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인사이트] 세계 최장수 기업이 한국기업에 주는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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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민 롯데벤처스 대표
진정한 기업가는 기업을 창업하고 성장시키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그 기업을 자신이 존재하는 이유이자 분신이라고 느끼게 된다. 몰입으로 생긴 ‘동일시’ 현상이다. 기업가는 100년도 안 되는 인간의 한계를 극복할 수 없지만 분신이 된 기업은 오랫동안 존속하며 기억되기를 갈망한다.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고단한 99년을 보낸 뒤 남긴 마지막 메시지가 “롯데를 잘 부탁한다”는 문장으로 끝나는 걸 보면 기업가 신격호도 그러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수많은 기업가의 갈망에 최고로 부합한 ‘지구 최장수’ 기업은 어디일까?
1995년 일본의 고베와 한신에서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다. 6300여 명이나 사망했고, 182조원의 피해가 났다. 고가도로가 무너지고 수많은 건물이 파손된 사달에도 어떤 건축회사가 관리하던 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578년에 창업해서 무려 1441년을 존속한 금강조(金剛組·곤고구미)가 주인공이다. 김유신 장군 탄신 17년 전에 창업했으니 가히 기업계의 동방삭이라 하겠다. 당연히 세계 1위 기록이다. ‘뭘 해도 진득하게 오래’ 하는 일본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유별난 사례일까?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은 인물은 쇼토쿠 태자(574~622)다. 여러 번 바뀐 엔화에 일곱 번이나 모델로 등장하면서 최다 기록을 보유할 만큼 존경받는 이 분, 불교를 도입해서 왕권을 강화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끝내주는 절을 하나 짓고 싶었는데 그런 걸 건축해낼 기술이 없었다.
결국 당대의 기술 강국인 백제에서 엔지니어 세 분을 초빙했다. 그들이 지은 작품이 사천왕사(사텐노지)다. 잠실야구장 네 배 규모. 당시 관점으로 롯데월드타워급 건물을 완공한 것인데 흐뭇함도 잠시, 유지 관리 걱정에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태자는 고민 끝에 기술자 중에 전주 류씨, 류중광(柳重光)을 꼬셔서 붙잡는 데 성공한다. 고마운 태자는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금강’을 성으로 특별히 하사했고 금강중광(金剛重光)으로 개명한 그는 금강조라는 현지 스타트업을 창업한다. 그리고 무려 39대를 이어가며 그의 후손들이 회사를 경영해왔다. 진정한 금강급 내공이다.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오사카성의 건설과 호류지의 개축도 담당했다. 그런데 그렇게 긴 세월이 평안하고 안녕하시기만 했을까? 모국 백제의 멸망도, 그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파병한 수만 대군이 금강에서 몰살당한 백강전투도, 고려-몽고 연합군의 일본 침공도, 조일전쟁(임진왜란)도, 개방에 성공한 일본이 모국인 한반도를 잔혹하게 식민 지배하는 세월도 지켜봐야 했다. 1441년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150년 전에야 등장한 ‘민족’이란 개념과 그로 인한 격렬한 갈등도 모두 지켜보고 겪어냈다. 정치와 이념의 출렁이는 파도에 좌고우면하면 결코 견디고 이겨낼 수 없는 세월이었다.
현란한 신기술의 등장과 퇴장, 그 숨 가쁜 템포 속에서 틈새 기회를 찾아 도전하고 또 실현하는 현대 스타트업은 ‘뭘 해도 진득하게 오래’ 하는 특성과 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다시 하는 걸 싫어하는, 매사가 불만인 그런 특성이 ‘딱’이다. 인구와 경제가 2.5배인 일본이 유니콘 기업은 우리의 절반밖에 못 만드는 걸 보면 영 틀린 추론은 아니다. 식민지의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19세에 일본으로 가출한 신격호, 재일동포 차별에 대한 불만으로 고교생 때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전 세계적 삶을 펼치고 있는 일직(안동) 손씨, 손정의의 스타일이 ‘딱’이다. 국내 환경에서 봤을 때도 일본에 기회가 있다. 5100만 명에 불과한데 계속 줄어들 인구는 독립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로는 너무 적다. 확장해야 한다. 이제 류중광의 시대를 다시 열어야 한다. 앞으론 일본에 가면 1000년을 버티고 있는 그 사찰들을 감상하며 그 배경에서 웃고 계실 류중광 할배의 흐뭇한 미소를 떠올려볼 일이다. 그리고 따라가며 한 수 배우던 ‘한 시절’을 이제 끝내고 과감하게 진출해 새로운 금강조를 꿈꿔 볼 일이다. 디지털 전환에 늦어 여전히 아날로그 세상에 사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멋지고 새로운 사천왕사가 필요하다.
