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 하다"…의대 '지방유학' 시대 열렸다
정부의 대학별 정원 배정 결과 2천명 의대 증원분의 대부분을 비수도권이 차지하면서 '지방유학'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원 200명의 '매머드 지방의대'가 속출하는 데다, 지방의대 정원의 60% 이상을 지역인재전형이 차지하면서 지역 학생들이 의대 진학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일부 지방의대는 정원의 70~80%까지 지역인재전형으로 채운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에 어렸을 때부터 자녀를 지역으로 보내 의대 진학을 준비하게 하는 '지방유학'이 새로운 입시 트렌드의 하나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방 교육청과 학원가 등에는 의대 진학에 관해 묻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으며, 입시업계는 앞다퉈 '의대 특별반' 개설 등에 나서고 있다.

'의대 열풍'은 전국으로 확산해 지방의 학부모들은 자녀의 의대 진학에 대한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다.

◇ 비수도권에 '올인'한 의대 증원…지역인재전형 '80%' 대학까지

24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 20일 발표된 정부의 대학별 의대 입학정원 배정은 한마디로 비수도권에 '올인'한 배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의대 증원분 2천명의 82%인 1천639명이 비수도권에 배분됐다. 18%인 361명은 경인권에 배정됐고, 서울 지역은 단 한 명도 없다.

더구나 비수도권 의대는 정원의 '60% 이상'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하기로 했다.

지역인재전형은 해당 지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만 그 지역 의대에 지원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028학년도 대입부터는 중학교도 그 지역에서 나오도록 요건이 강화된다.

종로학원에 따르면 의대 증원을 감안하지 않은 2025학년도 기준으로 지방의대 27곳은 전체 모집정원 2천23명의 52.8%인 1천68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할 예정이었다.

여기에 '지역인재전형 60% 이상' 조건을 적용하면 지방의대의 지역인재전형 인원은 1천214명으로 늘어난다.

2천명 증원에 따라 비수도권에 추가 배정된 1천639명도 이러한 '60% 이상' 조건이 적용돼 983명이 지역인재전형으로 추가 선발된다.

1천214명과 983명을 더하면 2천명을 훌쩍 넘어서는 2천197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한다는 얘기다.

더구나 일부 의대는 지역인재전형을 70~80% 수준까지 높이기로 해 그 수는 더욱 늘어날 수 있다.

거점국립대인 전남대는 정원의 80%를 지역인재전형으로 뽑기로 했으며, 제주대도 단계적으로 지역인재전형 비중을 70%까지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정원이 200명에 달하는 '매머드 지방의대'도 속출한다.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 9곳 가운데 경상국립대(현 정원 76명), 전남대(125명), 경북대(110명), 충남대(110명), 부산대(125명), 전북대(142명), 충북대(49명) 등 7곳은 정원이 200명으로 늘어난다.

서울대(135명), 연세대(110명) 등 '인서울' 의대보다 훨씬 큰 규모의 정원을 갖게 된 것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지방권 대학의 지역인재전형이 의대 합격에서 유리한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며 "지역인재전형을 노리고 중학교 때부터 지역으로 이동하는 학생이 발생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 '지방유학' 준비한다…지역 교육청 문의 쏟아지고, '의대 특별반' 개설 바람

지방의대 진학에 지역 학생이 훨씬 유리한 조건이 형성되면서 지역 교육청이나 학원가 등에는 '지방유학'이나 지역인재전형에 관해 묻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부산대·인제대·고신대·동아대 등 4개 의대가 2025학년도 입시에서 500명을 선발하는 부산 교육청에는 서울이나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에 사는 학부모들의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학력개발원 관계자는 "내년에 부산지역 중학교에 입학시키고자 전학을 고려하는 초등학교 6학년 학부모들의 연락이 많이 온다"며 "실제로 올해 연말 부산으로 전학오는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이 많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특히 7개 지역의대의 총정원이 기존 421명에서 무려 970명으로 늘어나는 충청권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박종학 전국진로진학상담교사협의회 회장은 "충청권 의대 정원이 크게 늘면서 앞으로 의대 진학을 고려하는 수도권 학생들은 특히 충청권으로 많이 움직일 것"이라며 "특히 천안 등은 교통 인프라를 고려할 때 다른 지역보다 유학하러 가기에 좋은 여건을 갖췄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순천향대 의대와 단국대 의대가 있는 충남 천안의 경우 이미 서울에서 내려온 '지방 유학생'이 상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천안에 사는 한 학부모는 "지역인재전형이 의대 진학에서 유리하다는 것을 알고 내려온 학생과 학부모들로 인해 학원가도 잘 형성돼 있고, 부동산 가격도 올랐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 맞춰 비수도권에서는 보기 드문 의대 입시 전문학원을 만들어보려는 움직임도 관찰된다.

