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이후 공업·도시화로 오·폐수 유입…환경인식 부족해 오염 방치
뒤늦은 반성 뒤 민관 노력 펼쳐져…생태성 되찾고 랜드마크로 '우뚝'
2002년부터 10년간 강 수질개선에만 5천850억…연어·황어·은어도 찾아
[이젠 정원도시 울산] ① '죽음의 강'에서 '시민의 자부심' 된 태화강
[※편집자 주 = 울산은 1962년 특정공업지구로 지정된 이후 오직 '산업도시'를 바라보며 앞으로 내달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환경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공해도시'라는 오명을 얻게 했고, 특히 울산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죽음의 강'으로 불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런 수치와 불명예를 벗어던지고자 민관은 각고의 노력을 전개했고, 태화강은 '기적'이라는 수식이 절대 과하지 않을 정도로 환골탈태하며 생태성을 회복했습니다.

태화강 수질 회복은 '친수공간'이라는 뜻밖의 선물을 시민들에게 선사했고, 이제 울산은 그 친수공간을 도약대로 삼아 '정원도시'로 비상하는 꿈을 꿉니다.

연합뉴스는 태화강의 오염과 부활, 정원도시 조성 과정과 성과, 시민이 주도하는 정원문화 확산, 앞으로 청사진과 기대 효과 등을 짚는 특집기사를 매주 토요일 7회에 걸쳐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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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특정공업지구 지정을 계기로 울산 태화강과 동해가 만나는 해안지역에는 대규모 공단이 들어섰고, 동시에 인구 유입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공업화와 도시화는 태화강 수질을 급격히 오염시켰다.

당시만 해도 환경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고,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폐수는 그대로 강으로 흘러들었다.

강물은 하수구를 연상시킬 정도로 검게 변해 악취를 풍겼고, 수초마저 말라가는 '죽음의 강'을 시민들은 내 고장의 부끄러움으로 여겼다.

뒤늦게나마 강 생태성 회복을 위한 범시민적 활동이 이어졌고, 마침내 생태성을 되찾은 태화강은 시민의 자부심이 되기에 충분한 명소가 됐다.

[이젠 정원도시 울산] ① '죽음의 강'에서 '시민의 자부심' 된 태화강
◇ 개발의 그늘에서 무지·무관심에 썩어간 태화강
울산의 산업화가 국가와 시민에 물질적 풍요를 안기는 과정 한편에서 태화강은 급속히 생태성을 잃어갔다.

외지인들은 '공해 도시'로 낙인찍힌 울산 방문을 꺼렸고, 울산시민 스스로도 태화강의 오염을 '개발 과정에서 치러야 할 불가피한 대가' 정도로 여길 정도로 환경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다.

1970∼1980년대 언론에서는 태화강에서 등이 굽은 기형어가 발견됐다는 보도가 빈번하게 이어졌다.

1984년 당시 국립환경연구소가 태화강 담수어의 중금속 함량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아연·구리·납·카드뮴 등 중금속이 붕어와 잉어 등 어류에 축적된 것으로 나타났다.

1980년대 말에는 악취가 심해 여름철에 아예 강변에 접근하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다.

1992년 한해에만 다섯 차례 물고기 떼죽음이 기록되기도 했다.

갈수기에는 수량이 줄어 강물에 용존산소가 부족했고, 우기에는 하상에 퇴적돼 있던 오염물질이 빗물과 함께 강으로 유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일부 공장과 축사는 많은 비가 내리는 틈을 타 유독성 오·폐수를 태화강에 흘려보내기도 했다.

1996년 태화강 수질은 생화학적 산소 요구량(BOD)이 11.3㎎/L 수준까지 떨어져, 생명체가 살 수 없고 농업·공업용수로도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의 '등급 외' 판정을 받았다.

2000년까지도 태화강의 심각한 오염은 언론 보도의 단골 소재였고, 죽음의 강이라는 오명이 전국적으로 통용되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다.

