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한 술, 세월 한 술, 그리움 한 술…. 시간이 켜켜이 쌓인 서산의 밥상 앞에서 곱씹게 되는 것들.
매일 섬과 육지를 옮겨 다니는 간월암. 썰물 때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밀물 때에는 섬이 되는 신비로운 암자다. 사진=정균
매일 섬과 육지를 옮겨 다니는 간월암. 썰물 때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밀물 때에는 섬이 되는 신비로운 암자다. 사진=정균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다 보면 음식 하나에도 도시 고유의 성격이 녹아들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흔히들 ‘지역 색이 옅다’고 오해하는 충청도도 예외는 아니다. 간이 세지 않아 매운맛도 짠맛도 없지만, 담백하고 구수한 맛을 자랑한다. 여유롭고 온화한 충청도인의 성향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여기에 독특한 지리적 특성이 더해졌다. 농업이 발달한 내륙의 북도와 해안 지방을 품은 남도가 조화를 이루며 재료 본연의 맛을 중요시하는 식문화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일까. 이곳의 식탁 앞에서는 남녀노소, 지역을 가리지 않고 옛 추억을 소환하게 된다. 방학이면 할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주던 소박한 밥상 같은 것들 말이다.

길손호프

국내 최대 규모의 한우목장을 갖춘 서산. 전국 소의 약 97%가 서산한우목장의 씨를 받아 태어날 만큼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한다. 서산 어디서든 품질 좋은 소고기를 맛볼 수 있는 이유다.
사진=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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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에서도 아는 사람만 아는 ‘숨은 맛집’ 길손호프로 향했다. 대여섯 개 남짓한 테이블이 놓인 아담한 내부와 육사시미·육회·막창전골·막창수육 등 알코올과 찰떡궁합인 메뉴에 신뢰도 상승.

너무 두껍지도, 얇지도 않게 썰린 육사시미는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배가된다. 모든 테이블에 빼짐없이 술병이 늘어서 있는 이유가 있었다.
사진=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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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k! 기름장
특별할 것 없는 기름장이지만, 이곳의 육사시미와 만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냥 먹어도 고소한 소고기가 더 고소해진다.

큰마을영양굴밥

서산에 왔으니 9미 중 하나인 영양굴밥을 맛보지 않을 수 없다. 서산 특산물인 굴에 은행·버섯 등 갖은 재료를 넣어 영양도 맛도 일품이다. 간월암 인근에 굴밥 전문식당이 늘어서 있어 취향 따라 선택하기 좋다.
사진=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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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굴밥을 시키면 굴전·어리굴젓·찌개 등 보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한 상이 차려진다. 갓 지어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솥밥을 어느 정도 덜어낸 뒤 물을 붓는다. 숭늉이 되길 기다리며 1라운드 시작.

밑반찬으로 나온 나물과 향긋한 달래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으니 반찬이 필요 없다. 밥알이 기분 좋게 풀어진 숭늉에 어리굴젓까지 올려 먹으면 든든한 한 끼 완성이다.
사진=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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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k! 어리굴젓
영양굴밥과 함께 서산 9미로 꼽히는 어리굴젓. 굴전+어리굴젓, 굴밥+어리굴젓, 숭늉+어리굴젓…. 이런저런 조합으로 맛보다 보면 한 그릇 뚝딱!

진국집

진국집에 오기 전엔 몰랐다. 원조 게국지엔 ‘게’가 들어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서산 일부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향토 음식 게국지는 절인 배추·무·무청 등에 게장 또는 젓갈 국물을 넣어 만든다.

배추나 무의 시래기도 귀하게 여기던 시절, 김장하고 남은 재료를 버무려 뚝배기에 담아 끓여 내던 것이 게국지다. 꽃게탕과 헷갈리기 쉽지만, 서산 사람들에게 게국지는 ‘김치’와 같은 반찬이라고.
사진=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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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을 주문하면 10가지 넘는 반찬이 소반 가득 차려진다. 정겨운 충청도 사투리로 게국지의 유래를 읊는 사장님의 설명을 곁들이니 더욱 맛있다.

Kick! 게국지
일반적으로 시래기에 게장 국물, 젓갈을 넣어 만드는데, 게의 일종인 박하지를 다져 넣기도 한다. 시원하고 구수하면서도 짭짜름한 맛이 꽃게탕과는 엄연히 다른 음식이란 말씀.

향원만두

시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0년 넘는 세월 동안 우직하게 만두를 메인 메뉴로 고집해온 향원만두가 그렇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찐만두와 군만두. 여느 중국집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메뉴지만, 맛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쫄깃한 만두피는 기본, 으레 찍어 먹는 간장 없이도 간이 딱 맞는다.
사진=정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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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법은 사장님의 손맛. 만두피부터 소까지 정성스레 직접 제조한다. 퉁퉁마디(함초)물을 넣고 20~30분간 손으로 반죽한 만두피와 육즙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칼로 직접 다진 고기를 넣은 만두소가 조화롭다. 통통한 만두가 한가득 푸짐하게 들어간 만둣국도 추천한다.

Kick! 쫄깃쫄깃 만두피
사진촬영을 위해 젓가락으로 찢어보려 했으나 너무(?) 쫄깃해 실패한 만두피. 숟가락으로 겨우 갈랐다. 군만두 역시 겉바속촉 식감이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