엘의 화상 인식업체 모빌아이를 153억달러(약 17조원)를 들여 인수했다. 모빌아이는 자동브레이크에 사용되는 화상인식기술에 독보적이다. AI 카메라로 차선과 표지를 인식할 만큼 역량이 뛰어나다. 이 기술을 벌써 300개가 넘는 자동차 모델에서 활용하고 있다. 독일 BMW와 이탈리아 피아트도 이 동맹에 참가했다. 지난달에는 구글의 자율주행차인 웨이모와도 협력한다고 발표했다.

무엇보다 인텔 동맹에는 독일의 자율주행 부품 강자인 콘티넨탈과 ZF가 참여하고 있다. 콘티넨탈은 자율주행 관련 부품 개발에 일찍 뛰어들어 센서와 레이더, 라이더(전자거리측정장치) 등 생산에서 세계 수위를 달리고 있다. 인텔이 자신감을 갖는 것은 바로 콘티넨탈의 기술력이다.

인텔이 생각하는 자율주행차는 하루에 4테라바이트(TB)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움직이는 데이터센터다. 일종의 사물인터넷(IoT) 기기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기업들은 자율주행 동맹을 독자적으로 맺었다. 닛산 혼다 등 자동차 업체 6곳, 덴소 파나소닉 등 부품 회사 6곳이 고정밀 3차원(3D) 지도 등 자율주행에 필요한 8개 기술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힘을 보탰다. 하지만 이 동맹에 참여했던 도요타는 최근 이 동맹을 이탈하고 엔비디아 동맹에 합류했다. 엔비디아 동맹에 참여했던 테슬라는 최근 미 AMD사와 반도체칩 개발을 추진 중이다.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어

도요타가 일본 동맹에서 빠지고 엔비디아에 합류한 것은 AI의 딥 러닝(심층학습)을 둘러싼 개발 경쟁이 격화되면서 그 조류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도요다 아키오 일본 도요타 사장은 자율주행차의 경쟁을 “(어디로 나가야 할 바를 모르는) 해도(海圖) 없는 항해”라고 표현했다. 그만큼 미래가 불투명한 전쟁이기도 하다.

AI 기술의 진보는 갈수록 빨라져 어떤 기술이 주류가 될지 불투명하다. 반도체와 소프트웨어 디바이스 그리고 완성차 업체의 노하우가 모두 중요하다. 그래서 완성차 업체나 부품 업체들이 모든 분야를 독자적으로 개발하는 것을 회피하고 있다. 투자 부담을 줄이고 위험을 분산하는 차원이다.

자율주행이 만드는 미래는 기존 자동차 업체는 물론 정보기술(IT) 클라우드 기업 등 인터넷과 관련한 모든 기업에 새로운 사업 기회와 경쟁, 협력을 낳는다. 이른바 ‘프레너미(frenemy: 협력하면서 동시에 경쟁)’ 구조를 주도하는 것이다. 이럴 때 가장 중요한 건 핵심역량을 갖췄느냐다. 전문가들은 “특정 분야에서 핵심 역량이 있으면 어떤 기업과도 협력할 수 있다”며 “선택과 집중을 통해 기업의 핵심 역량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춘호 선임기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