[이젠 정원도시 울산] ① '죽음의 강'에서 '시민의 자부심' 된 태화강
◇ 뒤늦은 만큼 치열했던 수질 개선 노력…생태도시 랜드마크 '우뚝'
2000년대 초반부터 태화강 수질 개선을 위한 노력이 본격화했다.

울산시를 주축으로 시민, 민간단체, 기업 등이 협력해 환경 개선 인프라 구축에 집중했고, 희망이 없어 보였던 각종 환경지수가 차츰 개선되는 성과가 나타났다.

2004년 당시 박맹우 시장이 "환경과 경제가 상생하고,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생태도시로 가꾸겠다"는 내용의 '에코폴리스 울산 선언'을 공표한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 선언은 그동안 오직 개발 중심이었던 울산의 도시정책을 환경친화적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

시는 한발 더 나아가 2005년 '태화강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태화강을 시민이 친근하게 다가가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치수적으로 안전하면서 생태적으로 건강한 공간으로 탈바꿈시키는 종합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시는 수질 개선을 위해 가장 먼저 수심이 낮고 인구가 밀집한 강 하류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하류에는 높이 8m, 길이 7㎞의 배수터널이 있었는데, 이 터널에서 매일 5천t가량 생활오수가 강으로 흘러들고 있었다.

그동안 터널 내부 접근이 어려워 방치됐던 문제를 확인한 시는 청정수(빗물)와 오수 분리가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각 가정에서 나오는 오수와 빗물을 분리하는 분류식 하수관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울주군 지역에서 나오는 축산분뇨 유입도 차단했다.

홍수 단면적을 축소해 하천 유량 부족을 초래하는 강바닥 퇴적 오염물도 제거했고, 우수토실(하수도에 일정량 이상의 빗물이 유입하지 않도록 빗물을 하천으로 방류하는 시설)을 통해 유입하는 오수를 차단하고자 삼산배수장과 여천배수장에 오염물질 현장처리시설을 설치했다.

[이젠 정원도시 울산] ① '죽음의 강'에서 '시민의 자부심' 된 태화강
아울러 언양·굴화하수처리장 건설, 반천·서사마을 하수 지선 관로 부설, 언양 하수관로 정비, 범서 척과 소규모 하수처리장 설치 등으로 상류에서 발생하는 오수를 전량 차집하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시가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태화강 수질 개선에 투입한 예산만 5천850여억원에 달한다.

시민과 기업의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2005년부터 자원봉사자들이 수중 쓰레기를 수거하는 정화 활동을 시작했고, 기업에서는 하루 200t 이상 폐수를 방출하는 기업에 폐수 자동측정기를 설치하는 등 자발적 감시에 동참했다.

민관이 벌인 각고의 노력은 성과를 보였다.

성장의 그늘에서 급속히 썩어갔던 태화강은 뒤늦은 관심과 노력에 차츰 생태성을 회복하며 화답했다.

2005년 태화강 BOD는 2.7㎎/L로 보통 등급인 2급수 수준을 회복했고, 2016년에는 1.2㎎/L로 1급수 기준을 충족했다.

물이 맑아지면서 2005년 전국체전 개최 이후 태화강에서는 전국 규모의 수영, 카누, 조정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연어, 황어, 은어 등 회귀 어류는 산란을 위해 매년 태화강을 찾고 있다.

풍부한 먹이와 뛰어난 서식 환경을 갖춘 강 일원은 매년 겨울철 떼까마귀가, 여름철 백로류가 찾는 국내 대표 철새 도래지가 됐다.

수달과 삵의 행동반경이 강 하류까지 확대되고, 멸종 위기종을 비롯한 700여 종 동식물이 서식하는 '생태환경의 보고'로 변모했다.

태화강은 생태도시 울산의 랜드마크로 떳떳이 자리매김했다.

[이젠 정원도시 울산] ① '죽음의 강'에서 '시민의 자부심' 된 태화강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