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 참사 영상들 그대로 남아…이태원 상인들도 고통
방심위 시정요구 1천783건…모든 영상 지우기엔 역부족
"영상 삭제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된 추모부터 이뤄져야"
참사 1주기 됐지만 현장 영상 버젓이…"악몽으로 남아"
"잔상이 굉장히 오래 남습니다.

아이들의 마지막 장면, 그 안 좋은 장면이 머리에 남으면 죽을 때까지 그걸 안고 가야 합니다.

"
지난해 10월 29일 아들 고(故) 이주영씨를 이태원 골목에서 잃은 이정민씨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씨는 "다른 유족들에게도 그때 당시의 영상과 사진을 보지 말라고 한다"며 "그때의 악몽만 생각하게 될 뿐이지 회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태원 참사 1주기를 하루 앞둔 28일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서는 여전히 참사 현장 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유족들의 트라우마를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X에 '이태원 핼러윈 현장'이라고 검색해보니 '사고 직전 5분 전'이라며 사람들의 비명이 가득한 영상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지난해 11월 올라온 1분 분량의 게시물 영상에는 사람들이 깔려 있거나 심폐소생술을 받는 모습, 참사 직전 인파가 옴짝달싹 못 하는 모습까지 버젓이 담겨있었다.

이 게시물에 올라온 유튜브 링크를 누르면 '이 동영상과 연결된 유튜브 계정이 해지돼 동영상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나왔다.

그러나 엑스에서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누구든 접할 수 있었다.

엑스에서는 이 영상 외에도 소방차 사이렌이 울리는 참사 현장에서 한 시민이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영상이나 '압사 사고 현장 근처 상황'이라며 올라온 영상도 여전히 찾을 수 있었다.

참사 1주기 됐지만 현장 영상 버젓이…"악몽으로 남아"
희생자 유족들이나 이태원 상인들은 참사 1주기가 되도록 당시의 참혹한 영상들이 삭제되지 않았음에 분통을 터뜨렸다.

이정민씨는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며 "유족들을 향한 2차 가해도 못 막는데 영상 삭제를 막을 수 있겠느냐"며 답답해했다.

이태원 세계음식거리 상인들도 SNS에 여전히 떠도는 영상에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 거리에서 8년간 음식점을 운영해 온 한 상인은 "영상이 올라오면 손님도 줄지만, 현장을 봤던 사람으로서 기분이 좋지 않아 되도록 보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유가족들은 얼마나 힘들겠느냐"며 "그런 영상들은 모두 내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태원 한 식당에서 일하는 외국인 직원 샐리나(46)씨는 "참사 당시 남아프리카에 있었기에 현장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영상은 많이 봤다"며 "일하는 공간 근처다 보니 볼 때마다 너무 슬프다"고 했다.

참사 직후에는 출퇴근하며 거리를 지나갈 때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는 그는 "지금은 그런 무거운 감정은 덜하지만 영상을 보면 다시 트라우마가 생기는 것 같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지난달까지 모두 1천783건의 이태원 참사 관련 영상과 사진에 대해서 게시물 삭제나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했지만 인터넷에 범람하는 모든 영상을 삭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방심위 관계자는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하고 있고 확산 방지를 위해서 플랫폼 사업자를 대상으로 자율규제도 요청하고 있다"며 "이태원 참사 발생 1주기가 되는 시점을 맞이해서 추가적인 유통이 우려되기 때문에 중점적으로 모니터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참사 1주기 됐지만 현장 영상 버젓이…"악몽으로 남아"
참사 당시 영상물들이 여전히 온라인 공간에 유통됨에 따라 유족들 외에 일반 국민의 트라우마도 계속 남아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참사 영상을 보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굉장히 부정적 영향을 남길 수 있다"며 "많은 영상을 모두 심의하기는 어렵겠지만 SNS 운영사와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태원 참사 이후 제대로 된 추모를 통한 치유 작용이 부족했다"며 "시민들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도 안전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도 "충분히 슬퍼하고 기억하고 애도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시간이나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불특정한 여러 심리적 반응을 막을 수 있다"며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영상을 유포하고 찾아서 보는 것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