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서 1만원 미만 '짠물' 쇼핑 늘어…굳어진 불황형 소비

소비심리 위축에도 이커머스 초저가 기획관 '호황'
유통기한 임박 식품·흠집 난 가전도 싸면 매출 '쑥'

'가성비'(품질 대비 가격) 소비의 주 무대인 전자상거래(이커머스)에서 시간이 갈수록 '짠물 소비' 트렌드가 강해지고 있다.

고물가로 소비자들의 가격 민감도가 높아지면서 1만원 미만 저가 상품 수요가 부쩍 늘어난 모양새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11번가가 지난 9월 20일 문을 연 '9천900원샵'이 기대 이상의 매출 성과를 보이고 있다.

10월 일평균 매출이 9월 대비 80% 증가한 데 이어 11월에는 전달보다 196% 급증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계 기준 7∼10월 전체 온라인 유통 시장 평균 매출 증가율이 10.2%인 점을 고려하면 눈에 띄는 성장세다.

생활·주방·스포츠·반려동물용품, 문구·공구, 패션잡화, 화장품 등 일상에서 자주 쓰는 생필품을 1만원 미만의 부담 없는 가격에 살 수 있다는 게 최대 장점으로 꼽혔다.

3천900원, 6천900원, 9천900원 이하 등의 가격대별 추천 상품을 엄선해 초저가 가성비 상품을 찾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였다.

저가 상품임에도 무료배송 혜택을 주는 것 역시 인기를 끈 요인이다.

11번가 관계자는 "9천900원 샵 개장 이후 꼭 필요한 생활·주방용품을 중심으로 판매가 급증하는 추세"라며 "고물가 영향으로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가격대의 기준이 점점 더 낮아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티몬이 운영하는 '만 원의 행복' 기획관도 지난 달 기준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8% 늘었다.

만 원의 행복 역시 2천500원, 5천원, 7천원, 1만원 등의 가격대별 가성비 상품을 모아놓은 특화관이다.

가성비가 소비 트렌드의 대세로 자리 잡으면서 과거 헌 상품으로 외면받던 '리퍼브' 상품(매장에 전시됐거나 유통 과정에서 미세한 흠집이 생겨 반품된 상품)의 가치도 재조명받는 분위기다.

올해 1∼11월 티몬의 '리퍼임박마켓' 매출은 지난해보다 80% 증가했다.

구매 건수와 구매 고객 수도 각각 66%, 63% 늘었다.

스마트TV와 휴대전화, 고급 선글라스 등의 고가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려는 고객의 방문이 꾸준한 가운데 소비기한이 가까워진 가정간편식 등의 먹거리가 매출 순위 상위권을 차지해 눈길을 끌었다.

위메프에서도 올해 하반기 리퍼브 가전 매출이 지난해보다 273% 급증할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꼼꼼하게 따져 좋은 것만 구매하던 신선식품도 가격 앞에선 무기력했다.

같은 기간 낙과 상품 매출이 366%나 늘어난 게 이를 방증한다.

최근 이커머스에서 이(E)쿠폰이 잘 팔리는 것도 짠물 소비 추세를 반영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온라인 쇼핑 거래액은 20조905억원으로 월간 기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001년 통계 작성 이래 온라인 쇼핑 거래액이 20조원을 돌파한 것은 처음이다.

이쿠폰 거래액(8천933억원)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48.9%나 늘어난 게 전체 온라인 시장 규모를 키웠다.

엔데믹(endemic·풍토병화된 감염병) 이후 폭발적으로 수요가 커진 여행·교통(28.6%↑)이나 전통적인 이커머스 강세 품목인 식·음료품(15.6%), 패션(5.6%↑) 등의 거래액 증가율을 압도하는 수치다.

실제 G마켓에서는 올해 11월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할인된 가격에 사용할 수 있는 이쿠폰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달 대비 2∼3배로 늘었다.

G마켓 관계자는 "이쿠폰이 인기를 끄는 것은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의 한 패턴"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추세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1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97.2로 10월(98.1)보다 0.9포인트(p) 내렸다.

지난 7월(103.2) 이후 넉 달 연속 하락세다.

소비자심리지수는 소비심리를 나타내는 지표로 100보다 높으면 낙관적, 100을 밑돌면 비관적으로 각각 해석된다.

이러한 소비심리 저하는 꼭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핀셋 소비', 구매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싼 상품을 구매하는 짠물 소비 트렌드를 더 강화할 것으로 업계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온라인이 절약형 소비의 핵심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이커머스 업체의 최저가 경쟁은 앞으로 더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