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결산] 첫 '극한호우'와 '이상 태풍'까지…일상이 된 기후위기

남부지방, '초장기 가뭄' 겪다가 곧바로 장마철 물난리
'뜨거워지는 지구'에 1~11월 평균기온, 모두 평년보다 높아
"고장 난 롤러코스터 같은 기후위기, 대책 세워 지속해서 추진해야"

2023년은 기후위기가 일상이 된 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7월 11일 오후 4시 서울 동작·구로·영등포구 7개동에 '극한호우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첫 극한호우 재난문자였다.

극한호우는 강수량이 '1시간에 50㎜와 3시간에 90㎜'를 동시에 충족하거나, 1시간에 72㎜ 넘게 온 경우를 말한다.

일상적으로는 집중호우, 기상청이 예보 등에서 '매우 강한 비'라고 표현하는 비의 기준이 '시간당 강수량 30㎜ 이상'으로, 극한호우는 이보다 2배 넘게 거세게 쏟아지는 비다.

극한호우 재난문자는 올해 6월 15일 도입됐다.

서울 동작구에 1시간 동안 141.5㎜ 비가 쏟아졌던 작년 8월 중부지방 집중호우와 같이 '평균치를 훌쩍 넘는 전례 없는 호우'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극한호우 재난문자의 취지다.

'전례 없는 호우'란 말이 무색하게 극한호우는 관련 재난문자가 도입되고 한 달이 안 돼 현실이 됐고, 이후 일상이 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모두 7차례 극한호우 재난문자가 발송됐다.

현재는 수도권에만 문자가 발송되므로 실제 극한호우 횟수는 더 많다.

대표적으로 지난 8월 태풍 카눈이 상륙했을 때 강원 속초에 1시간 동안 91.3㎜에 달하는 비가 내리기도 했다.

유희동 기상청장은 기상청 국정감사 때 "올해는 브레이크가 고장 나 멈추지 않는 기후위기라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질주하는 듯했다"고 말했다.

극한호우와 같은 극단적인 기상현상이 이제 일상이 됐다는 얘기다.

남부지방은 올해 봄까지 1년 넘게 '반세기 중 가장 긴' 가뭄을 겪었다.

가뭄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정부가 오염이 심해 '죽은 물'이라고 지칭하는 댐 바닥에 고인 물을 끌어 올려 쓰는 방안까지 고려하기도 했다.

해갈은 매우 극단적으로 이뤄졌다.

올여름 장마 때 남부지방엔 총 712.3㎜ 비가 쏟아졌다.

이는 1973년 이후 51년간 남부지방 장마철 강수량 중 가장 많은 기록이다.

장마 때 비가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광주 식수원인 동복댐은 6월 말까지 저수율이 20~30%대에 불과했으나, 장마 때엔 물이 만수위를 넘어 월류하기도 했다.

올여름 중부지방 장마철 강수량도 594.1㎜로, 역대 6위에 해당할 만큼 많았다.

전국 평균 장마철 강수량은 660.2㎜로, 역대 3위에 올랐다.

올여름엔 태풍도 '이상행동'을 보였다.

8월 태풍 카눈은 '갈지 자' 경로로 한국·일본·대만에 모두 영향을 줬고, 국내에 상륙한 뒤엔 국토를 동서로 양분하며 종단했다.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경로를 보인 태풍은 카눈이 처음이다.

카눈은 7월 28일 열대저압부에서 태풍으로 발달해 8월 11일까지 태풍으로서 세력을 유지해 수명이 보름으로 길었던 점도 특징이다.

통상 태풍 수명은 닷새 정도인데, 카눈은 그 3배를 산 셈이었다.

뜨거운 바다가 카눈의 세력을 유지해줬다.

해양기후예측센터에 따르면 지난 8월 동아시아해역 해면 수온은 평년값보다 0.9도 높은 역대 2위, 전 지구 해역 해면 수온은 평년값을 0.6도 웃도는 역대 1위였다.

올해 전 지구 표면온도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은 이제 전망이라기보다는 '기정사실'이 됐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10월까지 전 지구 평균 표면온도는 산업화 이전인 1850~1900년 평균보다 1.40±0.12도 높았다.

현재까지 가장 더웠던 해인 2016년은 전 지구 평균 표면온도가 산업화 전보다 1.29±0.12도 높았다.

우리나라도 올해가 손꼽히게 더웠던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단 한 달도 빠짐없이 전국 평균기온이 평년기온보다 높았다.

전국 평균기온이 1973년 이후 상위 10위 내에 든 달도 여섯 달(3·4·5·6·8·9월)이나 된다.

특히 3월과 9월은 전국 평균기온이 역대 1위를 기록했다.

12월에도 달의 절반이 지나갈 때까지 봄처럼 포근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강원에 기록이 확인되는 1999년 이후 처음으로 '12월 호우주의보'가 내려졌다.

눈이 내려야 할 때인데, 기온이 높아 비가 온 것이다.

강원산지에는 호우특보와 대설특보가 동시에 발령되는 기현상도 벌어졌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그나마 기온이 낮은 고산지에 눈이 쏟아지면서 발생한 일이다.

김승배 한국자연재난협회 본부장은 "과거에도 가뭄과 홍수가 있었고 날씨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일이 있었으나, 최근 들어서 그 빈도가 너무 잦아지고 있다"며 "극단적인 기상현상과 자연재난 빈도는 늘어나고, 규모도 커질 것이 분명하다"고 내다봤다.

김 본부장은 "재난을 어떻게 하면 예방하고 대응할 수 있는지 기술적인 방법은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며 "재난이 발생했을 때만 반짝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대책을 장기적으로 지속해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