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가게] 현대미식의 맛 제시하는 서울의 오래된 노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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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맛 유지한 백년가게 BEST5
굽이굽이 여행 떠나듯 들려보는 노포
서울시 요식업 허가 1호 '이문설농탕'
서울 종로에 자리한 ‘이문설농탕’. 1902년에 문을 열어 ‘서울시 요식업 허가 1호’라는 기록을 지닌 곳이다. 말 그대로 100년이 넘는 동안 손님들에게 담백한 설렁탕을 만들어 내왔다. 이곳에 와서 듣기 전까진 이러한 기록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쉽게 떠올릴 수 없을 만큼 우리 역사에서 이런 가게의 존재는 기적과도 같다.기름기 없는 뽀얀 육수를 부은 소박한 설렁탕 한 그릇. 이른 아침부터 이 음식을 먹으러 온 미식가들이 하나둘씩 가게의 자리를 차지한다. “OO 많이 넣어주세요.” 발음을 뭉개서 대강 말하는 통에 옆 테이블에 앉은 우리한테는 도통 무슨 말인지 들리지도 않는데, 직원들은 그 주문을 척척 잘도 알아듣는다. 아마도 오랜 단골일 테다.
이곳 설렁탕은 조미료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옛 맛 그대로 재현하는, 다소 심심한 맛이 특징이다. “조미료가 안 들어가서 맛없다는 사람도 많아요. 이 맛에 익숙한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거고. 어머니가 조미료를 안 썼기 때문에 저도 그대로 하는 것뿐이에요.” 전성근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남긴 무심한 듯 뚝심 있는 이 말은 마치 전설처럼 내려온다.
매장에는 2022년 미쉐린 인증패가 붙어 있었다. 이곳을 빼놓고 한국의 미쉐린을 발표할 수 없었을 테지. 큰 도로에서는 보이지 않으니, 지도 앱에 주소를 잘 찍고 찾아가보시길. 물어물어 가는 편이 더 쉬울지도 모른다. 노포란 그래서 좋은 것 아니겠는가. 맛은 물론이고.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38-13
엄마의 식당, 민정식당
어릴 적부터 손 크고 손맛 좋은 어머니를 보고 자란 딸은 이제 ‘민정식당’을 꾸려가는 어엿한 대표다. 엄마의 비법이 담긴 요리를 정갈히 내놓는 연우도 대표는 가게 전화를 받을 때면 “네, 민정입니다”라고 인사한다. ‘민정’은 엄마의 이름. 연우도 대표가 엄마의 레시피 다음으로 자랑하는 것은 자양시장이다.“특별한 비법을 물으시지만, 엄마의 레시피라 저에게는 이 맛이 익숙한 것이기도 하고, 모든 음식의 가장 좋은 비법은 좋은 재료를 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저희는 국내산으로, 가장 신선한 재료들로만 만들거든요. 가까이에 자양시장이 있어 큰 힘이 돼요. 신선한 재료들을 바로 사올 수 있으니까요.”
사진 찍기 좋게 조금씩만 담아 달라고 몇 번을 말해도 도저히 조금 담아지지 않는 어머니의 그릇은 언제나 맛있는 김치가 그득, 두툼한 돈까스가 산처럼 담긴다. 이렇게 두둑히 쌓은 ‘돈까스안주’와 ‘모듬수육전골’이 이 집의 대표 메뉴다. 위치를 알고 오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는 가정집 골목에 숨어 있는 가게인데도 별다른 홍보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가게가 갑자기 인기를 끌면 단골 손님들이 못 올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대신 연우도 대표의 오빠가 접근성이 높은 ‘민정식당 서울숲 직영점’을 운영한다. 자양동에서도, 성수동에서도 손 큰 엄마의 레시피대로 양 많은 수육전골이 보글보글 끓는다. 어머니는 언제나 연우도 대표와 함께 자양동 옛집에서 요리를 내신다. 여행을 떠난 듯, 골목에 자리한 백년가게를 찾아가보시길.
▶서울 광진구 아차산로42길 41-4
맛에 대한 오랜 믿음으로, 장군갈비
1979년 12월에 문을 연 ‘장군갈비’. 정우성 대표가 입사한 때는 1983년 12월 10일이다. 여전히 그 날짜를 정확히 기억하는 그는 2011년에 이곳의 대표가 됐다.“제가 돈 욕심은 없어도 손님 욕심이 엄청 나요.” 그 옛날부터 장군갈비는 명물 중 명물이어서 매일 길게 대기 줄이 이어졌다. 차를 댈 데가 없어 손님들이 돌아가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다. 손님들은 기다려서 먹겠으니 돌려보내지 말라고 성화였다.
