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밀레이 시대 '성큼'…아르헨티나의 불안·공포·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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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변화로 경제 살릴 것" 기대…"국민 통합도 잊지 말기를" 주문
"벌써 태어난 지 14개월 됐어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고 자란 알마(28) 씨는 단단한 돌로 만든 묘지 옆에 주저앉은 아이의 이마에서 땀을 닦아 주며 미소를 건넸다.
20일(현지시간) 이 나라 수도 한복판에 있는 레콜레타 공동묘지(라 레콜레타)에는 알마 씨 같은 시민과 가족 단위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이곳에는 유명한 인물들이 여럿 묻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단연 '두아르테 가족' 묘지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후안 도밍고 페론(1895∼1974) 전 대통령의 부인, '에비타'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1919∼1952)도 여기에 잠들어 있다.
"국민을 돌볼 줄 알았던 에비타"를 존경한다는 알마 씨는 전날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 대한 질의에 "마사(세르히오 마사·집권당 후보) 씨가 낙선해 기쁘다"는 답을 내놨다.
그는 "과거의 페론 대통령 부부를 좋아하는 것과 (올해 대선은) 별개의 문제"라며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선 현 정부에서 저지른 경제적 실패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부연했다.
페론 영부인 무덤 인근에서 페론주의 기반 여당 참패에 안도하는 유권자를 만나는 건 다소 예상 밖일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 민심이 '극우 이단아' 하비에르 밀레이(51) 대통령 당선인을 선택한 이유를 함축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존재감 없던 극우 계열 '아웃사이더' 하원 의원이 된 뒤 2년 만에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사이더'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밀레이 대통령 당선인은 유세 내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기성 정치인을 심판하자"고 외쳤다.
비판 대상은 정치 이념적으로 좌·우파를 모두 포함했지만, 대체로 좌파 현 정부에 쏠렸다.
당선인은 연간 130∼140%에 이르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중앙은행 폐쇄와 달러 사용 같은 급진적이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변화와 처방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대학생 알란(21) 씨는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건 외환시장 안정과 인플레"라며 "달러가 안정돼야 물가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밀레이 시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기존 틀을 벗어난 선거 운동으로 대권을 거머쥔 밀레이 당선인에게 호평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예컨대 언행에 있어서 '닮은 꼴'로 묘사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 막강한 재력을 앞세우지만, 밀레이 당선인의 경우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온라인 기반 '작은 유세'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결선투표까지 포함한 공식 집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지난 달 22일 본선 투표 때까지 가장 적은 선거비용을 사용한 정당은 밀레이 소속 자유전진당(LLA)이었다.
실제 알란 씨를 비롯한 젊은 층은 "인터넷을 통해 밀레이 당선인의 구상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결선 투표를 앞두고도 30세 미만 유권자 중 53%가 밀레이 지지 의향을 드러냈다고 현지 일간지 라나시온이 컨설팅회사 '아레스코' 분석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반면 '밀레이만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주민들에게선 실망감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결선에서 무효표를 던졌다는 데니스(34) 씨는 "밀레이 정부는 국민에게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며 "지지 기반도 신기루 같아서,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점원 멜리(19) 씨도 "밀레이가 전기톱을 들고 다니면서 보조금을 삭감한다고 했는데, 교통비며 뭐며 다 오를 것 같아 걱정"이라며 "고물가를 잡지 못하면 저 같은 젊은이를 위한 지원도 더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분열된 국론에 대한 통합과 국민적 화합 노력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퇴역 군인 에밀리오(74) 씨는 "40% 넘는 유권자가 마사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사실을 당선인은 기억해야 한다"며 "아르헨티나는 밀레이 팬들 만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날 결선 투표에서 밀레이 당선인은 개표율 99.28% 기준 55.69%, 마사 후보는 44.30%의 표를 각각 얻었다.
밀레이 당선인은 다음 달 10일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연합뉴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나고 자란 알마(28) 씨는 단단한 돌로 만든 묘지 옆에 주저앉은 아이의 이마에서 땀을 닦아 주며 미소를 건넸다.
