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 파트2> 티저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듄: 파트2> 티저 포스터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듄친자'들을 양산한 듄 시리즈

<듄>은 미국 작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가 1965년에 발표한 소설입니다. 그는 미국 오리건주 사막 지역을 보고 영감을 얻어 사막의 광물을 두고 패권 싸움을 벌이는 1만 191년 후의 우주를 배경으로 한 <듄>, <메시아>, <듄의 후예들>, <듄의 신황제>, <듄의 이단자들>, <듄의 신전> 등 총 6권에 걸쳐 SF 대하소설을 출간했습니다. 프랭크 허버트는 7번째 책을 구상하다가 병환으로 사망했는데 아들 브라이언 허버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듄의 세계관을 이어갔죠.

<듄> 시리즈는 출간 다음 해인 1966년에 미국에서 한 해의 최고 과학 소설에 수여하는 휴고 상을 받았고, 미국 SF 판타지 작가 협회가 수여하는 상인 네뷸러 상이 만들어진 첫 연도에 수상작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소설 <듄> 시리즈는 이미 1984년에 영화화, 2003년에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소설이 묘사하는 고도로 발달된 미래 모습을 스크린에 구현하는 데 기술적 한계가 있었죠. <그을린 사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컨택트> 등 실험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영화로 할리우드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캐나다 출신 드니 빌뇌브 감독은 3부작을 완성을 염두에 두고 <듄> 시리즈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2021년에 개봉한 <듄: 파트1>이 호평을 받았고 올해 2월 28일에 개봉한 <듄: 파트2>는 한 달 만에 150만 관객 수를 돌파했죠. 2027년쯤에는 <듄: 파트3>가 나올 예정이라 벌써부터 기대하는 팬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듄>

영화 <듄: 파트2>는 전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했는데 캐릭터와 찰떡궁합인 배우들의 캐스팅이 영화 흥행 요소 중 하나입니다. ‘폴은 젊은 몸에 노인의 영혼을 가진 캐릭터이다. 내게 폴은 티모시 샬라메 뿐이었다’라는 드니 빌뇌브 감독의 말처럼 배우 티모시 샬라메는 언뜻 보면 유약해 보이지만 동시에 강인한 정신력과 의지를 가진 주인공 ‘폴 아트레이데스’ 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듄: 파트2>는 2시간 45분짜리 영화입니다. 촘촘하게 짜여져 있는 소설 속 세계관을 파악하고 영화를 봐야 줄거리를 따라가고 이해하는데 한결 도움이 됩니다. 저도 ‘듄친자’ 중 한사람으로서 벌써 2번이나 <듄: 파트2>를 관람했습니다. 개봉 첫날 영화관에 달려가 관람했고, 며칠 후에는 한스 짐머의 음악을 집중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스피커 시설이 좋은 상영관에서 관람했죠. 2차례 영화를 본 이후에도 여러 자료들을 살펴보다가 <듄>의 여러 캐릭터, 인물 관계도, 배경 등이 그리스·로마 신화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기원전 3000여 년 전 그리스 크레타섬을 중심으로 발달한 미노스 문명. ‘미노스’라는 명칭은 황소의 모습을 한 반인반수 미노타우르스에서 유래합니다.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상징 중 하나가 미노타우르스인데 영화 속 가문의 휘장에도 등장합니다. 이뿐만 아니라 <듄> 세계관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은 트로이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을 이끌었던 영웅인 아가멤논 장군의 후예로 설정되어 있죠.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에서 아가멤논 장군은 아트레우스 왕의 아들입니다. 성장해서는 그리스 총사령관이 되는데 외모, 카리스마, 용맹함 모두 갖추었지만 영웅이라는 호칭에 비해 공훈이 빈약한 허울뿐인 영웅으로, 아내를 배신한 비열한 성격을 가진 자로 묘사됩니다. 이처럼 시공간을 뛰어넘어 다양하게 변주되는 그리스·로마 신화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습니다. 떠도는 이야기들을 엮어 신화로 만든 이들이 누구인지, 신화와 함께 살아간 그 시대 사람들의 머릿속도 궁금해지고요.
아가멤논을 살해하기 위해 다가가는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의 모습을 그린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가멤논>, Pierre-Narcisse Guerin ⓒWeb Gallery of Art
아가멤논을 살해하기 위해 다가가는 아내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그의 정부 아이기스토스의 모습을 그린 <클리타임네스트라와 아가멤논>, Pierre-Narcisse Guerin ⓒWeb Gallery of Art

영화 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

작곡가 한스 짐머는 영화 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입니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관객들이 <듄: 파트2>로부터 시각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청각적인 놀라움을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며 전에 없던 새로운 음악을 만들 작곡가가 필요했다고 말했습니다. 마침 한스 짐머도 <듄> 시리즈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둘의 협업은 수월하게 성사되었습니다.

