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만 찍으면 '스타일리시'하다는 핀처 감독…이번엔 '더 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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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이하늘의 롱테이크
데이빗 핀처의 영화가 스타일리쉬한 이유
'세븐'에서 보여준 거칠한 질감의 세계
'더 킬러'의 고요함이 뒤집히는 방식
데이빗 핀처의 영화가 스타일리쉬한 이유
'세븐'에서 보여준 거칠한 질감의 세계
'더 킬러'의 고요함이 뒤집히는 방식
데이빗 핀처 감독이 설계한 스크린 위의 이미지는 정교하고 치밀하다. 이로 인해 데이빗 핀처의 서사는 팽팽해진다. 데이빗 핀처에게 스타일리시(stylish)하다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이유 역시 탁월한 이미지 구성력과 내러티브 전개 방식 때문일 것이다.
1992년 '에이리언 3'로 데뷔한 영화 감독 데이빗 핀처. 그는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1'(1979)와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 2'(1986)에 이은 시리즈를 자신만의 색으로 완성했다. 물론 개봉 당시에는 다소 조악하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종교적 상징과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는 의견으로 추후에 재평가됐다. 데이빗 핀처가 처음 영화계에 발을 담근 것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세운 특수효과 업체 ILM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광고와 뮤직비디오로 발길을 돌렸다고 전해진다. 데이빗 핀처는 가수 마돈나, 마이클 잭슨, 스팅, 롤링 스톤즈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1990년 MTV 뮤직 어워드의 뮤직비디오 작품상 후보에 오른 4편 중 3편이 그의 작품일 정도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2014), '문라이즈 킹덤'(2012)의 알록달록하고 완벽한 대칭 구도를 완성한 영상미로 유명한 웨스 앤더스의 이력과 거울쌍처럼 닮아있을 정도다.
CF나 뮤직비디오 출신 영화 감독을 꼽자면, 'Her'(2013)의 스파이크 존즈, '이터널 선샤인'(2005), '무드 인디고'(2014)의 미셸 공드리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 감독, 한국에는 '뷰티 인사이드'(2015), '독전2'(2023)의 백종열 감독 등에 이르기까지 많다. 특히 백종열 감독의 '뷰티 인사이드'는 대한민국 영화의 3대 등장 신인, 영화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 '관상'의 수양대군 이정재 안에 포함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등장' 자체에 초점이 맞춘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구성력에 정답이 있다. '뷰티 인사이드'의 등장신은 이진욱이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지점부터 반응까지 담아내며 관객들의 뇌리에 콕 박힐 정도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CF와 뮤직비디오 출신의 영화 감독인 데이빗 핀처가 현재 할리우드에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무엇일까. 단연코 1995년 개봉한 영화 '세븐'일 테다 . 성서에 적힌 7가지 죄악에 따른 심판을 하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윌리엄 소머셋(모건 프리먼)과 신참 형사 밀스(브래드 피트)의 추적기를 다룬 '세븐'은 짙은 명암대비와 날 것 그대로의 꺼끌꺼끌한 화면 표현으로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일명 '블리치 바이패스'(Bleach bypass) 기법이라 불리는 이것을 통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생각을 하는 연쇄살인범의 세계 안에 뛰어든 형사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은 표백 과정을 건너뛰어 은 입자를 세탁하지 않고 남겨두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고 콘트라스트가 높은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도 사용되기도 했다. '세븐'은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의 사용뿐만 아니라, 은퇴를 며칠 앞둔 노장 형사와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신참 형사의 대비를 상반된 구도로 보여주기도 한다. 시계 초침이 일정한 시간에 똑딱거리듯, 반복되는 삶을 지닌 노장 형사의 움직임 없던 정적인 구도는 밀스의 진입으로 인해 균형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범죄의 온상지인 어두컴컴한 뒷골목과 연쇄살인마를 쫓을수록 파괴되는 두 형사의 심리 상태는 단계적으로 짙어지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담아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습하고 꿉꿉한 느낌이 감도는 방치된 아파트,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잿빛 하늘까지. 특히 밀스 형사의 아내 트레이시(기네스 펠트로)가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되어 잘린 목이 소포로 전달되는 장면을 유심히 보자. 이 공간은 광활한 하늘과 드넓은 들판, 직선 형태의 탑들로 가득하다. 연쇄살인범의 이상한 살인 규율인 단테의 7가지 죄악인 식탐, 탐욕, 나태, 색욕, 교만, 질투 중 하나인 '분노'에 이른 밀스가 아내의 죽음으로 악에 받친 모습은 공간의 분위기와 함께 포개져 아이러니함을 가중하기도 했다. 범죄 스릴러(Heist Thriller) 장르 안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의 장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반복되는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자동차 리콜 심사관 잭(에드워드 노튼)이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폭력이라는 본능이 존재하는 세계에 발을 들이미는 과정을 그리는 '파이트 클럽'(1999)에도 그 순간을 볼 수 있다.
