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서 무대, 배우, 음악이 완벽하게 맞물린 오페라를 맛보다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
런던 콜리세움에서 관람한 색다른 <마술피리>
런던 콜리세움에서 관람한 색다른 <마술피리>
오페라의 경우 평소 대체로 오소독스(Orthodox)한 무대를 선호하는 편입니다만 <마술피리>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특히 펜데믹 이전에 로마 극장에서 발전된 에니메이션 영상 기술과 기발한 무대장치의 결합에 의해 이 작품에 담긴 동화적 환상의 세계를 절묘하게 표현해낸 멋진 현대적 연출을 경험한 이래(아래 유튜브 영상 참조) 색다른 연출에 의한 <마술피리> 무대를 늘 동경하여 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런던 콜리세움에서 관람한 영국국립오페라(ENO)의 <마술피리>는 그러한 갈증을 단번에 풀어주는 참으로 매력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유명한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의 2012년 연출을 레이첼 휴어(Rachel Hewer)가 리바이벌한 것인데, 이번 공연이 벌써 세번째 리바이벌이라고 하더군요.
흔히들 오페라를 종합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번 공연은 무대 세팅 및 연출, 솔리스트들의 연기와 가창, 합창 및 오케스트라, 관객과의 교감, 오페라 홀의 음향 등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종합예술의 극치였다고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단순한 무대 장치를 매우 변화무상하 만든 것은 무대 앞쪽과 뒤편의 막들과 중간의 플랫폼등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각종 에니메이션 영상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밤의 여왕이 등장할 때면 별들로 가득한 어두운 밤하늘이, 또 타미노가 마술피리를 연주할 때면 코끼리 등 각종 동물들이, 그리고 사원을 묘사할 때면 기둥처럼 꼳혀있는 두꺼운 책들이,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물과 불의 시험을 통과할 때는 말 그대로 거대한 화염 등이 무대를 영상으로 가득채우며 다양한 환상적인 장면들을 연출해내었습니다.
이러한 무대 장치와 함께 특이했던 것은 무대 좌우 끝편의 구석에 설치된 키오스크였는데, 우선 왼쪽으로는 비디오 아티스트 벤 톰슨(Ben Tomson)이 칠판에 직접 그리고 내용들이 쓰는 무대 반투명의 막이나 뒤편의 막 위에 라이브로 투사되는 방식으로 꾸몄습니다. 반투명의 막위로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은 지난 해 빈 강변극장의 <마탄의 사수>에서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라이브로 비디오 아티스트가 직접 반투명 막위로 라이브로 글과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다른 오페라에서 보기 힘든 상당히 색다른 시도였습니다. 벤 톰슨이 이렇게 직접 그려넣는 해당 막과 각 장면의 간략하고도 상징적인 소개가 전체 무대와 절묘하게 어울려 관객들의 몰입감을 한층 더 높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대 오른쪽 구석으로 자리 잡은 폴리 아티스트 루쓰 설리번(Ruth Sullivan)이 무대의 상황과 가수들의 동작에 맞춰 각종 특이한 효과음들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관객들에게 노출되었는데, 이 또한 공연의 재미를 크게 높여 주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술에 취한 파파게노가 와인병을 이용하여 (워터 글라스 하프나 물 실로폰 처럼) 주제 동기를 연주하다가 뒤로 돌아서서 소변으로 와인병에 물을 채우는 익살스런 장면 등에서도 능수능란한 효과음으로 서로 절묘하게 호흡을 맞춰내던 모습은 (그 때 오케스트라에 의해 뜬금없이 연주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함께)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현대적 기술을 활용한 각종 무대 장치와 함께 눈을 끈 것은 오케스트라의 위치와 역할이었는데, 특히 오케스트라는 통상의 낮은 피트에서 한층 더 끌어 올려져 거의 무대와 높이를 같이 할 정도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홀에 도착해서 이러한 세팅을 보고 좀 의아했는데, 공연이 진행되면서 연출자의 핵심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번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반주의 역할을 하는 데서 나아가 무대의 일부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역경을 이기는 음악의 힘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악기인 플루트와 첼레스타는 통상 타미노와 파파게노가 연주를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는 것으로 연출이 되지만 이번 연출에서는 타미노가 오케스트라 피트를 드나들며 플루티스트를 무대에 초대하여 직접 플루트를 불게하고 또 파파게노 역시 첼레스타 주자에게 요청하여 직접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는데, 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와 무대를 엮어줌으로써 전체 공연의 무대가 오케스트라 피트로까지 확장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무대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주인공들이 수시로 스테이지에서 오케스트라 피트를 지나 심지어 객석에까지 진출하여 노래와 연기를 하는 장면까지 곁들여짐으로써 마치 런던 콜리세움 전체가 통으로 하나의 커다란 무대가 되어 관객들이 무대의 현장에 직접 들어와 있는 착각까지 불러 일으켰습니다.
