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 2천400여명 노동자들 산재로 숨진다…정치권 관심 없어"
"정규직은 임금인상 자제하고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 노력해야"
"외국에서 온 이주노동자들 구타당하고, 욕 듣고, 외롭게 죽는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한국에서 연간 2천400여명이 산업재해로 죽는다.

이렇게 죽는 사람 가운데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1천만명이나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달에 불과 200여만원 안팎을 받으면서 석탄 가루를 까맣게 뒤집어쓴 채 몸과 머리가 분리돼 숨지기도 하고, 지하철역에서 홀로 일을 하다 달려오는 전동차에 치여 몸이 부서져 죽기도 한다.

비정규직의 3∼5배의 임금을 받는 정규직은 이런 험한 일을 하지 않는다.

정규직들은 노조를 만들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사장실에 찾아가 소리도 지르지만, 비정규직들은 해고될까 봐 전전긍긍하는 삶을 산다.

비정규직들보다 더 고통스럽게 사는 사람은 130만명에 달하는 이주 노동자들이다.

농축산업 이주 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움막에서 자면서 한 달에 한 번 쉬고, 하루 10시간씩 일해서 월 160만∼200만원 정도 받는다.

그들은 한겨울 추운 움막에서 잠을 자다 숨지고, 시체가 되어 야산에 버려지기도 한다.

제조업 이주 노동자들도 설움과 고통을 많이 받는다.

1년에 잘려 나가는 이주 노동자 손가락이 12가마에 이를 정도로 산재사고가 많지만, 회사 측은 산재 신청을 막으려고 협박한다.

이주 노동자들은 고용주로부터 "못마땅하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더욱 문제는 우리 국민 상당수가 비정규직과 이주 노동자의 문제는 자신과 관련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고 있거나, 정규직이어서 연봉 1억원 안팎을 받는다면, 그 소득의 바탕에는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의 저임금과 산재, 죽음이 있다.

비정규직과 이주노동자의 문제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5천만명 우리 국민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다음은 연합뉴스가 작년 9월부터 진행했던 [삶] 인터뷰 가운데 노동문제에 대해 의견을 내놨던 사람들의 언급을 정리한 것이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전순옥(69)은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이다.

1948년 대구에서 태어난 전태일은 평화시장 옷 공장 재단사로 일하면서 참혹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뤄지지 않자 22세였던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 앞길에서 석유를 끼얹고 분신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지켜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면서 자신을 불태웠고, 동료들은 그 불길에 아무 쓸모가 없었던 근로기준법 책을 던졌다.

그는 재단사로 일하면서 배고파하는 어린 시다(보조원)들에게 버스비로 풀빵을 사주고는 도봉구 쌍문동 집까지 30리 길을 걸어간 사람이었다.

시다들을 대신해서 혼자 공장에 남아서 청소하기도 했고, 시다가 아프면 약국과 병원으로 뛰어가곤 했다.

추위에 떠는 걸인을 만나면 옷을 벗어주고는 벌벌 떨면서 집으로 가기도 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전순옥은 전태일 분신 후 50여년이 지났지만, 그 당시의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정규직은 비정규직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전순옥은 "조선소에 가보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60%밖에 안 된다"면서 "회사 측은 이런 차별의 방식으로 정규직의 임금인상 요구에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사 측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 하면 정규직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다"면서 "정규직들은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비정규직을 끌어안고 그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했다.

전순옥은 또 노동조합이 보다 건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월급을 받아서는 안 되며 노조 일만 하는 사람은 회사가 아닌 조합원들로부터 급여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노조 전임자가 회사로부터 급여를 받으면 회사 측과 야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회사 일을 안 하는 노조 전임자에게 회사가 월급을 주는 일은 거의 없다"면서 "한국의 전임자 급여제도는 박정희 정권 시절 노조를 컨트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김용균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김미숙(53)은 김용균의 어머니다.

김용균은 2018년 12월11일 새벽 서부발전 컨베이어벨트 아래에서 숨진 상태에서 발견됐다.

당시 24세였던 김용균은 새까만 석탄 가루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머리와 몸은 분리돼 있었다.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지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어머니 김미숙은 하나뿐인 자식이 죽었다는 현실에 남편과 함께 영안실 복도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울었다.

