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탈 총리, 살충제 사용 절반 감축 목표 '일시 보류'
2008년 생태 전환 위해 시작…15년째 목표 달성 못 해
환경 단체들 "무능 정부가 선택한 손쉬운 탈출구" 맹비난
농가 달래기, 생태보호 미뤄둔 佛정부…농민과 환경 사이 딜레마
프랑스 정부가 트랙터를 끌고 도로로 쏟아져 나온 농민들을 달래려고 살충제 사용 감소를 골자로 한 '에코피토 계획'을 일시 보류하기로 하면서 환경단체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정부가 농민들의 압력에 굴복해 잘못된 선택을 내렸다고 우려하고 있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지난 1일(현지시간) 관계 부처 장관들과 함께 공동 기자회견을 열어 살충제 사용을 줄이기 위한 에코피토 계획을 중단하고 새로운 기준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에코피토 계획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 시절인 2008년 친환경 농업을 촉진하고 살충제 사용을 줄이기 위해 처음 시작됐다.

환경에 해를 끼치고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살충제 사용을 2018년까지 10년 안에 50% 줄인다는 게 핵심 목표였다.

또 농업 및 환경 분야의 연구를 촉진해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한 농법을 개발하고, 농민들을 상대로 살충제 대체 방법과 친환경 농법을 교육·홍보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살충제 사용 줄이기는 현실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

프랑스 BFM TV에 따르면 2009년∼2011년에 비해 2011년∼2013년 살충제 사용이 오히려 5% 증가했다.

이에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후임인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2015년 '에코피토 2' 계획을 발표하고, 살충제 사용을 50% 줄이는 기한을 2025년으로 미뤘다.

이 계획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시절 다시 한번 수정된다.

2018년 마크롱 대통령은 '에코피토 2+'를 통해 전략을 대폭 수정했고, 이때 암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글리포세이트의 사용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방안도 포함했다.

농가 달래기, 생태보호 미뤄둔 佛정부…농민과 환경 사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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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롱 정부도 그러나 지난해 거듭 목표치를 수정, 살충제 50% 감축 목표 기한을 2025년에서 2030년으로 5년 다시 미뤘다.

감축량도 살충제 사용량이 많았던 2015년∼2017년을 기준으로 삼아 이전보다 하향 조정됐다.

프랑스 정부가 번번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배경엔 이를 따라야 하는 농민들의 반발이 크기 때문이다.

농민들은 우선 살충제 사용량을 줄이고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농가에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고 비판했다.

특히 소규모 농가나 수익성이 취약한 농가에는 경제적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병충해와 싸우는 데 필요한 살충제 사용량을 줄일 경우 농작물 수확량이 감소하고 결과적으로 농가 소득 감소로 이어진다는 비판도 많다.

친환경 농법을 적용하는 데에는 시간이 따르는데, 정부가 이런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고 무조건 이상적인 목표치만 설정한다는 불만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건 자신들에겐 아예 사용이 금지된 살충제인 티아클로프리드를 쓴 외국산 농산물이 프랑스 땅에 값싸게 수입돼 시장에 유통되기 때문이다.

티아클로프리드는 2019년부터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사용이 금지됐지만, 이를 사용한 외국 농산물 수입을 막는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프랑스 정부는 농민들의 시위에 사실상 백기를 들고 에코피토 계획을 일시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EU보다 과도하게 규제를 내놓는다는 성토에 아탈 총리는 "유럽과 프랑스의 기준을 일치시키고, 유럽의 다른 곳에서 승인된 물질을 우리만 금지하진 않을 것"이라고도 말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로 화가 난 농민들 앞에서 생태 보호는 뒤로 미뤄두기로 한 것이다.

농가 달래기, 생태보호 미뤄둔 佛정부…농민과 환경 사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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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비롯한 정부의 각종 농가 지원책에 농민들은 트랙터 시위를 접고 농장으로 돌아갔으나, 정부의 '농가 당근책'은 곧장 환경단체의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자연기금(WWF) 프랑스 지부는 정부의 이번 결정이 "재앙적인 신호"라며 "정부는 농업 위기 해결을 위해 잘못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꼬집었다.

WWF 프랑스 지부는 "살충제로 인한 오염은 기후 변화와 함께 동식물 다양성 감소의 주요 요인 중 하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생태 전환에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덧붙였다.

15년간 에코피토 계획을 감시해 온 '미래 세대 협회' 역시 "역사적인 후퇴"라고 성토했고, 생물 다양성 연구자 단체도 "우리 미래에 필수적인 생태적 전환을 관리할 능력이 없는 정부가 무능함을 인정한 어리석은 행동이자 손쉬운 탈출구"라고 맹비난했다.

생태주의 정치인들도 정부 비판에 가세했다.

녹색당의 마린 통들리에 대표는 엑스(X·옛 트위터)에 "정부는 물, 토지, 생물 다양성, 심지어 우리의 건강까지 보호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고 비꼬았고, 같은 당 소속 다비드 코르망 유럽의회 의원은 "문제의 본질을 해결하지 않고 환경을 희생시키는 건 불행을 가중하고 희생을 계속 강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기농법으로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민들도 7일 파리 국회 앞에 몰려와 정부 발표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농가 달래기, 생태보호 미뤄둔 佛정부…농민과 환경 사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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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생태주의자들의 이런 비판에 "완전한 계획 철폐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마르크 페스노 농업부 장관은 4일 LCI 라디오에 출연해 "일시 중지는 후퇴가 아니다"라며 "프랑스는 살충제 문제에 있어서 유럽에서 가장 많은 진전을 이룬 국가'라고 강조했다.

크리스토프 베슈 환경부 장관도 같은 날 '라 트리뷴 뒤 디망슈'와 인터뷰에서 "에코피토 계획을 3주 이내에 재검토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