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된 꼬마 단골들 찾아와 눈물…"양심껏 장사·열심히 살아 후회 없다"
"라면 한봉지 살 돈 없어 배곯은 시절도"…건강 이유로 아쉬운 '영업 종료'
30여년 장사 접는 은마상가 만나분식…"추억 만들어줘 감사"
"영업 종료하신다고 해서 다녀왔어요.

어릴 때부터 오던 곳인데 아쉽네요.

여전히 맛있어요.

그동안 좋은 추억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상가의 터줏대감 '만나분식'이 7일까지만 영업을 하고 문을 닫는다.

30여년간 가게를 지켜온 사장 맹예순(62)·박갑수(67) 부부가 건강상 이유로 더 이상 장사를 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매콤달콤한 떡볶이와 바삭바삭한 떡꼬치부터 뻥튀기 사이에 아이스크림을 끼워주는 별미 메뉴까지. 오랜 시간 대치동 주민의 입맛을 사로잡아 온 분식집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지난 2일 오후 가게 앞에는 마지막으로 '추억의 맛'을 느끼려는 손님 수십명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고등학생 때부터 만나분식을 찾았다는 이인수(34)씨는 "근처 학교에 다녀서 친구들이랑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와서 치즈 라볶이나 떡꼬치를 먹었다"며 "지금은 일본에 거주 중인데 친구들이 '이번에 한국 들어와서 꼭 먹고 가라'고 해서 찾아왔다"고 말했다.

떡꼬치를 포장해 가려고 줄을 선 한 60대 손님도 "아이가 고등학생일 때 근처의 학원에 다니면서 은마상가에 꼭 들러서 떡꼬치를 주로 먹었다.

얇은 떡이 아니라 두꺼운 걸 튀겨 소스를 묻혀주는 게 별미"라며 "문을 닫는다길래 옛 추억도 생각나고 아쉬워서 마지막으로 찾아왔다"고 전했다.

네이버 지도 만나분식 페이지에도 "영업을 그만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달려왔다", "22년 먹었는데 마지막이라니…학생 땐 저 식탁이 컸는데 오랜만에 가서 추억과 함께 먹으려고 보니 작아졌다", "없어진다고 하니 아쉬울 따름"이라는 손님들의 리뷰가 줄줄이 달렸다.

30여년 장사 접는 은마상가 만나분식…"추억 만들어줘 감사"
애초 작년 12월 말 가게 문을 닫으려 했지만 '조금만 더 열어달라'는 손님들의 성원에 1주가량 영업을 연장했다.

길게는 수십년간 이곳을 찾았다는 손님들은 부지런히 음식을 조리하는 사장 부부와 가게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바빴다.

이들 부부가 이곳에서 떡볶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은 1990년 무렵이다.

남편이 지병으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아내 맹씨가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맹씨는 "애들이 둘이었는데 밥을 굶기고 살 순 없으니 시작한 것"이라며 "사느냐 죽느냐 그 기로에서 라면 한 봉지 사 먹을 돈이 없어서 배를 곯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 길을 걸어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지난날을 돌아봤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8∼9시까지 음식을 팔지만 정리하고 다음날 영업 준비까지 하고선 매일 새벽 3∼4시에야 집에 들어왔다.

매일 같이 장사를 하느라 아이들 학창 시절 학교에 한번 못 가본 것이 여전히 가슴 아픈 일이라고 했다.

맹씨는 "그래도 그렇게 키운 자식들을 벌써 대학도 졸업시키고 시집 장가까지 보냈으니 엄마로선 도리를 다한 것 아니겠느냐"며 "열심히 살았다.

지금 세상을 떠나도 후회는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단골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고춧가루 양념 하나도 수입산을 쓰지 않고 내가 안 먹는 음식은 남에게 안 준다는 생각으로 양심껏 장사했다"고 답했다.

성인이 된 '꼬마 단골'들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찾아와선 고맙다며 선물을 주고 가거나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맹씨는 "조그마할 때 오던 애가 '내가 대학병원 신경외과 박사가 됐으니 나중에 찾아오시면 검진해주겠다'라고 했다"며 "끌어안고 우는 손님들도 있었고 그래도 내가 '헛되게 아이들 상대하지는 않았구나' 싶었다"며 소회를 전했다.

30여년 장사 접는 은마상가 만나분식…"추억 만들어줘 감사"
어린 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가게를 찾던 손님들이 성인이 돼 아이를 데리고 오기도 했다.

중학생 딸과 가게를 찾은 정주연(42)씨는 "내가 어릴 적부터 가게를 왔는데 결혼해서 아이 낳고는 남편과 아이를 데리고 다녔다.

영업 종료 소문을 듣고 없어지기 전에 먹으려고 왔다"며 "다 맛있는데 특히 꼬치에 꽂지 않고 그냥 튀겨서 쌓아 내주는 떡꼬치가 집에서 하는 것처럼 맛있어서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고 웃었다.

초등학교 5학년 아들과 함께 온 김지영(39)씨도 "결혼 전부터 꾸준히 먹으러 오다가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처음 데려오기 시작했다"며 "아이가 처음엔 식당이 낡아서 별로라고 하다가 뻥튀기 아이스크림에 맛을 들이고는 떡볶이며 튀김을 전부 좋아하는데 문을 닫아 서운하다"고 전했다.

남편 박씨는 "문을 닫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손님들이 너무 몰려서 남은 며칠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걱정"이라면서도 "그래도 이렇게 여기까지 찾아와준 걸 생각하면 참 고맙고 아쉽고 섭섭할 따름"이라고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