정해진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사는 잭의 정돈된 아파트 공간과 타일러 더든과 함께 가게 된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에 의지한 피비린내 주차장 공터에서의 구도와 색감, 카메라의 움직임은 상이하다. "싸워봐야 너 자신을 알게 돼. 있는 힘껏 날 때리라"는 타일러의 말처럼, 공터에 모인 이들은 서로 엉겨 붙어 피범벅이 될 때까지 싸운다.
이때, 이들의 몸짓에 따라 유영하는 카메라는 낮의 지루한 일상과는 딴판이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거친 질감의 흑백 화면과 새벽녘의 푸른빛이 창문 너머로 들어오며 인물의 얼굴에 닿는 느낌의 표현은 '파이트 클럽'만의 손꼽힐만한 장점이다. 그런가 하면, '패닉룸'(2002)에서는 한정된 공간 속 조여오는 압박을 느끼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패닉룸'은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된 장소인 패닉룸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딸 사라(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살던 멕(조디 포스터)의 이사한 집에 3명의 강도가 들이닥친 것이다. 강도들의 목적은 패닉룸 안에 숨겨진 거액의 돈. 하지만 강도들의 침입을 눈치챈 멕과 어린 딸 사라가 패닉룸 안으로 몸을 피신하게 되면서 일은 꼬여버린다.
패닉룸 바깥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와 문을 열라는 협박과 더불어 폐쇄 공포증까지 지닌 멕과 당뇨를 앓고 있는 사라의 상태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지켜내는 수단인 동시에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어버린 패닉룸 안의 두 사람과 외부의 강도들 사이에 묘한 심리 싸움으로 이어진다.
패닉룸 안에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있는 CCTV 화면, 침대 밑에 떨어진 휴대폰을 몰래 가져오려다가 들키는 멕, 전남편의 등장과 조급해지는 강도, 깜빡거리는 전등, 인슐린의 맞지 못한 사라의 발작까지. 데이빗 핀처가 설계한 이미지와 사운드는 충돌하며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의 설정을 보완한다. 그 외에도 연쇄살인범의 편지로 시작된 사건을 추리하는 내용을 다룬 '조디악'(2007)과 결혼 5주년 아침 사라진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를 찾는 남편 닉(벤 애플렉)의 감춰진 진실이 담긴 '나를 찾아줘'(2014)에서도, 데이빗 핀처 특유 오렌지빛 조명과 실크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둠, 프레임 전반에 깔린 강한 콘트라스트 대비가 이미지 곳곳에 묻어있다.