20일(현지시간) 이 나라 수도 한복판에 있는 레콜레타 공동묘지(라 레콜레타)에는 알마 씨 같은 시민과 가족 단위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이곳에는 유명한 인물들이 여럿 묻혀 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이들의 발길이 닿는 곳은 단연 '두아르테 가족' 묘지다.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후안 도밍고 페론(1895∼1974) 전 대통령의 부인, '에비타' 마리아 에바 두아르테 데 페론(1919∼1952)도 여기에 잠들어 있다.
"국민을 돌볼 줄 알았던 에비타"를 존경한다는 알마 씨는 전날 치러진 대선 결선투표에 대한 질의에 "마사(세르히오 마사·집권당 후보) 씨가 낙선해 기쁘다"는 답을 내놨다.
그는 "과거의 페론 대통령 부부를 좋아하는 것과 (올해 대선은) 별개의 문제"라며 "내 아이의 미래를 위해선 현 정부에서 저지른 경제적 실패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부연했다.
페론 영부인 무덤 인근에서 페론주의 기반 여당 참패에 안도하는 유권자를 만나는 건 다소 예상 밖일 수 있지만, 아르헨티나 민심이 '극우 이단아' 하비에르 밀레이(51) 대통령 당선인을 선택한 이유를 함축적으로 대변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존재감 없던 극우 계열 '아웃사이더' 하원 의원이 된 뒤 2년 만에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사이더' 정치인으로 급부상한 밀레이 대통령 당선인은 유세 내내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기성 정치인을 심판하자"고 외쳤다.
비판 대상은 정치 이념적으로 좌·우파를 모두 포함했지만, 대체로 좌파 현 정부에 쏠렸다.
당선인은 연간 130∼140%에 이르는 높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선 중앙은행 폐쇄와 달러 사용 같은 급진적이면서도 완전히 새로운 변화와 처방이 필요하다고 누차 강조했다.
대학생 알란(21) 씨는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하는 건 외환시장 안정과 인플레"라며 "달러가 안정돼야 물가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밀레이 시대'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기존 틀을 벗어난 선거 운동으로 대권을 거머쥔 밀레이 당선인에게 호평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예컨대 언행에 있어서 '닮은 꼴'로 묘사되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우 막강한 재력을 앞세우지만, 밀레이 당선인의 경우 소셜미디어를 비롯한 온라인 기반 '작은 유세'로 승리를 거뒀다는 것이다.
결선투표까지 포함한 공식 집계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지난 달 22일 본선 투표 때까지 가장 적은 선거비용을 사용한 정당은 밀레이 소속 자유전진당(LLA)이었다.
실제 알란 씨를 비롯한 젊은 층은 "인터넷을 통해 밀레이 당선인의 구상을 쉽게 접할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결선 투표를 앞두고도 30세 미만 유권자 중 53%가 밀레이 지지 의향을 드러냈다고 현지 일간지 라나시온이 컨설팅회사 '아레스코' 분석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반면 '밀레이만은 안 된다'는 입장이었던 주민들에게선 실망감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결선에서 무효표를 던졌다는 데니스(34) 씨는 "밀레이 정부는 국민에게 불안감을 줄 수밖에 없다"며 "지지 기반도 신기루 같아서,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점원 멜리(19) 씨도 "밀레이가 전기톱을 들고 다니면서 보조금을 삭감한다고 했는데, 교통비며 뭐며 다 오를 것 같아 걱정"이라며 "고물가를 잡지 못하면 저 같은 젊은이를 위한 지원도 더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분열된 국론에 대한 통합과 국민적 화합 노력에 대한 주문도 있었다.
퇴역 군인 에밀리오(74) 씨는 "40% 넘는 유권자가 마사 후보에게 표를 줬다는 사실을 당선인은 기억해야 한다"며 "아르헨티나는 밀레이 팬들 만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날 결선 투표에서 밀레이 당선인은 개표율 99.28% 기준 55.69%, 마사 후보는 44.30%의 표를 각각 얻었다.
밀레이 당선인은 다음 달 10일 임기 4년의 대통령에 취임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