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8세 일러스트. 당시 귀족 남성들의 복장은 반바지였다. /한국신사
헨리 8세 일러스트. 당시 귀족 남성들의 복장은 반바지였다. /한국신사
초복으로 접어들던 지난 7월 초 홍준표 대구시장으로부터 야기된 때아닌 반바지 논란은 우리 사회의 반바지를 향한 거부감을 고스란히 들어냈다. 2016년 삼성이 반바지 출근을 일부 용인한 후 몇 년간 이어진 대기업들의 복장자율화로 반바지 출근은 사실상 허용됐지만, 7년이나 지난 지금에도, 일터에서 반바지를 착용하는 그 누군가에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해 보인다.

보이스카우트 소년복, 운동복, 혹은 휴가를 즐기는 한가한 사람의 옷이라는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코로나 팬더믹으로 가속화된 복장 규정의 붕괴와 의상 캐주얼화의 강력한 경향에 따라 결국 우리는 반바지를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현실이 그러하다면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너그럽게 모두가 받아들일만한 반바지 스타일을 고민해보는 것은 어떨까? 함께 반바지의 역사를 알아보면서 역사와 사회적 인식에 따라 변천해 온 반바지의 존재감을 확인해 보자.

상류층 남자들이여, 스타킹에 반바지만 입어라!


복장 규정은 사실상 뿌리깊은 사회적 약속이다. 오늘날의 현대 복식은 영국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고 영국의 찬란한 역사문화적 우위는 16세기 전후의 튜더 왕가의 헨리 8세때 그 절정에 달하게 된다. 소비지상주의가 대두되고, 신흥부유층이 생겨나면서 허울뿐인 빈곤한 상류층의 입지가 좁아지자 헨리 8세는 후에 사치금지령으로 알려진 제도를 만든다.
반바지를 위한 변명… 헨리 8세 "야, 나 때는 반바지만 입었어!"
명목은 과도한 사치를 금한다는 윤리적 지향에 있었으나 사실상 이 제도에는 계급에 따른 복장 규정이 되어 사회적 계급을 시각적으로 분리하는 결과를 낳는다. 바로 이때 상류 계급의 남성들은 스타킹과 함께 매우 짧은 반바지를 입는 것이 요구되었다. 아마도 반바지의 위상이 이 때보다 더 높았던 적은 인류 역사상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반바지는 입고 싶은 옷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프랑스 혁명가들 ‘반(反)반바지’파의 등장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프랑스 대혁명의 시대가 도래하자 오직 귀족들만에게 허락된 퀼로트라 불리는 반바지는 주도권을 잡는 이들에게 크게 미움을 사게 된다. 프랑스 대혁명을 주도한 혁명당원들은 상 퀼로트(sans-culotte)라고 불렀는데 이는 우리말로 이른바 ‘반(反)반바지’파였다. 노동 계급의 상징이자 득세하는 남성 과격 공화파에게 긴 바지는 새로운 권력과 남성성의 상징이요 반바지는 타파의 대상이자 구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9세기말까지만해도 서양의 아기들은 신생아 때는 길고 흰 치마를 입혔는데 아이가 걷기 시작함에 따라 그 치마의 길이는 자연스럽게 짧아지고 소년이 되면 반바지를 입게 되었다. 그렇게 성적 존재감이 없는(남자로서 기준 미달인) 반바지 소년들은 어른으로서의 성징을 보이기 시작하는 10대 중반을 넘어서야 긴 바지를 입게 된다. 이렇게 반바지는 성인의 기준 에 못 미치는 작은 아이들의 옷으로 마음 속 깊이 정착된 것이다.

'버뮤다 팬츠'는 어떻게 해군 장교들의 군복이 됐을까


하지만 뜻밖에도 반바지는 그 실용성 덕분에 다시금 부활의 계기를 맞이한다. 캐러비안에 위치한 버뮤다(맞다! 뭔가 자주 실종된다는 그 신비의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반바지 부활의 작은 신호가 깜빡인다. 1800년대 초부터 버뮤다 제도는 이미 영국 해군의 북대서양 중심지이자 전초기지였는데, 이곳의 유일한 찻집의 주인이던 나다니엘 콕슨 (Nathaniel Coxton)이 무더운 날씨에 타이를 매고 재킷과 긴 바지까지 입고 일하던 점원들의 불평을 덜어주기 위해 돈을 가장 적게 들이고도 시원해 지는 방법을 연구하다가 점원들의 바지를 무릎 아래로 댕강 잘라버리기로 작정한 것이다.
버뮤다 팬츠를 입은 영국 해군들.
버뮤다 팬츠를 입은 영국 해군들.
일차 대전 당시 이 곳 찻집의 단골이던 해군 제독 메이슨 베리지(Mason Berridge)는 긴 양말에 무릎을 살짝 웃도는 반바지에 타이와 재킷까지 차려 입은 이 곳 점원들의 모습이 보기 좋았는지, 해군 장교들의 제복에 이 바지를 적용하면서 후에 더운 지역의 영국군 전체에 반바지 제복이 적용된다. 물론, 열대지역에 복무중인 병사들은 이미 군복을 잘라 작업복으로 활용하고 있었지만 상위 계급자들의 정복에 이 버뮤다식 반바지가 적용되었다는 점에서 버뮤다 반바지(Bermuda shorts)는 의미심장하였다.

물론 반바지가 쉽사리 득세 할 순 없었다. 1954년 미국의 펜실베니아 주립대학은 여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반바지를 금지하는 기록을 남긴 바 있고, 같은 해 미국의 유명 잡지인 뉴요커에서는 급증하는 반바지의 인기를 언급하면서도 고급 호텔이나, 유명 스포츠 클럽에서는 반바지 착용 금지되고 있다는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심지어 20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의 남성복과 여성복에 큰 영향을 미친 전설적인 디자이너 하디 에이미즈(Hardy Amies)는 1964년 발간되어 여전히 남성복의 바이블로 받아들여지는 그의 저서 the ABC of Men’s Fashion에서 ‘편안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종종 취향의 기준을 무시하는 원인이 된다’면서 반바지를 꼭 찝어 이렇게 덧붙이기도 했다. ‘해변이나 도보 여행 중이 아니라면 반바지를 입어서는 안 된다!’

기준 미달, 혹은 온전치 못하다는 의미의 반바지(반바지를 칭하는 영문표현은 Shorts다 짧다라는 뜻의 형용사 short의 복수형)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문명의 발달과 함께 극도의 사치를 향하던 인류는 이제는 격식은 내려놓고 자꾸 더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다.
버뮤다 쇼츠를 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일러스트. /한국신사
버뮤다 쇼츠를 입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일러스트. /한국신사
아름다운 옷을 즐기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 서글프긴 하지만 대세를 어찌 거스르겠는가? 넉넉한 핏, 무릎 언저리까지 오는 적당한 길이, 그리고 조금 짙은 색상의 반바지라면 보수적인 꼰대 부장님도, 매일 라때는~을 운운하는 우리 사장님도 조금 덜 부담스러워 하지 않을까? 왕실의 공식 초상화에서 늘 반바지만 입고 있던 헨리 8세가 ‘야! 나 때는 반바지만 입었어~’라고 외칠지 모르겠다. 사냥과 낚시를 즐기면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던 헤밍웨이처럼 멋지게 반바지를 입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