하지만 데이빗 핀처를 범죄 장르에만 특화된 감독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와 소셜 네트워크'(2010)와 같은 드라마 장르에서도 데이빗 핀처가 이야기를 펼쳐놓는 방식은 돋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의 창립 과정과 마크 저커버그가 공동창립자 에드와도 새버린, 윙클보스 형제에게 소송을 당하는 과정을 다룬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감각적인 편집이 눈에 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여자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너드남이던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가 성공의 맛을 보며 변화되는 모습이 수려한 편집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데이빗 핀처는 작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확대되는 사업으로 인해 동고동락했던 창립자들의 마찰이 뒤엉키는 과정을 속도감을 조절하며 완성했다. 신작 '더 킬러'(2023)는 그간 데이빗 핀처가 보여준 노하우가 집약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더 킬러'의 주요한 서사는 먹잇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타깃을 냉철하게 지켜보던 킬러(마이클 패스벤더)가 일순간 평정심을 잃고 실수를 하는 것.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마라'라는 신념을 유지하던 킬러는 한 번의 실수로 균형을 유지하던 평행봉 위에서 추락하고 만다.
실수가 불러온 파장은 자신이 아끼는 연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임무를 지시한 책임자를 찾아가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오프닝에선 표정 변화가 없이 기계적인 몸짓으로 움직이던 킬러는 러닝타임이 진행될수록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 남자가 남겨진다. 데이빗 핀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나지막한 내레이션과 고요한 사운드가 전복되는 지점과 공간 안에서 제한된 몸짓을 하던 킬러가 계획에 없던 움직임을 하는 과정을 통해 독특한 킬러 영화를 완성했다.
데이빗 핀처 감독에게 '스타일리시(stylish)하다'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유는,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연출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이미지가 화려할지라도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데이빗 핀처의 영화는 늘 인상적인지도 모른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1992년 '에이리언 3'로 데뷔한 영화 감독 데이빗 핀처. 그는 리들리 스콧의 '에이리언 1'(1979)와 제임스 카메론의 '에이리언 2'(1986)에 이은 시리즈를 자신만의 색으로 완성했다. 물론 개봉 당시에는 다소 조악하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종교적 상징과 디스토피아적인 분위기를 잘 담아냈다는 의견으로 추후에 재평가됐다. 데이빗 핀처가 처음 영화계에 발을 담근 것은 '스타워즈' 시리즈의 감독 조지 루카스가 세운 특수효과 업체 ILM였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광고와 뮤직비디오로 발길을 돌렸다고 전해진다. 데이빗 핀처는 가수 마돈나, 마이클 잭슨, 스팅, 롤링 스톤즈 등 유명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를 연출하며, 1990년 MTV 뮤직 어워드의 뮤직비디오 작품상 후보에 오른 4편 중 3편이 그의 작품일 정도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영화 '그랜드부다페스트 호텔'(2014), '문라이즈 킹덤'(2012)의 알록달록하고 완벽한 대칭 구도를 완성한 영상미로 유명한 웨스 앤더스의 이력과 거울쌍처럼 닮아있을 정도다.
CF나 뮤직비디오 출신 영화 감독을 꼽자면, 'Her'(2013)의 스파이크 존즈, '이터널 선샤인'(2005), '무드 인디고'(2014)의 미셸 공드리와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 감독, 한국에는 '뷰티 인사이드'(2015), '독전2'(2023)의 백종열 감독 등에 이르기까지 많다. 특히 백종열 감독의 '뷰티 인사이드'는 대한민국 영화의 3대 등장 신인, 영화 '늑대의 유혹'의 강동원, '관상'의 수양대군 이정재 안에 포함되기도 하는데, 단순히 '등장' 자체에 초점이 맞춘 것이 아니라 이미지의 구성력에 정답이 있다. '뷰티 인사이드'의 등장신은 이진욱이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지점부터 반응까지 담아내며 관객들의 뇌리에 콕 박힐 정도로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CF와 뮤직비디오 출신의 영화 감독인 데이빗 핀처가 현재 할리우드에 이름을 각인시킨 작품은 무엇일까. 단연코 1995년 개봉한 영화 '세븐'일 테다 . 성서에 적힌 7가지 죄악에 따른 심판을 하는 연쇄살인범을 쫓는 형사 윌리엄 소머셋(모건 프리먼)과 신참 형사 밀스(브래드 피트)의 추적기를 다룬 '세븐'은 짙은 명암대비와 날 것 그대로의 꺼끌꺼끌한 화면 표현으로 극의 긴장감을 끝까지 몰아붙인다.
