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 번역 출간
168통의 내밀한 편지들, '어린 왕자'를 꽃피우다
"나의 모든 것, 난 당신에게 충실해. 나는 당신을 세계 곳곳으로 데려갈 거고, 우리는 별들을 길들일 거야."(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가 그의 아내 콘수엘로에게 쓴 편지 중에서)
'생텍쥐페리와 콘수엘로, 사랑의 편지'(문학동네)는 '어린 왕자'를 쓴 프랑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1900~1944 실종)와 그의 아내 콘수엘로(1901~1979)가 나눈 격정의 편지 168통을 모은 책이다.

1930년 두 사람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처음 만난 시점부터 생텍쥐페리가 비행 도중 실종된 1944년까지 15년간 서로에게 보낸 편지들에는 두 사람 간의 오해와 반목, 사랑과 신뢰는 물론 생텍쥐페리라는 위대한 작가의 속마음과 창작의 이면이 생생히 담겼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프랑스 문학을 주제로 한 강연장에서 처음 만난 앙투안과 콘수엘로는 서로에게서 자신의 창조적 분신을 발견하고서 금세 매료돼 짧은 동거를 거쳐 1931년 결혼식을 올린다.

그러나 사랑으로 시작한 둘의 결혼 생활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북아프리카부터 남아메리카까지 세계의 상공을 누비던 앙투안의 불안정한 생활 탓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기질 차이도 한몫했다.

엘살바도르 출신의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콘수엘라는 자주 고립감을 느껴 친구들과 자유로운 교류를 원했지만, 긴 비행에 지친 앙투안은 그녀에게서 안정을 원했다.

이런 갈등은 때론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앙투안은 자신의 대표작 '어린 왕자'를 인용하면서 "'꽃은 언제나 어린 왕자 탓을 했다.

그래서 어린 왕자는 떠났다!' 이게 바로 내가 불평하는 이유야"라고 쓰기도 한다.

갈등과 반목, 오해에도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를 이해하는 마지막 유일한 안식처를 자처한다.

168통의 내밀한 편지들, '어린 왕자'를 꽃피우다
특히, 비행으로 평탄치 못한 일상을 보내는 남편에게 콘수엘로는 끊임없이 글쓰기를 독려하고 심정적 지지를 보내는 대목들이 눈길을 끈다.

"토니오(앙투안의 애칭), 소설 열심히 써서, 아주 아름다운 작품을 완성해봐. 우리의 이별, 절망, 우리 사랑이 흘린 눈물이 당신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물들의 신비를 꿰뚫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49쪽)
"난 당신이 그 책을 끝내야 한다고 굳게 믿어. 책이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전투야. 글을 써. 절대 피하지 말고."(316쪽)
과연 아내 콘수엘로의 지지가 없었다면 전쟁 중 비행사로 일하며 글쓰기를 병행했던 작가가 '어린 왕자'나 '야간 비행', '전시 조종사' 같은 후대의 큰 사랑을 받은 작품들을 완성해낼 수 있었을까.

생텍쥐페리의 대표작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책으로 꼽히는 '어린 왕자'가 탄생하게 되는 흥미로운 장면도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들 속에서 만날 수 있다.

'어린 왕자'는 1943년 초판이 출간됐지만 앙투안과 콘수엘로가 결혼하기 전인 1930년에 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 쓴 편지에서도 이미 그 단초가 있다.

"옛날 옛적에 한 아이가 보물을 발견했어. 하지만 그 보물은 어린아이의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두 팔로 그 아름다움을 안고 있기에는 너무 아름다웠지. 그래서 아이는 우울해졌어."
책에는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서부터, 작가가 직접 그린 '어린 왕자' 삽화, 육필 원고와 엽서, 화가였던 콘수엘로가 그린 그림 등 풍성한 자료들은 물론, 편지가 쓰인 당대의 맥락을 상세한 각주로 담아 생텍쥐페리의 삶과 그가 살았던 시대의 초상을 입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168통의 내밀한 편지들, '어린 왕자'를 꽃피우다
자국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프랑스에서는 이런 종류의 서간 문학이 잘 발달해있고 독자층도 넓다.

생텍쥐페리나 알베르 카뮈 같은 유명한 작가들은 물론 프랑수아 미테랑 등 정치 거물에 이르기까지, 이들이 가까운 사람과 주고받은 내밀한 편지와 엽서 등을 잘 보전해 연구하고 주석을 붙여 갈리마르 같은 명망 높은 출판사가 펴내는 건 이 나라의 오랜 문학 전통 중 하나다.

이 책 역시 생텍쥐페리가 실종되고서 무려 77년이 지나 발견된 편지들이 밑바탕이 됐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나 엽서가 매우 희귀해진 시대에 더 빛을 발하는 책이 아닌가 싶다.

문학동네. 윤진 옮김. 436쪽.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