손님 욕심 많은 정우성 대표는 당연히 손님 편. 주차장을 빌려오고 어떤 방법을 찾아서라도 돌려보내선 안 된다고 고집했다.“갈비가 매일 먹는 음식은 아니잖아요. 좋은 날을 추억하기 위해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먹으려고 찾아온 손님들인 거예요. 그런 손님을 어떻게 돌려보내요.”
장군갈비는 어느 때나 손님들로 북적인다. 다들 자신만의 시간에 이곳을 찾아 오랜 시간 입맛에 길들여진 최고의 갈비탕 한 그릇을 먹고 가는 것이다. 사람이 많은데도 가게 분위기는 소란스러운 법이 없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휠체어를 탄 손님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습관처럼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안내하고 의자를 빼서 자로 잰 듯 정확하게 테이블 안으로 휠체어를 밀어드린 후 ‘한 그릇 드릴까요?’ 하며 주문을 받았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오늘도 장군갈비의 단골들은 아주 천천한 발걸음으로 가게를 향한다. 오래도록 지금 이 자리에 가게가 있을 것이란 믿음으로.
▶서울 광진구 용마산로 11
돌아서면 생각나는 고추짜장의 맛, 송죽장
1951년에 시작한 70년 전통의 중국집이다. 방송국 촬영팀이 수도 없이 찾아와 맛집 촬영을 해오던 영등포구 최고의 맛집. 바로 여의도 옆에 최고의 맛집이 있는데 멀리 갈 필요 있으랴. 매장에 걸린 방송 화면을 캡처한 사진 속에는 넥타이 부대가 타이를 풀어헤치고 짜장면과 짬뽕을 후루룩 먹는 점심 풍경이 담겨 있었다.이곳의 인기 메뉴는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매콤한 고추쟁반짜장과 고추짬뽕. 입에 불이 나게 매운 것은 아니어도 입맛을 계속 당기는 매운맛이다. 신연경 대표가 손님들이 음식에 고춧가루를 뿌려 먹는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입맛을 맞추기 위해 개발한 레시피라고 한다. 신연경 대표와 오랜 동료이자 주방과 홀을 진두지휘하는 김정일 지배인의 이름표 배지에는 이름 아래 ‘견습사원’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란다.
저녁이 되자 3층의 불도 켜지고, 손님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손님들이 각자 따로 와서 일행이 안에 있다며 자리를 찾아가는 풍경이 이어진다. 이 오래된 중국집으로, “송죽장에서 저녁쯤에 봅시다” 하며 잡은 약속을 지키러 하나둘 모여든 것일 터.
물론 혼자 오는 이들도 많다. 저녁을 때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한 그릇 호사를 온전히 누리기위해! 고추쟁반짜장(2인 메뉴)은 ‘다음에는 혼자 와서 입에 짜장이 묻어도 괘념치 않고 후루룩 마시듯 먹으리라!’ 생각하게 되는 맛이니까.
▶서울 영등포구 문래로 203
‘서울식’ 청국장, 순한 맛의 기억 진미식당
1978년, 용산구 ‘삼각지고가도로’ 밑, 지금 이 자리에서 부모님이 시작한 가게였다. 그때 가게에서는 고소한 콩국수와 맛좋은 라면을 팔았다. 겨울에도 콩을 활용할 방법을 찾다가 생각한 메뉴가 바로 청국장.레시피는 외할머니의 것이다. 어느새 ‘진미식당’의 대표 메뉴가 된 ‘서울식’ 청국장은 냄새가 덜 나고 순하며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먹으면 속이 편안하고 맛이 강하지 않아 좋다. 냄새가 덜 나고 부드러우니 손님의 연령층도 자연히 다양해졌다.
“청국장이 냄새가 심하고 맛이 강하게 되는 이유는 콩이 과발효가 되었기 때문이에요.” 김태우 대표는 콩이 최상의 상태로 발효되었을 때 청국장을 만들어야 순하고 누구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청국장이 완성된다고 말한다.
청국장을 만들기 위해선 콩을 불리고, 삶고 기계식 맷돌에 갈아야 하는데, 이는 모두 김태우 대표 아버지의 영역이다. 무엇이든 기본에 충실한 것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밥 짓는 일도 도맡아 하신다. 콩은 문경에서 나는 왕태콩을 대량 확보해 경기도 창고에 보관하며 사용한다. 일반 콩보다 고소하고 단백질 함유량이 많은 토종종자다.
이렇게 하여 일년 내내, 주 6일, 아침 6시부터 저녁 9시까지 부족함 없이 손님에게 청국장 한 그릇이 나가는 것이다. 뭐든 자신의 눈으로 봐야지만 안심이 되는 김태우 대표는 그 시간 동안 늘 가게를 지킨다. 가족이 함께하는 가게. 풍경도, 맛도 모두 정겹기 그지없다.
▶서울 용산구 백범로90길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