타미노를 맡은 미국 출신 테너 노만 라인하르트(Norman Reinhardt)와 파미나 역할의 영국 출신 소프라노 사라 타이난(Sarah Tynan)은 매우 안정적인 가창과 함께 절묘한 궁합을 이루었으며, 파파게노 역의 데이비드 스타우트(David Stout) 또한 익살스럽고도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음악적 표현력을 겸비한 우수한 가수였습니다. 그리고 자라스트로의 역할을 맡은 캐나다 출신 베이스 존 렐리에(John Relyea)의 목소리는 마치 신의 목소리와도 같이 너무나 깊고 고귀하였습니다.
그 밖에 밤의 여왕의 세 명의 시녀들은 (캐릭터의 부정적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겠습니다만) 전나의 몸을 드러내는 듯한 시스루 의상이 눈에 다소 거슬렸습니다만 음악적으로는 만족스러웠고, 두 명의 소년과 한 명의 소녀로 구성된 세소년 역시 정령과도 같이 신비로운 목소리와 화음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합창 또한 매우 힘있고 또렷하여 감동적이었고 젊은 여성 지휘자 에리나 야쉬마(Erian Yashima)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또한 매우 민첩하고도 역동적인 음악으로 홀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날 공연에서 돋보인 가수는 밤의 여왕을 맡은 소프라노 라이넬 크라우제(Rainelle Krause)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밤의 여왕은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집고 절뚝이는 노파로 등장하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역동적인 연기는 물론 매우 음악적인 표현과 안정적인 발성에 기반한 그녀의 아리아들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밤의 여왕의 아리아들 가운데서도 매우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인 가창이었습니다.
게다가 비교적 작은 규모의 런던 콜리세움의 멋진 음향 또한 오페라에 몰입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는데, 순간순간마다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순진한 웃음과 소박한 탄성들을 통해 청중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얼마나 이 작품에 푹 빠져들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 소맷부리를 파고드는 런던 시내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을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환상적인 연출의 <마술피리> 공연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
그런데 이번에 런던 콜리세움에서 관람한 영국국립오페라(ENO)의 <마술피리>는 그러한 갈증을 단번에 풀어주는 참으로 매력적인 공연이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유명한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의 2012년 연출을 레이첼 휴어(Rachel Hewer)가 리바이벌한 것인데, 이번 공연이 벌써 세번째 리바이벌이라고 하더군요.
흔히들 오페라를 종합예술이라고 하는데, 이번 공연은 무대 세팅 및 연출, 솔리스트들의 연기와 가창, 합창 및 오케스트라, 관객과의 교감, 오페라 홀의 음향 등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종합예술의 극치였다고 평가를 하고 싶습니다.
무대 세팅과 연출
런던 콜리세움의 홀을 들어서자 맨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무대 위의 심플한 사각형 플랫폼이었는데, 알고보니 이 플랫폼이 무대 위에서 기울어지기도 하고 또 들어 올려지기도 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더군요.이러한 단순한 무대 장치를 매우 변화무상하 만든 것은 무대 앞쪽과 뒤편의 막들과 중간의 플랫폼등을 스크린으로 활용한 각종 에니메이션 영상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밤의 여왕이 등장할 때면 별들로 가득한 어두운 밤하늘이, 또 타미노가 마술피리를 연주할 때면 코끼리 등 각종 동물들이, 그리고 사원을 묘사할 때면 기둥처럼 꼳혀있는 두꺼운 책들이, 후반부에 주인공들이 물과 불의 시험을 통과할 때는 말 그대로 거대한 화염 등이 무대를 영상으로 가득채우며 다양한 환상적인 장면들을 연출해내었습니다.
