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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대전이 만든 '더플코트' 자유와 위로의 상징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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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일 인문학

    우리가 더플코트를 사랑하는 이유

    英 해군 방한복이었던 코트
    전쟁 이겨 자유 얻은 나라엔
    평화 상징으로 불리며 불티

    '이 아이를 잘 돌봐주세요'
    전쟁고아 울린 패딩턴부터
    '욘사마'까지 입으며 인기
    더플코트를 입은 곰돌이 ‘패딩턴’이 손을 흔들고 있다.
    더플코트를 입은 곰돌이 ‘패딩턴’이 손을 흔들고 있다.
    웅크러들면서도 설레고, 귀찮을 줄 뻔히 알면서도 함박눈이 기다려지는 12월이다. 1년 열두 달 중 마지막 달, 이렇게 효율보다는 낭만에 기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따뜻하고 가볍고 편안한 거위털 패딩보다는 (별로 따뜻하지도 않거니와) 어쩌면 좀 무겁고 거추장스러우면서도 조금은 철딱서니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더플코트. 이 패션 아이템이야말로 비효율과 낭만의 계절에 안성맞춤이 아닌가 생각한다.

    혹독한 전장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내는, 생존을 위해 고안된 이 코트가 어쩌다 우리에게 낭만의 아이콘이자 설렘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했을까. 그 과정을 알고 입는다면 더 즐겁고 보람된 멋 내기가 되지 않을까. 지금부터 더플코트에 대해서 조금 자세히 알아보자.
    1958년 더플코트를 입은 장 콕토(가운데)와 코코 샤넬(왼쪽).
    1958년 더플코트를 입은 장 콕토(가운데)와 코코 샤넬(왼쪽).
    더플코트(duffle coat)는 벨기에 안트베르펜이 속한 넓은 지역에 속한 작은 도시 ‘더플(Duffel)’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 이 도시는 15세기부터 주로 더플 백이라 불리는 커다란 가방을 만드는 거칠고 두꺼운 울 원단을 생산하던 도시다. 이 원단이 유럽 전역에 널리 보급됐지만 이 원단이 코트 생산에 사용된 적도, 이 도시에서 더플코트가 생산된 적도 없으므로 벨기에의 작은 도시 이름이 이 코트의 이름이 된 이유는 여전히 미궁이다.(물론 초기 더플코트의 원단은 더플 타운이 생산하던 원단과 매우 흡사하다고 한다.)

    지금의 더플코트 형태에 영향을 미친 것은 1820년 개발돼 1850년 전후 유럽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던 폴란드 군용 플록 코트의 디자인이다. 화려한 장식과 함께 로프와 토글(뿔 모양으로 뾰족하게 깎은 나무 단추) 잠금, 그리고 커다란 모자가 달린 이 코트의 디자인을 기초로 1850년 영국의 한 코트 업체가 첫 더플코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890년대 영국 해군에 대량 공급된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본격 군수품으로 황갈색 캐멀 컬러로 제작, 공급됐다. 장갑을 끼고도 단추를 쉽게 여밀 수 있고 각진 해군 모자 위에도 훅 뒤집어쓸 수 있는 큰 모자가 달린 덕분에 장병들의 인기를 얻었다. 2차 세계대전에는 전 해군에 공급됐고, 양차 대전 내내 혁혁한 전공에 빛나는 더플코트의 애용자, 장교 버나드 몽고메리의 이름을 따 ‘몬티 코트’라는 별명도 얻게 된다.

    군수품으로 개발된 싸고 튼튼한 더플코트는 전후에 민간인, 특히 학생들의 큰 인기를 얻는다. 영국군에 의한 승리로 자유를 얻은 나라에서는 더플코트를 입는 일이 많았다. 나치의 혹독한 박해와 이에 맞서 얻어낸 자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일로 받아들여졌다. 전쟁의 잉여 군수품을 민간에 공급하던 글로버올이라는 한 영국 업체는 더 가벼운 소재와 몸에 더 잘 맞는 디자인으로 순수 민간 더플코트를 생산·판매하면서 로프와 나무 단추를 가죽과 소뿔로 업그레이드했다.

    더플코트가 절정의 인기를 얻은 것은 1950~1960년 사이의 일이다.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프랑스 지성의 상징 장 콕토가 자신만의 하얀색 버전으로 지식인의 이미지를 공고히 했고, 파리 좌안의 자유주의자들이 부르주아와의 시각적 분리를 위해 싸고 튼튼한 더플코트를 자주 활용했다.

    영국에선 핵 철폐를 주장하는 평화주의자들의 가두 행진 시위에 더플코트가 자주 목격됐다. 그렇게 더플코트는 자유와 평등, 평화 같은 이미지를 가득 품게 된다. 또 한없이 보듬어주고 싶은 동화 캐릭터 곰돌이 패딩턴도 있다. 1958년 원작이 빛을 본 이래로 패딩턴은 2014년 디지털 애니메이션 버전까지 일관되게 더플코트를 입어왔다. 패딩턴이 처음 대중에게 알려질 때 양차 대전 후 어른이 된 전쟁 고아들은 패딩턴에게 달려 있던 ‘이 아이를 잘 돌봐주세요’라는 인식표 같은 글귀를 보며 전쟁의 상흔을 떠올렸다. 어른이 된 전후 세대들은 전장에 떠나보내야 했던 부모 대신 자신을 안아주던 더플코트의 포근함과 패딩턴의 처지에 크게 감정이입을 했음이 분명하다.

    록음악 팬들에겐 1976년 제작된 컬트 영화 ‘지구에 떨어진 사나이’에서 데이비드 보위가 입은 변형된 더플코트가 뇌리에 선명할 것이다.

    이 숱한 서양의 더플코트에 대한 기록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한층 더 따뜻하게 하는 장면이 있다. ‘떡볶이 코트’라는 별명과 함께 2002년 드라마 ‘겨울연가’에 등장한 배용준의 어린 시절, 준상이의 모습이 기억나시는지? 최대 28.8%라는 놀라운 시청률과 함께 대한민국에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을 새겨준 더플코트, ‘욘사마’와 ‘지우히메’라는 공전의 한류 현상을 유발한 최고의 작품에도 이렇게 더플코트는 그 존재감을 아로새겼다.

    승리와 평화, 그리고 위로와 추억의 더플코트는 이렇게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을 안아주는 코트다. 앞으로 또 어떤 사회적 현상과 더불어 새로운 이미지를 갖게 될까? 매서운 추위, 밖에는 함박눈이 내려도 더플코트를 입을 용기를, 그리고 그 코트를 입고 누군가를 품어줄 위로의 마음도 함께 간직한다면 좋겠다.

    이헌 스타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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