그가 사고 현장에 가봤더니 폴리스 라인도 없었고, 회사 측이 물청소까지 해놓아서 사고의 증거들이 사라지고 없었다.

김미숙은 그곳에서 악을 쓰고 울었다.

반드시 사고의 원인을 찾아내겠다면서 통곡했다.

아들이 떠난 지 4년이 지났지만, 김미숙은 여전히 고통스럽다.

꽃을 봐도 이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아들이 죽기 전에는 일요일에도 쉬지 않고 나가서 일을 했지만, 이제는 돈을 벌 필요성도 못 느낀다고 했다.

남편, 아들과 함께 셋이 가끔 여행하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는 것이 꿈이었던 그는 이제 노동 운동가가 됐다.

이전처럼 살기에는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산재 사망 노동자 유가족의 손을 잡아주고,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강연도 한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김미숙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이 심하다고 했다.

그는 아들 김용균이 다녔던 회사 서부발전의 경우,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다니는 길의 가로등 빛 밝기도 달랐고, 식당도 구분됐으며, 심지어 캐비닛 크기에도 차이가 있었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는 사고로 사람이 죽으면 비정규직의 목숨값은 정규직의 절반으로 계산한다고 했다.

하청회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 대신에 죽다 보니 본사는 사고 없는 깨끗한 회사라는 이유로 세금 감면을 받아 정규직들에 성과급으로 나눠줬다고 그는 말했다.

김미숙은 이런 억울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난 4년간 노력했지만 여야 구분 없이 정치권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국회의원들은 자기가 다음 선거에서 다시 뽑히는 데 집중해 비정규직 문제는 외면한다고 지적했다.

고위 공무원들도 나라를 좌지우지하면서 국민들 이익보다는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경우, 여당과 야당 모두 합심해서 원안으로 통과시킬 줄 알았는데, 50인 미만 사업장은 3년 유예, 5인 미만 사업장은 면제되는 것으로 통과됐다"면서 "사람이 죽는 산재사고의 80%는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어난다고 항변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영원한 재야 장기표(77)는 본인이 민주노총 위원장이라면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기업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는 하청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낮춘다"면서 "이는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적어도 노동운동을 하는 사람이라면 우리 사회 전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월급을 많이 받으니 좋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사회를 바로잡는 데 진정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기업 총수나 최고경영자 등이 수십억, 수백억 원의 연봉을 받는 것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전자 등기이사의 평균 연봉이 70억 원 정도이며 200억 원 이상을 받는 최고경영자도 있다"면서 "회사의 직원들 평균 임금이 1억 원이라면 70배, 200배에 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유럽 국가 최고경영자들은 근로자의 7∼8배 정도를 받는다"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들이 월급 주는 것을 규제하기는 어렵지만 국가가 세금을 부과해서 그들의 실질소득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노동운동가 하종강(67)은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가량이나 되는데, 우리나라처럼 정규직에 비해 차별을 많이 받는 나라는 없다고 했다.

그는 현대차에서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신했을 때 온몸이 붕대로 감긴 상태에서 한 말을 기억한다고 했다.

그 노동자는 "똑같은 라인에서 왼쪽은 정규직이 조립하고, 오른쪽은 비정규직이 조립했다"면서 "업무 내용이 똑같고 사용하는 장비도 똑같았는데, 앞에 '비'자 하나 붙은 것 때문에 월급을 절반밖에 못 받았다고 했다.

하종강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려면 회사가 가져가는 몫을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이 성과를 너무 많이 가져가서 생기는 것"이라면서 "70년대와 80년대에는 전체 경제와 가계소득, 기업소득 증가율이 8% 정도로 비슷했으나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기업소득 증가율만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는 "정규직 임금을 인상하되, 비정규직은 더욱 빠르게 올려서 그 차이를 좁혀야 한다"고 말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포천이주노동자센터 대표인 김달성 목사(64)는 비정규직 노동자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비인간적 대우를 받는 사람은 이주노동자라고 했다.

농축산업 분야의 이주 노동자들은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일하고, 한달에 한번만 쉬는 중노동을 하면서도 월급으로 160만∼200만원밖에 받지 못한다고 했다.

