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메리츠'로 재탄생…새로운 100년 여는 메리츠금융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이 하나로 뭉쳐 ‘원 메리츠(One Meritz)’로 새롭게 태어났다. 지난 4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그룹 내 기존 상장 3사 중 메리츠금융지주만 남고 메리츠화재·증권은 상장 폐지 후 지주사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됐다. 이는 그동안 소액주주로부터 거센 반발을 샀던 ‘쪼개기 상장’과는 정반대의 행보로 국내 자본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는 평가다. 오너 경영인인 조정호 메리츠금융 회장과 김용범(화재)·최희문(증권) 부회장의 ‘찰떡궁합’을 바탕으로 특유의 파괴적 혁신 및 고성장세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게임체인저’ 메리츠, “시너지 확대”

메리츠금융은 4월 통합 상장 첫날부터 시가총액이 10조원에 육박하며 비은행 대형 금융지주의 화려한 등장을 알렸다. 현재 메리츠금융 시총은 8조6410억원(6월 28일 종가 기준)으로 국내 비은행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크다.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증권의 실적 개선과 주주친화 정책에 힘입어 시총 10조원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다.

지난해 메리츠화재 창립 100주년, 올해 메리츠증권 창립 50주년을 맞은 메리츠금융은 국내 금융업계의 게임체인저 역할을 수행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한진그룹에서 분리된 2005년 메리츠금융의 자산은 3조3000억원에 불과했으나, 올해 1분기 기준 약 100조원에 육박하며 20년 만에 30배 넘게 증가했다.

이제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메리츠금융은 효율 경영 및 계열사 간 시너지가 더욱 확대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존 상장 3사 체제에서는 내부 통제나 관련법 준수 등의 문제로 핵심 투자 기회를 놓치거나 중요 의사결정이 지연되는 부작용이 컸다는 후문이다. 각사 임직원들 간 의사소통에도 제약이 적지 않았다. 반면 지배구조 개편 이후에는 하나의 울타리 내에서 주요 경영 이슈를 함께 논의하고 각종 자원을 전사적인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됐다.

각 계열사의 성취도 놀랍다. 손해보험업계에서 ‘만년 5위’로 존재감이 미미했던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최초로 영업이익 1조원을 넘기며 ‘톱3’에 안착했다. 보유 자산은 약 36조원 규모다. 지난해 순이익(별도 기준)은 전년 대비 30.9% 늘어난 8683억원으로 2019년 이후 4년 연속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메리츠증권도 최근 6년간 매년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등 안정적인 성장을 일궈내고 있다. 여기에는 리스크 대응 역량을 강화하고 새로운 사업 기회를 발 빠르게 포착해낸 최 부회장의 역할이 크다는 평가다. 올해로 13년째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는 취임 전 자기자본 기준 20위권에 머물던 회사를 지난해 영업이익 1조원의 대형 증권사로 키워냈다. 메리츠증권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1조92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5.1% 늘었다. 순이익은 5.8% 증가한 8281억원으로 22분기 연속 1000억원 이상 순이익을 달성했다.

○‘통 큰 결단’ 조정호…“주주 환원 선도”

       조정호 회장
조정호 회장
이번 지배구조 개편안은 조 회장의 ‘경영권 승계 포기’라는 통 큰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말 기준 75.81%였던 조 회장의 지분율은 이번 주식교환으로 47%로 떨어졌다. 자신의 지분율이 50%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3개 상장사를 하나로 합치는 지배구조 개편을 단행한 셈이다. 조 회장은 “기업을 승계할 생각이 없고, 약간의 지분 차이나 손실은 괜찮다”며 “경영 효율을 높이고 그룹 전체의 파이를 키워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방향으로 가보자”고 경영진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회장은 평소 “대주주의 1주와 개인투자자의 1주는 동등한 가치”라고 강조해왔다. 경영권 승계와 관련한 이해 충돌의 소지를 제거하고 소액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에게 동등한 혜택을 부여하겠다는 의미다.

○위기시 소방수 역할…ESG 강화

메리츠금융은 철저한 리스크 분석을 바탕으로 과감한 유동성 공급을 통한 실물경제 활성화에도 나서고 있다. 메리츠금융은 지난 1월 롯데그룹과 1조5000억원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다. 롯데건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유동화증권 매입을 위해 메리츠금융은 롯데그룹(6000억원)보다 많은 9000억원을 투자했다. 롯데건설은 이를 통해 지난해 강원도 레고랜드발 채권시장 유동성 위기로 촉발된 자금 부족 우려를 해소했다.

메리츠금융은 신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사업에 대한 투자도 늘리고 있다. 지난해 10월 SK에코플랜트가 싱가포르 전자폐기물 처리회사를 사들일 때 인수대금 1조4000억원 가운데 4000억원을 메리츠금융이 댔다. 메리츠금융은 2016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신재생에너지 및 수소연료전지 등 사업에 3조원가량을 투입하기도 했다.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앞으로도 친환경 사업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