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공전 2차 손배 소송, 3년만에 변론 종결…내년 1월 1심 선고
"생사고비 넘겼는데, 931원뿐" 일제강제동원 할머니 법정증언
"죽을 고비를 넘기며 버텼는데, 돌아온 건 931원(99엔)뿐이었습니다.

"
일본 전범기업을 상대로 2차 손해 배상에 나선 일제강제동원 피해자 정신영(93) 할머니가 9일 법정에서 강제동원 당시를 증언했다.

이날 원고 당사자 증인으로 나선 정 할머니는 또렷한 음성으로 1944년 일본에 건너가 겪었던 고충을 하나하나 증언했다.

정 할머니는 공부를 더 할 수 있다는 일본 교사의 거짓 회유로 15살 어린 나이에 친구들 25명과 일본으로 갔다.

일본에 도착해 나고야성을 구경하고 사진 찍는 즐거움도 잠깐 있었지만, 이후로 해방 후 귀국하기까지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이 계속됐다.

정 할머니는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고야 항공기 제작소에서 도색 작업을 하는 알루미늄판을 배열하거나, 식당 일과 청소를 했다.

배식이 제대로 되지 않아 쓰레기통을 뒤져 배를 채우기 일쑤였고, 월급은 간식 하나 사 먹으면 바닥날 정도로 몇푼 되지 않았다.

목숨을 위협하는 일도 다반사로 발생해 미군 폭격기가 공장에 폭탄을 떨구면 개집보다 못한 방공호에 숨어들어 떨었으며, 폭탄에 불이 난 건물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 불을 끄기도 했다.

지진으로 땅이 갈라지고 물이 차는 생사의 갈림길 속에 동료 7명이 죽는 장면도 옆에서 목격했다.

집에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상황이 이어지다 정 할머니는 해방 이후에야 부산항을 통해 고향인 전남 나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생사고비 넘겼는데, 931원뿐" 일제강제동원 할머니 법정증언
일본 후생연금(노동자 연금보험)이 그에게 입금한 탈퇴 수당은 달랑 931원(99엔).
정 할머니는 강제동원으로 평생 겪은 아픔을 이날 증인석에 앉아 하나하나 털어놨다.

광주지법 민사13부(임태혁 부장판사)는 이날 정 할머니의 증인 심문을 마지막으로 원고 4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낸 2억4천만원 상당 손해배상 소송의 변론을 종결했다.

정 할머니 등 원고 4명의 손해배상 소송 재판은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측의 회피로 장기간 공전했다.

양금덕 할머니 등이 대법원 확정판결에서 승소한 1차 소송 이후 정 할머니는 2020년 1월 2차 소송에 나섰지만, 소송 서류를 일본기업이 확인하지 않으면서 첫 재판이 2년 6개월 만에 열리는 등 지연됐다.

어렵게 이어진 재판은 첫 소송 제기 3년 10개월여 만인 이날 변론 종결돼 내년 1월 18일 1심 선고가 내려진다.

1심 선고가 나오더라도 항소와 상고 등이 이어져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증인 심문을 마친 정 할머니는 "세월이 지나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또 말을 하다 보면 당시 기억이 고스란히 되살아난다"며 "수십 년이 지났지만, 미쓰비시는 물론 일본으로부터 단 한마디 사죄의 말을 듣지 못해 원통하다"고 말했다.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광주·전남지부는 1차 소송 이후 2019년과 2020년 피해자 87명을 원고로 전범 기업 11곳에 대해 2차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생사고비 넘겼는데, 931원뿐" 일제강제동원 할머니 법정증언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