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대한 공사비·추가부담금에 "재건축으로 돈벌기 힘들다…환상 깨져"
공사비 3.3㎡당 1천만원대 시대…"규제 풀고 공사비 검증은 강화해야"

과거 재건축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에 비유됐다.

10평대 소형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으면 추가부담금 거의 없이 30평짜리 중형 아파트 입주가 가능했다.

반포·잠실·청담도곡 등 서울 5대 저밀도지구와 개포 주공1∼4단지 등 주로 저층 재건축 단지들이 그랬다.

용적률 70∼130% 안팎의 5층짜리 아파트가 250∼280%의 고층 아파트로 변신하는 사이 시세차익은 물론, 일부 단지는 일반 분양수입에 따른 환급금까지 받았다.

내 돈 한 푼 안들이고 큰 평수의 새 아파트에 입주하고 일부 단지는 환급금까지 챙기는 '로또 중의 로또'였던 셈이다.

당연히 정부가 올해 하반기부터 부과한다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 부담금 대상에서도 빠져나갔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불거져 나오는 공사비 갈등과 추가분담금 문제가 재건축 사업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는 도심 주택공급을 늘리기 위해 안전진단 문턱을 없애고 1기 신도시까지 속도전을 벌이고 있지만 현실의 반응은 정반대다.

재건축으로 황금알을 낳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서미숙의 집수다] 재건축 규제 푼다지만…황금알이 골칫덩어리로
◇ 재건축 단지마다 공사비 갈등…리모델링도 3.3㎡당 1천만원대
최근 서울지역 재건축 단지의 공사비는 최하가 3.3㎡당 800만원대다.

과거 3.3㎡당 500만∼600만원대에 시공 계약을 맺었던 재건축 조합들은 시공사로부터 잇달아 공사비를 3.3㎡당 800만원대로 인상해달라는 청구서를 받아 들고 있다.

서초구 반포지구의 '재건축 대어'인 반포 주공1·2·4주구의 시공사인 현대건설은 최근 조합에 인건비·자재비 인상과 설계변경 등을 이유로 총 4조원의 공사비를 청구했다.

당초 계약한 2조6천억원에서 55%(1조4천억원)나 오른 금액이다.

이 제안이 받아들여지면 3.3㎡당 548만원이었던 공사비는 829만원으로 껑충 뛴다.

송파구 잠실 진주아파트의 경우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작년 4월 3.3㎡당 510만원이던 공사비를 660만원으로 올렸는데, 또다시 889만원으로 올려줄 것을 요구하면서 조합과 갈등을 빚고 있다.

문화재 발굴 등에 따른 공사 지연, 외국산 마감재 선정 등이 문제가 됐다.

공사비 갈등은 시공사 선정 단계부터 걸림돌이다.

최근 시공사 선정 입찰을 마감한 송파구 송파동 가락삼익맨숀 재건축 사업은 조합 측이 3.3㎡당 810만원의 공사비를 제시했는데도 유찰됐다.

지난해 입찰 설명회 때만해도 대형 건설사 8곳이 참여해 관심이 집중됐던 곳인데 결과는 달랐다.

정비업계의 한 관계자는 "가장 적극성을 보이며 조합과 사전 공사비 협의를 해오던 업체마저 입찰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조합이 당황해하고 있다"며 "최고급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려면 3.3㎡당 810만원으로는 시공이 어렵다는 것으로, 공사비를 더 올리려는 목적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 우성4차는 공사비 3.3㎡당 760만원 조건에 두 차례나 유찰되자 공사비를 810만원으로 올려 조만간 재공고할 계획이다.

송파구 가락동 삼환가락아파트도 3월 중 사업시행인가가 나는 대로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인데, 예상 공사비가 3.3㎡당 810만원이다.

강남의 한 재건축 조합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강남에 고급 브랜드를 붙이려면 공사비가 최소 3.3㎡당 800만∼900만원은 돼야 한다고 조합들에 통보하고 있다"며 "3.3㎡당 1천만원을 부를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다음 달 GS건설과 리모델링 시공계약을 맺을 예정인 강남구 청담 건영은 신축도 아닌 리모델링 사업 공사비가 3.3㎡당 1천100만원대에 달할 전망이다.

이는 재건축·재개발이나 리모델링 등 정비사업을 통틀어 역대 최고 공사비이다.

3종 일반주거지인 청담 건영은 현재 용적률이 399%로, 허용 용적률(300%)보다 높아 재건축이 불가능하다.

재건축을 하면 용적률이 되레 100% 가까이 깎여 리모델링밖에 해답이 없는 것이다.

GS건설 관계자는 "단지가 240가구로 작고, 고급 마감재 사용, 리모델링 시공상의 난이도 등이 반영돼 공사비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서미숙의 집수다] 재건축 규제 푼다지만…황금알이 골칫덩어리로
◇ "재건축 환상이 깨졌다"…재건축 아파트 인기 시들
급격한 공사비 상승은 재건축 시장의 판도까지 바꾸고 있다.

정부는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안전진단을 없애는 등 재건축 규제를 풀겠다고 입장인데, 정작 조합들은 현재 공사비로는 막대한 추가분담금이 불가피해 재건축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조합원 분담금을 낮추기 위해선 일반 분양가를 높여 조합의 수입을 늘려야 하지만, 지금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들은 기존 용적률이 150∼200%에 달하는 중층아파트가 대부분이어서 일반분양분이 별로 없다.

대치동 은마아파트, 압구정 현대아파트 등 강남 대표 아파트는 물론이고 이들 단지보다 용적률이 더 높은 1기 신도시는 사업성이 더 낮다.

