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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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 삼양식품 등 라면업체들이 제품 가격 인하 여부를 고심하고 있다. "라면 값을 내리기엔 여전히 원가 부담이 높다"며 손사레를 쳤던 기업들이 정부의 강한 압박에 태도를 바꾼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이후 13년 만에 라면 가격이 인하될지 주목된다.

○정부 압박에 태도 바꾼 라면업계

18일 오전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라면 값과 관련 "기업들이 밀 가격 내린 부분에 맞춰 적정하게 내렸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직후, 라면업체들은 "가격 인하 계획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제 밀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실제 라면업체들이 라면 제조를 위해 국내 제분업체들에게 구입하는 밀가루 가격은 큰 변동이 없는데다, 다른 원부자재 비용과 인건비, 물류비 등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어서다.

하지만 이날 정오 전후로 분위기가 바뀌었다. 한 라면업체가 라면 값 인하 가능성을 검토할 수 있다는 식으로 태도를 바꿨고 다른 업체들도 잇따라 입장을 번복했다. 삼양식품 관계자는 "국민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농심은 "여러가지 어려운 상황이 있지만 제품 가격과 관련해 다각도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했다.

당초 가격 인하 계획이 없다던 라면업체들의 태도가 바뀐 것은 라면 값에 대한 정부의 우려가 생각보다 강한 것을 인지했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한 라면업체 관계자는 "정부에 맞서는 것으로 비춰질 것이 우려됐던 측면이 있다"며 "경영진이 국민 고통 분담 방안을 찾아보라고 지시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했다.

○추경호가 라면을 콕 찍은 이유

추 부총리가 라면 가격을 지목한 것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아졌음에도 라면을 비롯한 주요 먹거리의 상승률이 두 자릿 수로 치솟으며 체감도가 떨어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달 소비자물가는 19개월 만에 가장 낮은 상승폭(3.3%)을 나타냈다. 하지만 가공식품과 외식 부문 세부 품목 112개 중 31개(27.7%)는 물가 상승률이 10%를 웃돌았다.

특히 지난달 라면의 소비자물가지수는 124.04로 전년 동기 대비 13.1%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14.3%) 후 14년3개월 만의 최고치다. 라면 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하반기 라면업체들이 가격을 인상한 후 10%대 상승률을 이어가고 있다.

농심은 지난해 9월 신라면 등 라면 출고가를 평균 11.3% 인상했고 팔도와 오뚜기도 바로 다음 달 제품 가격을 각각 9.8%, 11.0% 올렸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11월 라면 가격을 평균 9.7% 인상했다.

추 부총리는 국제 밀 가격이 지난해보다 하락한 것을 근거로 라면 가격 인하를 언급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거래되는 소맥 선물의 이달 평균 가격은 1톤()당 231.03달러로 지난해 5월과 10월 대비 각각 44.9%, 27.7% 하락한 상황이다.

○"겨우 이익률 회복했는데..."

이번에 라면업체들이 제품 가격을 인하하게 되면 2010년 이후 13년 만에 가격을 내리는 것이다. 당시에도 밀 가격이 하락했다는 이유로 정부의 제품 가격 인하 압박이 전방위로 펼쳐졌다.

농심은 당시 신라면과 안성탕면, 육개장 사발면 등 주력제품의 가격을 2.7~7.1% 내렸다. 농심은 "스프 원료인 농수축산물 가격 인상, 유가 및 에너지 비용 증가로 인하요인보다 4배 수준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고 있지만 서민생활 안정에 기여하기 위해 가격 인하를 결정하게 됐다"고 제품 가격 배경을 밝혔다.

2010년에는 라면업체들 뿐 아니라 롯데제과, 크라운해태제과, SPC 파리바게뜨, CJ푸드빌 뚜레쥬르 등 제과 제빵업계도 가격인하에 줄줄이 동참했었다.

라면업체들은 제품 가격을 인하하면 가까스로 회복한 영업이익률이 다시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라면업체 관계자는 "지난 2년간 반토막 난 영업이익률이 해외 판매 호조로 올들어 가까스로 정상화했다"며 "전반적인 원가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국제 밀 가격 만을 이유로 가격을 내린다면 이익률이 줄어들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하수정 기자 agatha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