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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귀신 이야기가 최고다. 귀신은 무섭고, 무서우면 서늘해지니까. 그런데 과연 그런가? 이야기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활약하는 귀신은 보통 깊디 깊은 한이 서려 있기 마련이다. 그렇다. 한국인에게 특히 두드러진다는, 다른 언어로는 제대로 번역하기도 어렵다는 정서, 한(恨)…….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한’은 몹시 원망스럽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마음을 뜻한다. 원망과 안타까움, 슬픔 같은 단어로 한을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것보다 더 찢어질 것 같고, 그것보다 더 깊을 것 같으며, 그것보다 더 복잡할 것만 같은데…… 달리 표현할 말이 없으니, 그저 한스러울 뿐이다.

조예은 장편소설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는 깊게 각인된 한에 대한 이야기다. 몇 해 전 야무시를 발칵 뒤집은 ‘떡 테러 사건’으로 하나뿐인 가족인 어머니를 잃은 ‘화영’은 가출 팸에 몸을 의탁한 채, 어머니의 복수를 위한 돈을 모으는 중이다. 가출 팸의 아지트는 레인보우 아파트. 야무시에서 가장 열악한 주거지이지 범죄의 온상이다. 화영은 팸의 우두머리인 영진과 얽혀 정체 절명의 위기에 처하지만 뜻하지 않게 ‘해피 스마일 베어’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다. 놀랍게도 테디베어는 영혼이 깃든 듯, 말하고 움직인다. 인형은 인형이 아니다. 화영의 어릴 적 친구 두하가, 지금의 곰인형인 것이다.
사진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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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귀여운 인형이 손도끼를 들고 슬래셔 무비를 떠올릴 정도로 잔혹하게 주인공 화영에게 도움을 주는 장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매력을 발산한다. 복수심으로 추동되는 강한 의지의 소녀 화영과 소심하게 자신의 실수와 잘못을 복기하는, 이제는 테디베어가 되어버린 소년 도하의 콤비 플레이는 그 자체로 훌륭한 버디물이자 액션물로서 읽는 재미를 더한다.

‘레인보우 아파트’와 ‘씨더뷰파크’의 대비는 자본주의의 욕망에 포섭되어버린 인물의 심리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그런데,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형이 살아 움직인다니….눈 딱 감고, 그렇다 치고 넘어가기에는 과도한 설정이 아닐까? 어떠한 설득력으로 360페이지에 이르는 소설을 끝내 이끌고 나갈 것인가?

손도끼를 든 곰인형은 몰라도 한을 품은 귀신에게 우리는 설득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거기에 조예은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해할 수밖에 없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데 귀신 같은 재주가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우리는 왜 귀신에게 설득당하는가? 귀신에게는 한이 있기 때문이다.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에서도 억울하고 애도 없는 죽음에 한을 품은 귀신이 사태의 실마리이자 사건의 공모자가 된다.

물론 그러한 귀신을 만들어내고 자극하는 것은 귀신보다 무서운 산 사람이다. 산 사람의 그릇된 정념이다. 이 소설이 더욱 극적인 호러소설이 되는 것은, 그러한 정념이 모두에게 조금씩은 있다는 걸 우리가 알기 때문은 아닐까. 동시에 이 소설이 더더욱 살뜰한 로맨스 소설이 되는 이유는, 그러한 정념에 맞서는 의지와 사랑도 우리에게 충분히 있음을 슬며시 알려주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하니 《테디베어는 죽지 않아》는 버디물이자 액션물이며, 슬래셔 무비이자 귀신 이야기이고, 호러 소설이며 로맨스 소설이기도 하다. 이를 모두 다 이룬 것을 이제부터 우리는 조예은의 소설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