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그랜저와 일본 혼다의 어코드.국내 중대형 승용차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스테디 셀러'로 꾸준한 인기를 이어가는 모델이다.

2008년형 뉴 럭셔리 모델로 진화한 그랜저는 올 들어 3월까지 차종별 내수 판매 4위,대형차 판매 1위를 달리고 있다.

어코드는 지난 1월 신형 모델을 국내에 출시한 이후 수입차 모델별 판매 1위를 꿰찼다.

3000만원대의 가격에 출시돼 동급의 한국차와 크기,성능,가격까지 비슷한 상황에서 경쟁을 벌인다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컨셉트 바꿔 시장 장악한 그랜저

중대형 승용차 중 최초로 월간 차종별 내수 판매 1위,중대형차 최초 월 1만대 판매 돌파.그랜저가 시장에 처음 나온 2005년 수립한 기록이다.

비교적 가격이 비싼 중대형차 그랜저가 각종 신기록을 낼 수 있었던 비결은 뭘까.

고급 중대형차라는 컨셉트를 바꿔 시장 변화를 선도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초기의 그랜저는 지금처럼 대중적인 차가 아니었다.

그랜저(GRANDEUR)는 '웅장''위대함' 등을 뜻하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운전기사가 딸린 자가용을 굴릴 정도의 고소득층을 겨냥해 개발한 차다.

디자인도 이른바 '각(角) 그랜저'로 불린 1세대 모델은 네모 반듯한 형태로 보수적 성격이 강했다.

운전은 기사가 하고 차 주인은 뒷좌석에 앉는 차였던 그랜저의 기본 개념이 바뀐 것은 1998년에 나온 3세대 모델 '그랜저 XG'부터다.

소득 수준 향상으로 고급차를 직접 몰고 싶어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생겨난,이른바 '하이 오너 드리븐 카(high owner-driven car)' 수요를 겨냥한 모델이었다.

그랜저는 2005년 나온 4세대 모델 'TG'를 통해 본격 대중화 시대를 맞았다.

중후하고 권위적 분위기는 'TG'에 이르러 자취를 감췄다.

대신 부드러운 곡선이 만들어낸 세련미와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이 새로 자리잡았다.

주행 성능도 크게 향상됐다.

정지 상태에서 약 8초 만에 시속 100㎞를 돌파하고 차량 자세 제어장치를 통해 고속 주행과 코너링 때도 안정된 자세를 유지시켜 준다.

열쇠를 몸에 지니고 있기만 하면 문을 열 수 있는 스마트키 시스템,터치스크린 방식의 오디오시스템 등 첨단 편의장치도 대폭 강화됐다.

고객 니즈 흐름을 앞서 이끈 디자인 컨셉트 변화 등을 통해 상품성을 강화하면서 그랜저 판매량은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지난 2월 현대차는 기존 그랜저TG 안팎의 디자인 일부를 개선한 '그랜저 뉴 럭셔리'를 선보이는 등 상품성을 계속 높여가고 있다.



◆저가로 30,40대 공략한 어코드

어코드는 기본에 충실한 차다.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처럼 프리미엄 브랜드가 갖는 카리스마나,미니(MINI) 같은 틈새 브랜드가 갖는 개성은 없다.

그러나 누구라도 큰 불만 없이 이용할 수 있다는 매력을 지녔다.

실내와 트렁크 공간은 가족용으로 쓰기에 모자람이 없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한 수준의 엔진 성능을 갖췄다.

또 3500만~4000만원이란 가격대는 다른 수입차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하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30~40대 중산층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먹히는 이유다. 어코드 운전자들은 1976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누적 판매량이 1600만대에 이르는 혼다의 베스트 셀링카를 탄다는 자부심도 덤으로 얻는다.

기존 모델과 비교하면 신형 어코드의 '가격 대비 가치'는 더욱 커진다.

배기량 2.4ℓ급 모델의 경우 엔진 최고출력이 170마력에서 180마력으로 높아졌다.

배기량 3.5ℓ급 모델의 최고 출력은 275마력으로 기존 3.0ℓ급(240마력)에 비해 14% 높아졌다.

더 밝고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HID 헤드램프를 비롯 강우량에 따라 와이퍼가 작동하는 레인센서 등은 기존 모델에 없던 장치들이다.

부가세 포함 가격은 2.4 모델 3490만원,3.5 모델 3940만원으로 종전과 같다.

◆고급스런 그랜저,성능 좋은 어코드

어코드의 크기는 길이 4945㎜,너비 1845㎜,높이 1475㎜.그랜저는 4895㎜,1850㎜,1495㎜다.

길이에서는 어코드가 조금 길고 폭은 그랜저가 조금 더 넓다.

실내공간 크기를 나타내는 휠베이스(앞.뒤바퀴 사이 거리)는 어코드(2800㎜)가 그랜저(2780㎜)보다 약간 길다.

엔진 배기량에선 그랜저 2.4와 어코드 2.4,그랜저 3.3과 어코드 3.5를 비교해 볼 수 있다.

2.4모델은 어코드가 최고 출력 180마력으로 그랜저(164마력)를 앞선다.

연비도 어코드가 ℓ당 10.9㎞로 그랜저(10.4㎞)보다 낫다.

가격(부가세 포함)에선 그랜저가 경쟁력을 갖고 있다.

그랜저 2.4는 2538만~2693만원으로 3490만원인 어코드 2.4보다 800만~900만원 싸다.

그랜저 3.3과 어코드 3.5를 비교하면 가격 경쟁력에서도 어코드가 뒤지지 않는다.

어코드 3.5의 가격은 3940만원으로 그랜저 3.3 최고사양 모델(3821만원)과의 차이가 120만원에 불과하다.

다만 어코드는 그랜저와 달리 제품의 기본 개념이 고급차가 아니라는 것이 약점으로 꼽힌다.

차량 크기나 성능은 여느 대형차 못지 않지만 실내 디자인이나 오디오 시스템,공조장치 등의 고급스러움은 그랜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그랜저와 어코드를 놓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갈등'에 빠졌다면 이렇게 고민하면 될 것 같다.

'수입차를 타는 기쁨으로 만족할 것인가,대형차의 고급스러움을 즐길 것인가.'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