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규제 EUV 핵심원료, 국산화 더뎠는데…"중견기업이 일냈다"
포토레지스트(PR),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 일본이 2019년 한국 수출 규제 카드를 꺼내 든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3종이다. 이 중 불화수소, 불화폴리이미드와 달리 PR은 국산화가 더뎠다. PR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용제(솔벤트)를 초고순도로 생산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인데, 코스닥시장 상장 중견기업 켐트로닉스가 이 난제를 해결했다.

김응수 켐트로닉스 대표(사진)는 "극자외선(EUV) 노광 공정에서 핵심 재료인 포토레지스트를 구성하는 '프로필렌 글리콜 메틸 에테르 아세트산(PGMEA)'을 순도 99.999%(5N)로 시생산하는 데 성공해 양산 중"이며 "2024년 상반기부터 본격 양산하기 위한 최종 고객사의 품질승인작업이 진행 중"라고 7일 밝혔다.

이 회사는 PGMEA 개발을 마치고 대량생산을 위해 작년부터 240억원을 들여 연 1만t(톤)의 생산능력을 확보했다. 추가로 올해 170억원을 투자해 생산능력을 2만5000t 규모로 확대할 계획이다.

PGMEA는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용제다. 반도체용 시너로 제조돼 노광 공정에서 감광 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부분에 묻은 감광물질을 씻어내는 역할을 한다. 켐트로닉스는 그간 일본과 대만, 중국에서 PGMEA를 사와 순도를 높이는 정제 작업을 한 후 기업들에 공급했다.

그러나 일본의 수출 규제가 국산화에 불을 댕겼다. 자체적인 합성·정제 노하우를 앞세워 4년여 만에 5N급 양산을 눈앞에 뒀다. 김 대표는 "5N급 순도는 금속성 잔류물에 의한 노광 때 불량을 현저히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친환경성을 확보한 것은 더 큰 성과다. PGMEA에는 잠재적 독성물질인 '이성질체(베타-아이소머)'라는 물질이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성질체 농도로 10ppm(100만분의 1을 나타내는 단위) 미만을 요구하는데, 켐트로닉스는 이를 1ppm으로 낮췄다.

김 대표는 "이성질체는 정제한다고 사라지지 않아 만들 때부터 아예 나오지 않아야 한다"며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이성질체 평가 기준 수립에 켐트로닉스 수치를 참고하는 움직임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PGMEA 쓰임새가 확장된 것도 장점이다. 기존 PR 용제뿐 아니라, PR 공정 보조물질인 반사방지막(BARC), 지지층(SOH)의 용제로도 활용될 수 있다. PGMEA 시장은 2022년 9262억원, 2023년 9687억원에 이어 2024년 1조172억원 규모가 예상된다.

성남=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