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가 다시 연중 최저수준으로 떨어지자 1992년 8월 21일 100여명의 투자자들이 21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 명동 증권빌딩에 모여 주가하락에 대해 정부측에 항의하며 매매주문표를 날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주가가 다시 연중 최저수준으로 떨어지자 1992년 8월 21일 100여명의 투자자들이 21일 오후 2시 30분경 서울 명동 증권빌딩에 모여 주가하락에 대해 정부측에 항의하며 매매주문표를 날리고 있다. 신경훈 기자
서울 명동 하늘과 거리가 온통 흰 종이로 뒤덮였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같은 이 순간은 1992년 8월 21일, 주가 하락에 분노한 투자자들이 서울 명동 증권가 옥상에 올라가 주식매매주문표를 뿌리는 상황입니다.

코리아디스카운트 논란이 거셉니다. 한국 상장기업의 주식 가치 평가 수준이 유사한 외국 상장기업에 비해 낮게 형성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어서입니다. 지난 1월 주요 20개국 가운데 한국 주식시장이 가장 부진했습니다. 그 결과, 투자자들의 자금도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1월 한달 동안 국내 투자자 예탁금이 무려 9조원이나 감소했다고 합니다. 투자자들이 미국 등 해외 주식에 투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코리아디스카운트 논란은 21세기의 현상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 경제가 고속성장의 가도를 달리고 있던 1980~1990년대에도 한국 주식시장은 투자자들을 화나게 했었습니다. 해외 투자가 불가능했던 1980~1990년대, 한국의 투자자들은 어떤 방법으로 코리아디스카운트에 대응했을까요?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투자자들은 민주화운동과 노사분규 때처럼 시위를 벌였습니다. 다른 특별한 대응방법이 없어서였습니다.
증권투자자 2백50여명이 1989년 11월 7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와 증권감독원에서 최근 급락한 증시 부양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증권투자자 2백50여명이 1989년 11월 7일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와 증권감독원에서 최근 급락한 증시 부양책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1989년 11월 7일 투자자들이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에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재산 배상하라'고 적은 현수막을 펼치고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주가 하락이 계속되고 회복 조짐이 보이지 않자, 투자자들이 증시 부양책을 요구하며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었습니다. 1989년 3월31일 종가 기준으로 종합주가지수 1003을 기록했습니다. 사상 처음 1000을 돌파해, 많은 국민들이 주식 계좌를 개설하고 투자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종합주가지수는 이내 하락세로 바뀌었고, 연말까지 800~900 선에 묶여있었습니다.
주가폭락사태에 항의하는 투자자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경찰들이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를 에워싸고 있다.
주가폭락사태에 항의하는 투자자들의 시위가 이어지자 경찰들이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를 에워싸고 있다.
1990년 4월 26일 경찰이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주가 하락으로 뿔난 투자자들의 증권거래소 난입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1990년 한국의 종합주가지수는 계속 휘청거렸습니다. 870~900을 오가던 종합주가지수는 4월에 들어서 735까지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투자자들은 다시 거리로 나왔습니다. 이번엔 단순 시위가 아니었습니다. 투자자들은 명동 을지로 등지의 각 증권사 영업장에 몰려가 전광판을 끄고 집기를 부수는 등 격렬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일부 증권사 객장은 주식거래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주식투자자 700여명이 1990년 9월 14일  서울시 중구 명동YWCA강당에서 '증권파동 전국 투자자 총궐기대회'를 갖고 반대매매 결사저지를 결의했다.
주식투자자 700여명이 1990년 9월 14일 서울시 중구 명동YWCA강당에서 '증권파동 전국 투자자 총궐기대회'를 갖고 반대매매 결사저지를 결의했다.
1990년 9월 14일 밤, 투자자들이 서울 명동YMCA 강당에서 '근조'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1990년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한 페르시아만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대외적인 환경에 특히 취약한 우리 경제구조 때문에, 종합주가지수는 곤두박질쳤습니다. 투자자들은 죽은 주식시장을 살려내라는 의미로 '근조' 손팻말을 들기까지 했습니다.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치자  투자자들이 1992년 6월 9일 서울 명동의 한 증권사 전광판에 주가하락에 항의하는 내용의 벽보를 붙였다.
주가가 연일 곤두박질치자 투자자들이 1992년 6월 9일 서울 명동의 한 증권사 전광판에 주가하락에 항의하는 내용의 벽보를 붙였다.
1992년 6월9일, 서울 명동의 한 증권사 객장. '소도 없고 논도 없고 남은 것은 깡통일세...', '국민주로 망한 국민 대선으로 심판하자' 등 주식으로 큰 손해를 본 투자자가 주가 하락을 원망하는 내용의 벽보를 써서 시세판 위에 붙였습니다. 종합주가지수는 1992년 6월 560선까지 밀렸습니다. 3년 동안 절반 수준으로 내려간 것이었습니다. 물론 한국이 일시적 수출 부진, 정국불안 등의 문제를 안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고도 성장기에 있던 때입니다. 투자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투자자 시위의 하이라이트는 명동에서 벌어졌습니다. 1992년 8월 21일 투자자들이 명동 증권가 빌딩 옥상에서 당시 주식거래 때 사용하던 매매주문표를 허공에 날렸습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명동 거리는 하얀 주문표로 뒤덮였고, 시민들은 그 주문표를 밟고 지나갔습니다.
서울 명동에서 시민들이 1992년 9월 22일 거리에 뿌려진 주식매매전표를 밟고 지나가고 있다. 1992년 8월21일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에 항의하는 뜻으로 명동거리에 전표를 뿌린데 이어 이날도 같은 시위가 벌어졌다.
서울 명동에서 시민들이 1992년 9월 22일 거리에 뿌려진 주식매매전표를 밟고 지나가고 있다. 1992년 8월21일 투자자들이 주가 하락에 항의하는 뜻으로 명동거리에 전표를 뿌린데 이어 이날도 같은 시위가 벌어졌다.
1989년 3월에 1000을 돌파했던 코스피지수는 아직도 2600선에 머물러 있습니다. 1989년에 비해 GDP가 5~6배 정도 커진 것을 생각하면, 코리아디스카운트가 심각한 수준입니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23년 발표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원인분석' 이슈보고서는 그 주요 원인을 1)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취할 유인 높은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2) 미흡한 배당(주주 환원), 3) 회계정보의 불투명성, 4) 국내 투자자의 단기 투자 성향 등으로 꼽았습니다. 하루빨리 한국의 주식시장이 한국의 경제 규모와 위치에 걸맞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되길 기대합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