1만 191년 후의 우주에서 벌어지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공간을 배경으로 한 영화이기에 한스 짐머의 음악은 새로움을 넘어 낯선 느낌마저 드는 음악을 창조했습니다. 그가 만들어낸 전자 악기들은 이국적이면서도 강렬한 사운드를 내었고, 여성 싱어들의 목소리를 주요 재료 삼아 새로운 음악 언어를 창조해냈죠.

그는 워너브라더스사가 진행한 인터뷰에서 ‘놀랍도록 대담하고 재능을 가진 사람들과 작업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남들이 당신의 아이디어를 듣고 그건 정말 최악의 아이디어라고 말하면 옳은 길로 잘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막의 모래알처럼 수많은 음표들이 영화를 압도해버리거나 반대로 영상에 묻혀버리는 것이 아니라 영화의 주요한 장면에서 분위기를 극대화 시키는 음악을 듣고 있자니 경외감마저 들었습니다.

[한스 짐머가 말하는 <듄> 시리즈의 음악]

<블레이드 러너 2049> 속 클래식 음악

드니 빌뇌브 감독과 한스 짐머는 이미 2017년 작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 협업한 적이 있습니다. 영화 내용은 이렇습니다. 2049년, 인간들과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황폐해진 지구를 떠나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계획도시 ‘오프랜드’에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얼핏 생각하면 기술이 극도로 발달하면 이를 바탕으로 하여 인간은 훨씬 윤택한 삶, 적게 노동하고 많은 즐거움을 누리며 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그려집니다. 사람과 사람 간, 사람과 기계 간의 소통이 단절된 지 오래입니다.

[<블레이드 러너 2049> 예고편]


외로움을 느끼는 오프랜드의 정착민들은 애인이자 친구이자 가족 역할을 하는 반려 인공지능 프로그램을 구매합니다. 더 비싼 프로그램, 더 고사양의 기계를 구입하면 투명한 홀로그램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형상을 한 반려 인공지능이 눈앞에 나타나기도 하죠. <블레이드 러너 2049>를 보면서 이 기계가 작동될 때마다 친숙한 음악이 들리는데요, 바로 <피터와 늑대> 속 소년 피터의 테마입니다.

러시아 작곡가 프로코피예프가 1936년, 모스크바 극장의 의뢰를 받아 단 2주 만에 완성한 <피터와 늑대>는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는 어린이들의 교육 목적으로 작곡되었습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내레이션이 있는데 이는 프로코피예프가 직접 쓴 것입니다.

<피터와 늑대>는 독특하게도 특정 악기가 특정 인물을 표현합니다. 각 악기가 가진 음색, 구현 가능한 테크닉은 각 인물의 성격과 곡 속에서 펼쳐지는 장면의 분위기와 꼭 들어맞습니다. 피터는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이루어진 현악 합주로 묘사되고, 할아버지는 중저음의 바순, 고양이는 동글동글한 음색을 가진 클라리넷, 늑대는 부드러우면서도 날카로운 소리를 동시에 구현하는 호른, 사냥꾼들은 공격적인 느낌을 주는 팀파니와 큰북, 집오리는 납작하면서도 쭉 뻗어 나가는 오보에, 새는 청량하고 가벼운 음색의 플루트로 묘사됩니다.

[음악과 내레이션이 어우러진 디즈니의 <피터와 늑대> 애니메이션, 1946년 작]

감독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한스 짐머의 명민함

한스 짐머가 드니 빌뇌브 감독과 작업한 <듄: 파트2>, <블레이드 러너 2049> 속 음악들을 살펴보면 기본 2~3시간 짜리 영화의 방대한 분량 속에서 주제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듄: 파트2> 속 남성들은 우주 패권을 위해 총과 칼로 서로를 해치는 반면 여성 예언자 무리는 미래를 이끌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 화합합니다. 여기서 한스 짐머는 ‘여성’이라는 키워드를 포착해내어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디스토피아 미래를 그린 <블레이드 러너 2049> 속 도시인의 삶은 언뜻 화려하고 쾌락적이지만 그 속을 면밀히 살펴보면 단조롭고 고독합니다. 이 외로움을 해결해주는 반려 인공지능 프로그램의 부팅음을 프로코피예프의 <피터와 늑대> 속 천진난만한 캐릭터인 피터의 테마를 차용함으로써 아이러닉함을 돋보이게 했고요.

한스 짐머 뿐만 아니라 엔니오 모리꼬네, 존 윌리엄스, 히사이시 조 등 눈에 보이지도 않는 청각적 재료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같은 것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끔 유도한다는 점에서 음악가의 능력과 역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됩니다.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