노원구 일대 30년 이상 노후 아파트들은 최근 상계 주공5단지 분담금 여파로 재건축 추진이 사실상 중단됐다.

상계 주공5단지는 전용면적 84㎡를 분양받는 조합원의 추가분담금이 5억원에 달한다는 전망이 나오자 지난해 5억원대에 거래됐던 전용 31.98㎡의 실거래가가 올해 들어 4억6천만원 선으로 떨어졌다.

2021년 최고가 8억원에 비하면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상계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소형 아파트 위주인 상계동 아파트들은 추가 분담금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되며 조합들이 패닉에 빠진 상태"라며 "재건축에 대한 환상이 깨지면서 투자자들도 발을 빼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강남권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재건축 사업이 지지부진한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는 전용 76.5㎡의 거래가가 이달 들어 23억7천800만원, 전용 82.51㎡는 26억7천만원에 거래되며 지난해 9∼10월 대비 2억원 이상 떨어졌다.

강남구 압구정 3구역도 최근 조합원 주택형 선호도 조사에서 추가분담금 예시가 나왔는데, 30평형대 조합원이 동일 평수로 가는 데 3억300만원, 54평형으로 가려면 18억7천만원을 내야 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뒤숭숭한 분위기다.

공사비가 급등하면서 최고 70층 높이의 초고층 아파트 건설을 계획 중인 일부 조합들은 층수를 35층 이하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50∼70층 초고층 아파트의 공사비는 35층 이하의 1.5∼2배에 달해 추가분담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과거 35층으로 묶여 있던 규제를 풀어 초고층 건설이 가능해졌는데도 조합 스스로 초고층을 포기하는 것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앞으로 층간소음 대책, 제로에너지 주택 건설 등 공사비 오를 일만 줄줄이 남은 상태"라며 "재건축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고, 지금은 재건축 조합원들이 얼마나 오를지 모를 공사비와 추가분담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도 재건축 단지의 인기는 예전만 못하다.

부동산R114 분석에 따르면 올해 1∼2월에 팔린 30년 초과 재건축 연령이 된 서울 아파트의 매매가는 작년 11∼12월 매매가보다 높게 팔린 상승 거래가 33.8%에 그쳤다.

이는 서울 평균 상승 거래(43.8%)보다 10%포인트 낮은 것이다.

대신 하락 거래는 59.2%로 서울 평균(49.6%)보다 10%포인트 높았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연구원은 "과거 집값 상승기에는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부터 투자 수요가 몰리고 타지역까지 가격 상승을 견인했지만 앞으로 재건축될 아파트는 수익성이 낮아 가격 변동이 크지 않다"며 "시대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서미숙의 집수다] 재건축 규제 푼다지만…황금알이 골칫덩어리로
◇ 업계 "기부채납·임대주택 단가 등 현실화"…전문가 "공사비 검증 강화"
재건축 사업의 어려움이 커지자 건설업계와 전문가들은 도심 주택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의 사업성을 높일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기부채납 문제다.

서울시는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용적률 인센티브를 주고 인허가도 단축시키겠다는 입장이지만, 과도한 기부채납 조건이 사업성을 악화시킨다는 불만을 사고 있다.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와 강남구 압구정동 3구역 조합은 신속통합기획안의 기부채납안에 반발해 신통기획 포기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재건축 임대주택 매입 단가를 현실화해달라는 요구도 거세다.

현재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하려면 일정 부분의 임대주택을 건설해 지자체에 매각하는데, 이 때 지자체는 해당 임대주택을 공공건설임대주택 건설에 적용하는 표준건축비로 사고 있다.

현재 표준건축비는 3.3㎡당 369만원 선으로, 이는 분양가 상한제 대상 아파트에 적용하는 기본형 건축비(3.3㎡당 675만원)의 55%에 불과하다.

그나마 재개발 임대아파트는 임대아파트의 토지비까지 감정가로 인수해주지만, 재건축은 토지비 없이 건물에 대해서만 표준건축비로 인수해 조합의 손실이 과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서울은 소셜믹스 때문에 임대아파트를 싸게 따로 지을 수도 없는데 실제 공사비의 3분의 1 수준에 내놓으라는 것은 조합에 과도한 부담이 된다"며 "최소한 기본형 건축비 수준으로 매입 단가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확대할 수 없다면 시공사의 공사비 검증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토지신탁이 지난해 말 시공사를 선정한 군포 금정역 역세권 재개발 사업과 안산 주공6단지 재건축 사업은 각각 공사비가 3.3㎡당 587만원, 580만원 선으로 600만원이 채 안된다.

수도권 사업장이긴 하지만 군포는 DL이앤씨·현대엔지니어링 컨소시엄, 안산은 포스코이앤씨가 수주했는데, 공사비가 서울보다 3.3㎡당 200만∼300만원 이상 싸다.

현재 정비사업의 공사비가 10% 이상 변동이 있을 경우 한국부동산원의 공사비 검증을 하도록 하지만, 건설사의 원가를 파악하긴 쉽지 않아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감정평가업계의 한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와 중소 건설사는 인건비나 일반관리비 등에서 공사비 차이가 날 수 있지만, 같은 대형 건설사 내에서도 서울과 수도권의 공사비 차이가 큰 것은 마감재 차이를 고려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정부는 공사비 갈등을 푼다고 착공 이후에도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공사비 인상이 가능하도록 하는 등 시공사의 공사비만 제대로 받게 할 것이 아니라 공사비가 제대로 책정되고 있는지 검증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탁업계의 한 관계자는 "원가가 불명확한 외국산 마감재 등 불필요한 자재 비용도 줄여야 공사비를 낮출 수 있다"고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