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부여박물관, '우리 손으로 발굴한 첫 백제 사찰' 조사·유물 정리
일제강점기 수습된 유물 12점 새로 확인…유물 1천300여 점 총망라
사비백제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역사…부여 금강사의 흔적을 찾다
1934년 충남 부여고적보존회가 발행한 '부여고적지도'에는 '금공리 사지(寺址·절터)'라는 명칭이 남아있다.

절 이름도 없이 그저 은산면 금공리에 남은 절터라는 의미다.

훗날 '금강사'(金剛寺)라는 한자가 새겨진 기와가 발견된 이곳은 백제 때 창건된 뒤 통일신라를 거쳐 고려시대까지 법맥을 이어온 유서 깊은 사찰이 있었으리라 추정된다.

광복 이후 1960년대 우리 손으로 발굴한 첫 백제 사찰 유적인 사적 '부여 금강사지' 조사 과정과 출토 유물을 총정리한 보고서가 나왔다.

사비백제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역사…부여 금강사의 흔적을 찾다
19일 국립부여박물관이 공개한 '부여 금강사지' 보고서는 일제강점기에 '부여 금공리사지'라는 명칭으로 처음 보고된 이후 지금까지의 조사·연구 과정을 정리한 기록이다.

금강사지는 백제 역사는 물론, 미술사적으로도 가치가 높은 유적으로 평가된다.

과거 이 절은 중문, 탑, 금당, 강당이 순서대로 이어지는 '1탑 1금당' 형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신라 때 재건했고, 고려 때 추가로 고쳤으나 소실된 것으로 파악된다.

보고서는 "백제 사비기에는 백마강과 나성이 감싸는 사비 왕궁과 시가지를 중심으로 사찰이 분포하지만, 금강사지는 부소산성에서 북서쪽으로 약 8㎞ 떨어져 있어 특별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사비백제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역사…부여 금강사의 흔적을 찾다
그러면서 "사역 규모, 출토된 유물을 미뤄볼 때 사비도성 외곽 지역에 있는 대표적인 사원"이라며 "백제 사비기의 다양한 연구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라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광복 이후 국립박물관(1964∼1966)을 시작으로 한국문화재재단(2015),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2014∼2022) 등 3곳이 진행한 발굴 조사 성과를 꼼꼼하게 정리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유물 1천300여 점을 소장기관별로 구분했고 국립박물관에서 발굴·구입·기증 방식으로 소장하게 된 600여 점의 사진과 유적 도면 등도 수록했다.

사비백제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역사…부여 금강사의 흔적을 찾다
금강사지 관련 유물을 조사하며 얻게 된 성과도 크다.

박물관은 일제강점기 당시 수습된 것으로 추정되는 수막새 7점과 암막새 4점, 연목와(椽木瓦·둥글고 긴 연목 끝에 쓰는 기와) 1점 등 유물 총 12점을 수장고와 상설전시실에서 새로 확인했다.

이 중 11점에서는 1942∼1945년 조선총독부 박물관 부여 분관에서 촉탁으로 근무하며 부여 지역 사찰을 조사한 일본인 후지사와 가즈오(藤澤一夫)의 필적으로 쓴 묵서가 나왔다.

보고서는 "후지사와가 발굴한 유적인 정림사지 등에 작성된 필적과 동일하다"며 "광복 이후 박물관에 들러 출토지를 썼을 가능성이 작으므로 일제강점기 때 정리된 유물로 판단할 수 있다"고 밝혔다.

사비백제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역사…부여 금강사의 흔적을 찾다
수막새와 암막새 등은 기존 금강사지 출토 유물과도 형식이 거의 동일하다고 박물관은 전했다.

보고서에는 1960년대 발굴 조사 당시 쓰인 도면과 흑백 필름도 실려 당시 조사단의 활동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절의 범위, 가람 배치 등을 정리한 내용은 추후 연구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은화수 국립부여박물관장은 "사비 백제를 연구할 때 보탬이 되는 자료이자, 백제 기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지침서 역할을 하는 책"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보고서는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https://museum.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비백제부터 고려까지 이어온 역사…부여 금강사의 흔적을 찾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