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작은 70년대 여공의 노동현실 다룬 '이 별이 마음에 들어'
"6살 딸, 18개월 아들 키우며 매일 원고지 15매 꾸준히 써"
[수림문학상] 김하율 "문학은 누군가가 내미는 손길…재미·의미 다 잡고파"
"외계인의 눈에 비친 당시 여성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들은 얼마나 야만적이었을까요.

당대의 현실을 더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주인공을 외계인으로 설정했지요.

"
제11회 수림문학상 수상작인 김하율의 장편소설 '이 별이 마음에 들어'는 70년대 한국 여성들의 가혹한 노동 조건을 대변하는 단어인 공순이, 식모, 차순이(시내버스 안내원)의 소위 '삼순이' 중에서도 공순이, 즉 공장 여성 노동자인 '여공'들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소설 속 주인공은 1978년 대한민국 서울에 떨어진 외계인이다.

이 외계인은 19세의 전라도 출신 소녀로 변신해 '니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고,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10번 시다('보조'를 뜻하는 은어)와 2번 미싱사, 홍일점 재단사를 거치면서 인간의 감정을 학습하면서 점차 열악한 노동 현실의 부당함에 눈을 뜨게 된다.

사람들의 감정이나 생각의 작동방식을 잘 모르는 외계인의 눈에도 1970년대 말 청계천 피복공장 여성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기이할 정도로 가혹하기만 하다.

저임금 등 극악한 근로 조건, 억압과 차별 등 당대 한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이 바로 '삼순이', 그중에서도 공순이로 불리던 공장 여성 노동자들이다.

김하율 작가는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70년대 여성들의 노동 현실에 대한 자료들을 읽다 보니 조건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오늘날의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다시 한번 그런 현실을 내 소설로 환기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니나가 원래 살던 행성에서는 효율이 최고의 가치라 감정이라는 비효율적인 기능은 퇴화해 없어져 버린 지 오래다.

그래서 니나는 재단 보조 '나성'을 통해 인간의 미묘하고도 복잡한 감정들을 학습하게 되고, 점차 가혹한 노동 현실에 부당함을 느끼면서 사랑의 가치도 깨닫게 된다.

니나가 나성을 비롯한 노동자 동료들을 통해 슬픔과 분노 등의 감정을 배우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당대 여성 블루칼라 노동자들의 계급적, 사회적 의식화 과정으로 읽히기도 한다.

"당시 10대의 어린 나이에 서울로 올라와 청계천에 모인 여공들은 자기 감정표현도 제대로 못 하고, 아주 무력한 존재였잖아요.

외계인인 니나와 다를 바 없는 처지였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오늘날의 감정노동자들도 여전히 그렇고요.

"
작가는 오랜 시간이 흐른 현재에도 니나의 아들인 택배 기사 '장수'가 겪는 일터의 현실을 통해 세대를 관통하며 대물림되는 가혹한 노동의 조건들을 다시 환기한다.

1970년대 말과 2023년, 2033년의 서울을 오가는 이 작품은 일견 복잡해 보이는 스토리와 무거운 주제 의식을 갖고 있지만, 안정적인 문장과 곳곳에 배치된 유머로 '읽는 재미'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기자 역시 다음을 궁금하게 만드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와 안정적인 문장 덕에 단숨에 읽을 수 있었다.

"잘 짜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좋아하는 작가들도 그렇고요.

저는 제 작품을 쓰면서도 재미가 있어야 하는 사람이에요.

분명한 문제의식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전달하는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
이 소설은 노동 현실을 넘어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여공'들은 가혹한 상황에서도 서로를 도우며, 직장 동료를 넘어서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준다.

주인공 니나는 가족 같은 동료 외에도 한 남자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또 가슴으로 낳은 아들도 얻게 된다.

[수림문학상] 김하율 "문학은 누군가가 내미는 손길…재미·의미 다 잡고파"
작가가 앞서 2021년 내놓은 첫 소설집 '어쩌다 가족' 역시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가족 이야기다.

"첫 소설집과 이번 수상작과 차기작도 그렇고 전부 가족 이야기더군요.

제가 어린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 입장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이라는 소재에 천착하는 것 같아요.

"
김 작가는 여섯 살인 딸과 18개월 된 아들을 둔 엄마다.

최근 초고를 완성한 다른 장편소설도 40대 중반의 나이에 둘째를 출산한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고 한다.

제목은 '어쩌다 노산'이 될 것 같다고.
작가는 그야말로 전쟁 같은 육아를 하면서도 매일 아침 9시 반부터 오후 3시 반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원고지 15매를 쓴다는 원칙을 세우고 작품을 쓰고 있다고 했다.

올해는 그가 작가로서 '겹경사'를 본 특별한 해다.

수림문학상 수상에 앞서 올해 5월엔 체코의 명문 카렐대 한국어학과의 초청으로 프라하를 방문해 강연과 작품 낭독을 하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했다.

"제 소설집을 접한 체코의 한 현지인 한국어 전공 교수님이 아주 잘 쓴 한국어 문장으로 메일을 보내왔는데, 처음에는 피싱 메일인 줄 알았어요.

한국어를 전공하는 체코 대학원생들이 제 작품을 놓고 하는 번역 워크숍 수업이었는데, 작가로서 무척 영광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
끝으로 문학이란 무엇이냐는 뻔한 질문을 해봤다.

"누군가가 내밀어주는 손길이 아닌가 싶어요.

내가 힘들어 쓰러져 있을 때 내 손을 잡아준 그런 작품들이 있거든요.

너무 좋은 작품을 읽다 보면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기도 하지요.

제게 문학은 그런 존재입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