1995년 일본의 고베와 한신에서 엄청난 지진이 발생했다. 6300여 명이나 사망했고, 182조원의 피해가 났다. 고가도로가 무너지고 수많은 건물이 파손된 사달에도 어떤 건축회사가 관리하던 건물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578년에 창업해서 무려 1441년을 존속한 금강조(金剛組·곤고구미)가 주인공이다. 김유신 장군 탄신 17년 전에 창업했으니 가히 기업계의 동방삭이라 하겠다. 당연히 세계 1위 기록이다. ‘뭘 해도 진득하게 오래’ 하는 일본의 특성을 제대로 보여주는 유별난 사례일까? 전혀 아니다. 일본에서 고대국가의 기틀을 잡은 인물은 쇼토쿠 태자(574~622)다. 여러 번 바뀐 엔화에 일곱 번이나 모델로 등장하면서 최다 기록을 보유할 만큼 존경받는 이 분, 불교를 도입해서 왕권을 강화하고 싶어 했다. 당연히 끝내주는 절을 하나 짓고 싶었는데 그런 걸 건축해낼 기술이 없었다.
결국 당대의 기술 강국인 백제에서 엔지니어 세 분을 초빙했다. 그들이 지은 작품이 사천왕사(사텐노지)다. 잠실야구장 네 배 규모. 당시 관점으로 롯데월드타워급 건물을 완공한 것인데 흐뭇함도 잠시, 유지 관리 걱정에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다. 태자는 고민 끝에 기술자 중에 전주 류씨, 류중광(柳重光)을 꼬셔서 붙잡는 데 성공한다. 고마운 태자는 다이아몬드라는 뜻의 ‘금강’을 성으로 특별히 하사했고 금강중광(金剛重光)으로 개명한 그는 금강조라는 현지 스타트업을 창업한다. 그리고 무려 39대를 이어가며 그의 후손들이 회사를 경영해왔다. 진정한 금강급 내공이다. 기술이 타의 추종을 불허하니 오사카성의 건설과 호류지의 개축도 담당했다. 그런데 그렇게 긴 세월이 평안하고 안녕하시기만 했을까? 모국 백제의 멸망도, 그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일본에서 파병한 수만 대군이 금강에서 몰살당한 백강전투도, 고려-몽고 연합군의 일본 침공도, 조일전쟁(임진왜란)도, 개방에 성공한 일본이 모국인 한반도를 잔혹하게 식민 지배하는 세월도 지켜봐야 했다. 1441년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불과한 150년 전에야 등장한 ‘민족’이란 개념과 그로 인한 격렬한 갈등도 모두 지켜보고 겪어냈다. 정치와 이념의 출렁이는 파도에 좌고우면하면 결코 견디고 이겨낼 수 없는 세월이었다.
현란한 신기술의 등장과 퇴장, 그 숨 가쁜 템포 속에서 틈새 기회를 찾아 도전하고 또 실현하는 현대 스타트업은 ‘뭘 해도 진득하게 오래’ 하는 특성과 궁합이 안 맞는 것 같다.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다시 하는 걸 싫어하는, 매사가 불만인 그런 특성이 ‘딱’이다. 인구와 경제가 2.5배인 일본이 유니콘 기업은 우리의 절반밖에 못 만드는 걸 보면 영 틀린 추론은 아니다. 식민지의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19세에 일본으로 가출한 신격호, 재일동포 차별에 대한 불만으로 고교생 때 혼자 미국으로 건너가 전 세계적 삶을 펼치고 있는 일직(안동) 손씨, 손정의의 스타일이 ‘딱’이다. 국내 환경에서 봤을 때도 일본에 기회가 있다. 5100만 명에 불과한데 계속 줄어들 인구는 독립적인 스타트업 생태계로는 너무 적다. 확장해야 한다. 이제 류중광의 시대를 다시 열어야 한다. 앞으론 일본에 가면 1000년을 버티고 있는 그 사찰들을 감상하며 그 배경에서 웃고 계실 류중광 할배의 흐뭇한 미소를 떠올려볼 일이다. 그리고 따라가며 한 수 배우던 ‘한 시절’을 이제 끝내고 과감하게 진출해 새로운 금강조를 꿈꿔 볼 일이다. 디지털 전환에 늦어 여전히 아날로그 세상에 사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멋지고 새로운 사천왕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