이러한 무대 장치와 함께 특이했던 것은 무대 좌우 끝편의 구석에 설치된 키오스크였는데, 우선 왼쪽으로는 비디오 아티스트 벤 톰슨(Ben Tomson)이 칠판에 직접 그리고 내용들이 쓰는 무대 반투명의 막이나 뒤편의 막 위에 라이브로 투사되는 방식으로 꾸몄습니다. 반투명의 막위로 영상을 투사하는 방식은 지난 해 빈 강변극장의 <마탄의 사수>에서 경험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라이브로 비디오 아티스트가 직접 반투명 막위로 라이브로 글과 그림을 그리는 방식은 다른 오페라에서 보기 힘든 상당히 색다른 시도였습니다. 벤 톰슨이 이렇게 직접 그려넣는 해당 막과 각 장면의 간략하고도 상징적인 소개가 전체 무대와 절묘하게 어울려 관객들의 몰입감을 한층 더 높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대 오른쪽 구석으로 자리 잡은 폴리 아티스트 루쓰 설리번(Ruth Sullivan)이 무대의 상황과 가수들의 동작에 맞춰 각종 특이한 효과음들을 만들어내는 장면들이 실시간으로 관객들에게 노출되었는데, 이 또한 공연의 재미를 크게 높여 주었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술에 취한 파파게노가 와인병을 이용하여 (워터 글라스 하프나 물 실로폰 처럼) 주제 동기를 연주하다가 뒤로 돌아서서 소변으로 와인병에 물을 채우는 익살스런 장면 등에서도 능수능란한 효과음으로 서로 절묘하게 호흡을 맞춰내던 모습은 (그 때 오케스트라에 의해 뜬금없이 연주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와 함께)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현대적 기술을 활용한 각종 무대 장치와 함께 눈을 끈 것은 오케스트라의 위치와 역할이었는데, 특히 오케스트라는 통상의 낮은 피트에서 한층 더 끌어 올려져 거의 무대와 높이를 같이 할 정도로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홀에 도착해서 이러한 세팅을 보고 좀 의아했는데, 공연이 진행되면서 연출자의 핵심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이번 공연에서 오케스트라는 단순한 반주의 역할을 하는 데서 나아가 무대의 일부분으로 활용되었습니다. 특히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역경을 이기는 음악의 힘을 상징하는) 핵심적인 악기인 플루트와 첼레스타는 통상 타미노와 파파게노가 연주를 하는 것처럼 흉내를 내는 것으로 연출이 되지만 이번 연출에서는 타미노가 오케스트라 피트를 드나들며 플루티스트를 무대에 초대하여 직접 플루트를 불게하고 또 파파게노 역시 첼레스타 주자에게 요청하여 직접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는데, 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오케스트라와 무대를 엮어줌으로써 전체 공연의 무대가 오케스트라 피트로까지 확장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무대의 확장이라는 관점에서는 주인공들이 수시로 스테이지에서 오케스트라 피트를 지나 심지어 객석에까지 진출하여 노래와 연기를 하는 장면까지 곁들여짐으로써 마치 런던 콜리세움 전체가 통으로 하나의 커다란 무대가 되어 관객들이 무대의 현장에 직접 들어와 있는 착각까지 불러 일으켰습니다.
솔리스트와 합창, 오케스트라
이러한 화려하고도 독창적인 무대 연출에도 불구하고 음악적인 측면에서 만족감을 주지 못하는 공연이었다면 반쪽의 성공에 불과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공연에 캐스팅된 솔리스트들은 연기는 물론 음악적 기량과 표현력이 매우 탁월하였습니다.타미노를 맡은 미국 출신 테너 노만 라인하르트(Norman Reinhardt)와 파미나 역할의 영국 출신 소프라노 사라 타이난(Sarah Tynan)은 매우 안정적인 가창과 함께 절묘한 궁합을 이루었으며, 파파게노 역의 데이비드 스타우트(David Stout) 또한 익살스럽고도 자연스런 연기와 함께 음악적 표현력을 겸비한 우수한 가수였습니다. 그리고 자라스트로의 역할을 맡은 캐나다 출신 베이스 존 렐리에(John Relyea)의 목소리는 마치 신의 목소리와도 같이 너무나 깊고 고귀하였습니다.
그 밖에 밤의 여왕의 세 명의 시녀들은 (캐릭터의 부정적 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었겠습니다만) 전나의 몸을 드러내는 듯한 시스루 의상이 눈에 다소 거슬렸습니다만 음악적으로는 만족스러웠고, 두 명의 소년과 한 명의 소녀로 구성된 세소년 역시 정령과도 같이 신비로운 목소리와 화음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합창 또한 매우 힘있고 또렷하여 감동적이었고 젊은 여성 지휘자 에리나 야쉬마(Erian Yashima)가 이끄는 오케스트라 또한 매우 민첩하고도 역동적인 음악으로 홀을 채웠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날 공연에서 돋보인 가수는 밤의 여왕을 맡은 소프라노 라이넬 크라우제(Rainelle Krause)였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밤의 여왕은 휠체어를 타거나 지팡이를 집고 절뚝이는 노파로 등장하는데, 카리스마 넘치는 역동적인 연기는 물론 매우 음악적인 표현과 안정적인 발성에 기반한 그녀의 아리아들은 지금까지 경험해본 밤의 여왕의 아리아들 가운데서도 매우 강렬하면서도 인상적인 가창이었습니다.
런던 콜리세움의 음향과 청중
이번 공연의 또 다른 특징은 독일어에 의한 징슈필인 <마술피리>를 영어로 번안하여 관객들의 몰입도를 높였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위에서 설명 드린 것처럼 현대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무대장치와 연출을 통해 마치 한 편의 뮤지컬처럼 자연스럽게 청중에게 어필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것 같습니다.게다가 비교적 작은 규모의 런던 콜리세움의 멋진 음향 또한 오페라에 몰입하는 데에 큰 도움을 주었는데, 순간순간마다 객석에서 터져나오는 순진한 웃음과 소박한 탄성들을 통해 청중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얼마나 이 작품에 푹 빠져들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늦은 밤 소맷부리를 파고드는 런던 시내의 을씨년스러운 바람을 뒤로 하고 호텔로 돌아오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환상적인 연출의 <마술피리> 공연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