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무대’ 지휘자 놓고 다투는 父子… 화해할 수 있을까
아르투로 토스카니니(1867~1957), 툴리오 세라핀(1878~1968), 빅토르 데 사바타(1892~1967),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1914~2005), 클라우디오 아바도(1933~2014), 리카르도 무티(1941~), 다니엘 바렌보임(1942~) , 리카르도 샤이(1953~)….

클래식 애호가라면 누구나 들어봤음직한 전설적인 지휘자들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인 바렌보임을 제외하면 모두 이탈리아 태생인 이들의 공통점은 또 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 스칼라’ 극장에서 상임지휘자 또는 음악감독을 지냈다는 것이다.

이들 명지휘자와 함께 이탈리아와 유럽을 넘어 세계 최고 권위의 오페라극장으로 성장한 ‘라 스칼라’는 지휘자나 성악가라면 누구나 서고 싶어하는 ‘꿈의 무대’로 통한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를 비롯해 벨리니의 ‘노르마’, 베르디의 ‘오텔로’ ‘팔스타프’, 푸치니의 ‘나비부인’ ‘투란도트’ 등 요즘도 전 세계적으로 자주 상연되는 오페라 걸작들을 초연했던 역사적인 명소이기도 하다.

다음달 9일 개봉하는 영화 ‘마에스트로’는 ‘라 스칼라’ 차기 음악감독 자리를 두고 프랑스의 저명한 지휘자들인 뒤마르 부자(父子)에게 벌어지는 해프닝을 다룬다. ‘열렬한 클래식 애호가’라고 자평하는 프랑스 영화감독 브뤼노 시슈가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꿈의 무대’ 지휘자 놓고 다투는 父子… 화해할 수 있을까
영화는 아들 ‘드니’ 뒤마르(이반 아탈)가 프랑스의 권위있는 음악상인 빅투아르 상을 받는 시상식 장면으로 시작한다. 드니는 상패를 받고 나서는 가족들이 앉아있는 객석을 바라본다. 어머니 엘렌과 아들 ‘마티유’ 뒤마르, 전처(前妻)이자 매니저인 잔느가 보이지만 아버지 ‘프랑수아’ 뒤마르(피에르 아르티니)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비어 있다.

같은 시간대에 프랑수아는 집에서 TV를 통해 아들의 시상식 장면을 보고 있다. 드니가 상을 받고나서 일종의 자축무대로 자신의 오케스트라와 연주를 시작하려는 무렵. 프랑수아는 TV를 끄고 축음기에서 자신이 녹음한 듯한 음반을 튼다. 이때 흐르는 음악이 성악곡인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다. 작곡가인 드보르자크가 자녀 세 명을 병환으로 먼저 떠나보낸 직후 지은 곡이다. 어머니가 눈물 지으며 가르쳐준 노래와 사랑을 전해줄 자녀가 없음을 아쉬워하는 작곡가의 애잔함이 가사와 곡조에 배어 있는 노래다. 프랑수아는 이 노래를 들으며 묘한 표정을 짓는다.
‘꿈의 무대’ 지휘자 놓고 다투는 父子… 화해할 수 있을까
작품은 클래식 음악 지휘자들의 얘기지만, 음악적인 목표나 성취를 이루는 데 주안점을 둔 음악영화는 아니다. 거장의 위치에 있으면서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아들을 부담스러워 하는 아버지. 드니와 프랑수아를 축으로 세대 간 갈등과 화해를 이야기하는 가족 영화에 가깝다. 음악은 ‘어머니가 가르쳐준 노래’처럼 등장인물들의 심경을 표현하거나 관계 변화를 가져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어느 날, 아버지인 프랑수아는 꿈에 그리던 ‘라 스칼라’ 음악감독 제안을 받고 기뻐한다. 아들인 드니는 ‘라 스칼라’ 회장으로부터 비서의 실수로 자신에게 와아할 제안이 아버지에게 잘못 갔다는 얘기를 듣는다.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직접 얘기해서 바로잡아 달라는 요청을 받고는 고민에 빠진다. 같은 지휘자이자 아들로서 아버지가 제안을 받고 누렸을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고민이 간접적으로 우연히 해결된 후 드니가 녹음실에 가서 지휘하는 곡이 모차르트의 성가곡 ‘주님을 찬양하라’다. 아버지 못지않게 ‘라 스칼라’ 음악감독이 되고 싶었던 드니의 환희가 이 노래를 열창하는 소프라노의 밝은 목소리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꿈의 무대’ 지휘자 놓고 다투는 父子… 화해할 수 있을까
이처럼 배경에 흐르는 음악을 알고 있거나, 영화 보기 전에 ‘예습’을 통해 익힌다면, 보다 깊이 있게 주인공들의 심경 변화를 이해할 수 있을 법하다. 물론 배경 음악을 알지 못하더라도 등장 인물들의 심리 묘사가 세밀하고 정교하기 때문에 영화를 즐겁게 감상하거나 스토리를 따라가는데 문제는 없겠다.

예를 들어 드니가 자신의 아들 마티유와 피아노 의자에 나란히 앉아 브람스의 간주곡(인터미션) 7번을 왼손과 오른손 파트로 나눠 함께 연주하며 서먹서먹했던 관계를 푸는 장면이 나온다. 가장 가슴이 뭉클해질 수 있는 이 장면에서 연주곡 제목이 뭔지 몰라도 감동의 크기엔 전혀 영향이 없을 듯싶다.
‘꿈의 무대’ 지휘자 놓고 다투는 父子… 화해할 수 있을까
하지만 영화 포스터 사진으로 쓰인 엔딩 장면에선 클래식 애호가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나뉠 수 있겠다. 아들 드니의 ‘라 스칼라’ 데뷔 무대에서 첫 곡인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서곡을 연주하는 장면이다. 반목했던 아버지와 아들이 화해하는 장면으로 이보다 더할 수 없을 만큼 극적 효과는 크지만, “현실적이지 않다”며 고개를 가로저을 수도 있겠다. 차라리 이날도 비어있는 객석의 아버지 자리에 프랑수아가 착석해 아들의 연주가 끝난 다음 일어나서 아낌없이 기립박수를 보내는 정도로 마무리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꿈의 무대’ 지휘자 놓고 다투는 父子… 화해할 수 있을까
아버지와 아들 지휘자 역을 맡은 피에르 아르티니와 이반 아탈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들 답게 뛰어난 내면 연기를 보여준다. 이들의 개성 넘치는 ‘지휘 모습’도 인상적이다.

송태형 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