일명 '블리치 바이패스'(Bleach bypass) 기법이라 불리는 이것을 통해 일반적인 상식을 벗어난 생각을 하는 연쇄살인범의 세계 안에 뛰어든 형사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은 표백 과정을 건너뛰어 은 입자를 세탁하지 않고 남겨두는 것으로 전체적으로 채도가 낮고 콘트라스트가 높은 거칠고 투박한 느낌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익숙하게 봐온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2003)에서도 사용되기도 했다. '세븐'은 블리치 바이패스 기법의 사용뿐만 아니라, 은퇴를 며칠 앞둔 노장 형사와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주체할 수 없는 신참 형사의 대비를 상반된 구도로 보여주기도 한다. 시계 초침이 일정한 시간에 똑딱거리듯, 반복되는 삶을 지닌 노장 형사의 움직임 없던 정적인 구도는 밀스의 진입으로 인해 균형감을 잃고 이리저리 흔들린다. 범죄의 온상지인 어두컴컴한 뒷골목과 연쇄살인마를 쫓을수록 파괴되는 두 형사의 심리 상태는 단계적으로 짙어지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순간을 담아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습하고 꿉꿉한 느낌이 감도는 방치된 아파트, 따스하게 내리쬐는 햇빛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잿빛 하늘까지. 특히 밀스 형사의 아내 트레이시(기네스 펠트로)가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되어 잘린 목이 소포로 전달되는 장면을 유심히 보자. 이 공간은 광활한 하늘과 드넓은 들판, 직선 형태의 탑들로 가득하다. 연쇄살인범의 이상한 살인 규율인 단테의 7가지 죄악인 식탐, 탐욕, 나태, 색욕, 교만, 질투 중 하나인 '분노'에 이른 밀스가 아내의 죽음으로 악에 받친 모습은 공간의 분위기와 함께 포개져 아이러니함을 가중하기도 했다. 범죄 스릴러(Heist Thriller) 장르 안에서 데이빗 핀처 감독의 장기는 더욱 빛을 발한다. 반복되는 삶에 지루함을 느끼는 자동차 리콜 심사관 잭(에드워드 노튼)이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가 이끄는 폭력이라는 본능이 존재하는 세계에 발을 들이미는 과정을 그리는 '파이트 클럽'(1999)에도 그 순간을 볼 수 있다.
정해진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사는 잭의 정돈된 아파트 공간과 타일러 더든과 함께 가게 된 깜빡거리는 형광등 불빛에 의지한 피비린내 주차장 공터에서의 구도와 색감, 카메라의 움직임은 상이하다. "싸워봐야 너 자신을 알게 돼. 있는 힘껏 날 때리라"는 타일러의 말처럼, 공터에 모인 이들은 서로 엉겨 붙어 피범벅이 될 때까지 싸운다.
이때, 이들의 몸짓에 따라 유영하는 카메라는 낮의 지루한 일상과는 딴판이다. 중간중간 삽입되는 거친 질감의 흑백 화면과 새벽녘의 푸른빛이 창문 너머로 들어오며 인물의 얼굴에 닿는 느낌의 표현은 '파이트 클럽'만의 손꼽힐만한 장점이다. 그런가 하면, '패닉룸'(2002)에서는 한정된 공간 속 조여오는 압박을 느끼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를 섬세하게 담아내기도 했다. '패닉룸'은 외부와는 완벽하게 차단된 장소인 패닉룸에서 벌어지는 급박한 상황을 다루고 있다. 남편과 이혼하고 어린 딸 사라(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살던 멕(조디 포스터)의 이사한 집에 3명의 강도가 들이닥친 것이다. 강도들의 목적은 패닉룸 안에 숨겨진 거액의 돈. 하지만 강도들의 침입을 눈치챈 멕과 어린 딸 사라가 패닉룸 안으로 몸을 피신하게 되면서 일은 꼬여버린다.