잠은 검은 비닐하우스 내의 컨테이너에서 자는데, 이것도 기숙사라면서 농장주가 20만원 정도를 떼어간다고 했다.

이주 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길 수가 없고, 많이 다쳐도 산재를 신청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일을 하면서 '개새끼, 씨발놈아, 병신새끼, 등신새끼'라는 욕설을 수시로 듣는다고도 했다.

김 목사는 충남대 의대를 다니다 감리교신학대에 편입해 졸업한 뒤 서울 동작구 사당동, 봉천동, 인천 주안공단 지역 등에서 빈민, 노동자들을 위한 목회 활동을 했다.

5년 전부터는 포천에서 이주노동자센터를 운영하면서 이주 노동자들을 돕고 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김달성 목사는 한국의 입법부, 정부, 사법부가 고용허가제라는 제도를 통해 이주노동자를 착취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라는 양대 우파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이런 착취 구조를 심화시켰다고 했다.

5천만명의 우리 국민도 직간접적으로 이런 착취에 참여하고 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는 이주노동자들은 성폭력을 많이 당하지만 어디에 하소연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설문조사를 하면 성폭력 사례가 10∼20% 정도이고, 40%까지 나오는 경우도 있다"면서 "유형은 성희롱부터 시작해서 성추행, 강간까지 있다"고 했다.

그는 작년에 상담한 사례를 전했다.

20대 필리핀 여성 노동자가 50대 남자 사장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장이 애인이 돼 달라고 요구했다.

거절을 했는데도 사장은 2∼3개월에 걸쳐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 노동자는 참다못해 사장한테 사업장 변경을 요청했지만, 사장은 이를 거절했다.

이후에도 사장의 이런 행태가 지속하자 이 노동자는 사장이 하는 말을 녹음해놨다가 제시했다.

이 노동자는 간신히 사업장을 옮길 수 있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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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실을 훔쳐보는 사례도 있었다.

한 공장건물 2층 기숙사 옆에 샤워실이 있었다.

하루는 한 여성 이주노동자가 일을 마치고 샤워하는 중에 샤워실 내 거울 건너편에서 플래시가 터지는 것을 봤다.

신고받고 출동한 경찰이 조사한 결과, 그 거울은 반대편의 사장실에서 샤워실을 볼 수 있는 특수 거울이었다.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는 원시적이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그는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가장 잦고, 다리가 부러지고, 높은 곳에서 떨어지기도 하며. 화상과 질식사고도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손가락은 프레스에 의해 절단되는 경우가 많은데, 잘린 손가락을 모으면 1년에 12가마니 정도는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회사나 농장주는 페널티 때문에 외국인 노동자의 산재 신청을 막으려 하고, 산재 관련 병원은 회사 사장이나 농장주와 유착돼 있다"면서 "한국말도 잘 못하는 외국인노동자가 홀로 산재를 신청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삶-특집] "비정규직·이주노동자 죽음에 국민인 당신은 책임 없나요"
김달성 목사는 이주 노동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허가제 관련 법률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는 고용주의 허가 없이 이주노동자가 직장을 옮길 수 없기에 노예처럼 묶여있다고 했다.

그는 "사업주와 이주 노동자 관계를 주종 관계에서 수평관계로 바꿔야 시장원리가 작동해서 경제가 건강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1년에 한 번씩은 이주노동자 본인이 사업장을 선택해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했다.

처음부터 4년 10개월짜리 비자를 주고, 처음 1년은 계약 사업장에서 일하고 나머지 기간에는 사업장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앞으로 이주노동자들의 노조를 만드는 쪽으로 노력할 계획"이라면서 "현재 이주노동자 노조 중앙조직은 만들어졌는데, 노동 현장에 일선 단위 조직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런 조직이 만들어지면 이주노동자의 근로조건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김 목사는 국민이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 좀 더 애정이 어린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우리 밥상에 올라가는 채소, 생선, 육류 등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생산하는 것이며 우리가 사는 아파트도 이주노동자들이 감당하는 부분이 꽤 있다"면서 "그들을 더불어 사는 주민이라고 생각으로 포용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