청주에서 8년째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한 원장은 최근 운영난을 겪던 공무원시험 준비 학원을 인수했다.

그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모두 서울로 간다고 하지만, 의대 정원이 대폭 늘어난 데다 향후 지역인재전형까지 확대되면 지역에서 공부하려는 의대 입시생은 훨씬 많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오는 31일 성균관대에서 '의대 정원 확대에 따른 영향력 분석 설명회'를 여는 종로학원에도 지방유학에 관해 묻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임성호 대표는 "설명회 사전 신청 하루 만에 1천명이 몰렸다"며 "수도권 초등학교 학부모들도 설명회에 신청했는데, 지역인재전형 때문에 중학교 때 지방으로 이사해야 하는지 묻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 "우리 아이도 해볼 만하다"…'의대 열풍' 전국으로 확산

지방의대 정원이 대폭 늘고 지역인재전형 비중이 높아지면서 '의대 진학'을 꿈꾸는 지방 학부모와 그 열풍에 편승하려는 학원가의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세종에서 중학생 자녀를 키우는 최모 씨는 "의대 증원 발표가 난 뒤 다른 지역에 있는 친구들한테 '충청권 의대 증원이 제일 많더라'며 부럽다는 연락을 많이 받았다"며 "(충청권) 7개 의대 어디든 지역인재로 원서를 넣을 수 있으니 본격적으로 아이의 의대 입시를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대전 서구 둔산동 제일학원의 한기온 이사장은 "점수가 아슬아슬했던 학생들은 충청권에 의대 배정 인원이 많아진 만큼 기대감이 높아진 것 같다"며 "대학 신입생들의 반수가 커질 가능성도 있어 여름방학이 시작하는 6월쯤에는 학원가도 본격적인 변화가 보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주지역의 경우 전남대와 조선대 정원이 각 기존 125명에서 200명과 150명으로 늘었는데, 전남대는 신입생의 80%를 지역인재전형으로 뽑는다.

중학생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전남대는 지역인재 비율이 다른 대학보다 높아 수학 점수가 다소 낮더라도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며 자녀의 의대 진학 의지를 불태웠다.

대구지역의 경우 경북대·계명대·영남대·대구가톨릭대 등 4개 의대가 있는데, 새 정원을 모두 합치면 520명에 달한다.

대구 송원학원은 의대 준비반 2~3개를 신설해 150명 정도의 원생을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차상로 진학실장은 "의대생 2천명 증원은 의과대학 24개가 신설된 것과 같은 굉장한 규모"라며 "치대, 약대, 수의대, 한의대 등 최상위 학과의 경우 한 번 더 (의대에 도전)하려는 학생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지역은 강원대, 연세대 분교, 한림대, 가톨릭관동대 등 4개 의대의 정원이 기존 165명에서 432명으로 급증한다.

춘천에서 학원을 운영하는 최모 씨는 "강원지역 의대 4곳의 정원이 60% 이상 늘었는데, 지역인재 선발 비율이 60%까지 높아진다면 수학 2등급도 합격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지역 학생들의 의대 도전이 부쩍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처럼 '의대 열풍'이 전국으로 확산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대구지역 교육계 관계자는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 권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학생 개인으로 보면 납득이 되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사회적 비용, 사교육비, 공교육의 위상 등 측면에서 좋을 게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시형기자 jsh1990@wow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