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뇌물 창구' 출판기념회
‘미의(微意).’ 지난해 12월 한 재선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갔을 때다.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오래 기다린 끝에 주인공과 악수한 뒤 책값을 내려고 할 때 옆사람이 봉투에 이렇게 적었다. ‘변변치 못한 작은 성의’라는 뜻이다. 과연 그럴까. 선거 때마다 봇물 터지는 정치인 출판기념회는 이보다 더 남는 장사가 어디 있을까 싶다.

의원이 속한 국회 상임위원회 관련 기업 또는 공공기관들은 책값으로 수십만~수백만원을 봉투에 넣는다. 출판기념회 한 번으로 수억원까지 챙길 수 있으니 선거 실탄을 채울 황금어장을 놓칠 수 있겠나. 책 내용도 울림을 주기는커녕 성장 과정, 지역 개발 포부 등 고만고만한 내용 일색이다. 그나마 대부분 대필작가를 고용한다. 저술 활동으로 분류돼 정치자금법 적용을 받지 않아 모금 한도도, 회계 보고 의무도 없다. 선거일 90일 전 금지 규정만 있고, 책값을 얼마나 받든 자유니 ‘검은돈’ 창구로 안성맞춤이다.

‘뒷거래’ 공개가 두려워 장부는 특급 비밀이고, 총액도 대부분 본인 외엔 알기 어렵게 한다. 현금인 데다 이름을 안 적은 봉투가 많아 추적도 힘들다. 출판기념회 뒤 의원회관 사무실에 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시집을 판 의원, 장롱 속 3억원을 출판기념회에서 받은 책값과 부친상 조의금이라고 한 의원, 출판기념회 수익금 7000만원을 아파트 전세대출금 상환에 쓴 의원, 법안 발의 대가로 출판기념회에서 수천만원을 받은 의원 등 요지경이 한둘이 아니다. 이런 폐습을 막겠다고 여야는 여러 번 출판기념회 금지를 선언했다. 도서 정가 판매, 수입·지출 내역 보고 등을 담은 법안도 발의됐지만, 노다지를 놓기 힘들었는지 매번 공염불이 됐다. 국민권익위원회가 의례적인 범위를 넘는 책값은 김영란법 위반이라고 했지만, 모호하기 짝이 없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어제 출판기념회 등을 통한 정치자금 수수를 금지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과거 이런 논의가 흐지부지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해내겠다”는 각오다. 모든 의원이 마땅히 동참해야 한다. 또 빈말로 정치 불신을 가중하지 않길 바란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