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전쟁 계기 뉴스타트·CTBT 등 중단…'핵군비 경쟁' 촉발 가능성
러, 핵군축협정 잇단 포기에 지구촌 핵전쟁 우려 증폭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서방과 대립 중인 러시아가 핵무기 군축 및 통제와 관련한 국제협정을 잇따라 중단하면서 범세계적 핵비확산 체제가 더욱 흔들릴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9일(현지시간) 법률 공포에 쓰이는 웹사이트를 통해 일본과 체결한 핵무기 군축 협력에 관한 협정을 중단한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공개했다.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가 서명한 이 문서는 "러시아에서 감축된 핵무기 폐기 지원에 관한 협력을 위해 일본 정부와 체결한 협정과 이러한 목적을 위한 협력위원회 설립을 종료한다"고 밝혔다.

1993년 10월 13일 체결된 이 협정은 러시아가 양자 혹은 다자간 조약이나 자체 결정으로 감축하는 핵무기의 안전한 제거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러한 협정은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요구에 반발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제1차 핵위기가 발생했던 시기에 맺어진 것이었다고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는 짚었다.

협정문은 "대량파괴무기와 투발수단의 비확산은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보 보장을 위한 시급한 임무"라고 규정했는데 이후 30년만에 무위로 돌아가게 된 셈이다.

작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격렬히 저항하는 우크라이나 국민과 우크라이나에 무기와 물자를 지원하는 서방 국가들을 상대로 거듭 핵위협을 가해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측근들은 '역사상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는 식의 거친 언어로 자신들에게 맞서는 국가들을 연일 위협했고, 이는 핵무기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금기를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러, 핵군축협정 잇단 포기에 지구촌 핵전쟁 우려 증폭
실제로 전술 핵탄두 등의 무기를 쓰지는 않았지만 사용 가능성을 시사한 것만으로도 '핵무기는 인류 공멸을 가져올 결코 써선 안 될 무엇'이란 인식에 기반한 국제사회의 핵질서가 뒤흔들렸다는 것이다.

러시아는 여기에 머물지 않고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구축했던 '외교적 핵안전장치'들을 잇따라 해체해 왔다.

올해 2월에는 미국과의 핵무기 통제 조약인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뉴스타트) 참여를 중단했고, 이달 2일에는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에 대한 비준을 철회했다.

이어 7일에는 냉전 말기인 1990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당시 소련 주도의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각자 재래식 무기 보유 목록과 수량을 제한하도록 체결한 군축 조약인 유럽재래식무기감축조약(CFE)에서 탈퇴했고, 이날은 일본과의 핵군축 관련 협정도 중단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도 CFE 탈퇴를 선언하면서 신냉전과 함께 핵군비 경쟁의 시대가 다시 시작됐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는 새롭게 슈퍼파워로 부상한 중국이 급격히 핵탄두 보유고를 늘리는 상황에서 미국과 러시아를 두 축으로 한 기존 군축 체제가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시각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러, 핵군축협정 잇단 포기에 지구촌 핵전쟁 우려 증폭
이러한 상황은 한반도와 동북아를 비롯한 전 세계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가 서방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을 차단한다는 목적 달성을 위해 핵무기를 지렛대로 삼는 행태와 NPT 체제의 약화란 상황을 지켜본 국가들이 핵무기 개발에 나서 '핵무장 도미노'가 촉발될 수 있어서다.

특히, 북한은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에 저항하는 목소리를 더욱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9월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과 회담하고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데 이어 대량의 군사장비와 포탄을 지원하며 러시아와의 밀착을 강화하고 있기도 하다.

한편, 미국 핵과학자회(BAS)가 올해 1월 발표한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의 초침은 멸망을 의미하는 자정에 90초 앞으로 다가섰다.

이는 지구 종말 시계의 1947년 도입 이후 가장 위태로운 위치다.

BAS는 2020년 이후 초침을 자정 100초 전으로 유지해왔으나 러시아의 핵 사용 위협으로 종말이 더욱 앞당겨졌다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