패닉룸 바깥에서 들려오는 의문의 소리와 문을 열라는 협박과 더불어 폐쇄 공포증까지 지닌 멕과 당뇨를 앓고 있는 사라의 상태는 상황을 악화시킨다.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몸을 지켜내는 수단인 동시에 빠져나갈 수 없는 감옥이 되어버린 패닉룸 안의 두 사람과 외부의 강도들 사이에 묘한 심리 싸움으로 이어진다.
패닉룸 안에서 바깥 상황을 볼 수 있는 CCTV 화면, 침대 밑에 떨어진 휴대폰을 몰래 가져오려다가 들키는 멕, 전남편의 등장과 조급해지는 강도, 깜빡거리는 전등, 인슐린의 맞지 못한 사라의 발작까지. 데이빗 핀처가 설계한 이미지와 사운드는 충돌하며 다소 지루할 수 있는 이야기의 설정을 보완한다. 그 외에도 연쇄살인범의 편지로 시작된 사건을 추리하는 내용을 다룬 '조디악'(2007)과 결혼 5주년 아침 사라진 아내 에이미(로자먼드 파이크)를 찾는 남편 닉(벤 애플렉)의 감춰진 진실이 담긴 '나를 찾아줘'(2014)에서도, 데이빗 핀처 특유 오렌지빛 조명과 실크 커튼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둠, 프레임 전반에 깔린 강한 콘트라스트 대비가 이미지 곳곳에 묻어있다.
하지만 데이빗 핀처를 범죄 장르에만 특화된 감독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2009)와 소셜 네트워크'(2010)와 같은 드라마 장르에서도 데이빗 핀처가 이야기를 펼쳐놓는 방식은 돋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의 창립 과정과 마크 저커버그가 공동창립자 에드와도 새버린, 윙클보스 형제에게 소송을 당하는 과정을 다룬 '소셜 네트워크'에서는 감각적인 편집이 눈에 띈다. 사업을 시작하기 전, 여자에게 말도 제대로 못 붙이는 너드남이던 마크 저커버그(제시 아이젠버그)가 성공의 맛을 보며 변화되는 모습이 수려한 편집을 통해 전달되기 때문이다. 데이빗 핀처는 작은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확대되는 사업으로 인해 동고동락했던 창립자들의 마찰이 뒤엉키는 과정을 속도감을 조절하며 완성했다. 신작 '더 킬러'(2023)는 그간 데이빗 핀처가 보여준 노하우가 집약적으로 녹아들어 있는 작품인지도 모른다. '더 킬러'의 주요한 서사는 먹잇감을 기다리는 맹수처럼 타깃을 냉철하게 지켜보던 킬러(마이클 패스벤더)가 일순간 평정심을 잃고 실수를 하는 것.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마라'라는 신념을 유지하던 킬러는 한 번의 실수로 균형을 유지하던 평행봉 위에서 추락하고 만다.
실수가 불러온 파장은 자신이 아끼는 연인을 위험에 빠뜨리고, 임무를 지시한 책임자를 찾아가는 연쇄작용을 일으킨다. 오프닝에선 표정 변화가 없이 기계적인 몸짓으로 움직이던 킬러는 러닝타임이 진행될수록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한 남자가 남겨진다. 데이빗 핀처는 마이클 패스벤더의 나지막한 내레이션과 고요한 사운드가 전복되는 지점과 공간 안에서 제한된 몸짓을 하던 킬러가 계획에 없던 움직임을 하는 과정을 통해 독특한 킬러 영화를 완성했다.
데이빗 핀처 감독에게 '스타일리시(stylish)하다'는 수식어가 잘 어울리는 이유는,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연출자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이미지가 화려할지라도 관객들에게 이야기가 전달되지 않으면,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때문에 데이빗 핀처의 영화는 늘 인상적인지도 모른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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