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글로벌 '톱5'로 가는 계단
우리에게 ‘과거로의 회상’이라는 기회를 선사한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의 마지막 편인 ‘응답하라 1988’을 보면 과거 학창 시절의 모습이 잘 재현돼 있다. 종이 사전을 찢어 단어를 외우고, 도시락을 2개씩 싸서 다니며 몰래 까먹던 그런 시절이었다. 88올림픽 퍼레이드를 준비하는 장면이나 공중전화 부스에서 연락을 하고 밤에는 연탄불을 때던 모습, 아버지가 퇴근길에 신문지에 싸인 시장 통닭을 사오는 장면, 예·적금만 들던 사람들이 처음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OO전자, OO화학, OO약품 등 3개 기업명이 실제로 언급된다).

필자에게는 이제 꽤나 오래된 얘기지만 지난 학창 시절을 돌이켜보면 이런 친구들이 꼭 한 명씩 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른 공부는 다 잘하는데, 유독 한 과목만은 어려워했던 친구들 말이다. 예를 들면 국·영·수는 다 잘하는데 과학은 공식이나 원소기호 외우기를 어려워하던 그런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중 작심하고 부족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채우는 데 성공한 친구들은 훨씬 더 높은 수준으로 성장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는 다양한 산업군에서 글로벌 리딩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방산에서부터 K팝 같은 문화산업도 모두 글로벌 수준이다. 다만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금융업에서는 아직 글로벌 리딩기업이 출현하지 못해 아쉽다. 한편으로는 아픈 손가락이지만, 바꿔 생각하면 더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도 든다.

금융을 자동차, 반도체와 같이 육성해야 할 산업으로 인식하고, 수출 산업으로 변모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금융회사들도 기존의 관행을 벗어나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국내에만 머무르지 말고 해외로 적극 도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수년간 정체된 한국의 글로벌 경제 순위를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올해 두바이와 더블린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 도시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전통적인 ‘금융 중심지’(런던, 뉴욕, 홍콩 등)를 따라잡고자 하는 ‘신흥 금융중심 도시’라는 점이다. “돈이 일하게 하라”는 말은 개인에게도 적용되지만, 이제 국가 차원에서 훨씬 더 중요한 필수 아젠다가 됐다. 이들 도시는 국가적인 지원 아래 적극적으로 외자를 유치하고 관련 규제를 철폐하는 등 ‘금융’을 통한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

다행히 한국인의 금융 DNA는 세계 어느 나라와 견줘도 빠지지 않는다. 계산에 치밀하고 개인의 자질도 훌륭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국민연금과 한국투자공사도 있다. 발맞춰 정부도 금융산업 국제화를 위한 정책들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머지않은 미래, 치열한 글로벌 레이스에서 K금융이 선두에 서는 모습을 그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