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에 500만원. 도시에서 고독하게 살아온 이들을 위한 ‘맞춤 엄마 서비스’의 값이다. 가족뿐만 아니라 고향까지 재현해준다. 현대인 가슴 깊숙한 곳의 허전함을 파고든 감동 소설로, 출간 당시 일본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저자는 영화 <파이란>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이선희 옮김, 다산책방, 400쪽, 1만7500원)
2010년 12월 아프리카 대륙 북쪽의 지중해 연안 국가 튀니지에서 불같이 시위가 일었다. 청년 실업률이 30%를 넘고 굶주리는 사람이 날로 늘고 있을 때였다. 독재자인 벤 알리 대통령 가족이 호의호식하고 있다는 소식과 노점상을 하던 청년의 분신자살이 더해져 사람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리비아 이집트 예멘 시리아 등으로 반정부 시위가 번진 ‘아랍의 봄’의 시작이었다.미국 하버드대 사회학 박사 출신인 다큐멘터리 감독 루퍼트 러셀은 <빈곤의 가격>에서 이 사건을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를 끌어내린 1789년 프랑스 혁명과 비교한다. 식량난으로 굶주린 사람들의 불만이 기폭제가 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중대한 차이가 있다. 바로 식량난의 원인이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프랑스 혁명을 촉발한 빵 가격 상승은 흉작에 따른 결과였다. 곡물 생산이 줄어드니 가격이 오른 것이다. 반면 세계 식량 위기가 발생해 아랍의 봄이 벌어지는 동안 세상에는 먹을 것이 넘쳐났다. 실제로 당시 세계 식량 생산량은 역사상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그가 지목하는 범인은 투기 세력이다.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 상품선물현대화법이 통과된 후 원자재 시장이 본격적으로 금융화됐다. 파생상품을 통해 원유, 금속, 곡물 등의 가격 상승과 하락에 베팅하는 게 쉬워졌다. 책은 2008년 6월 미국 하원 에너지·통상위원회에 출석한 헤지펀드 매니저 마이클 매스터스의 증언을 인용한다. “지수 투기자들은 최근 5년간 누구보다 선물을 많이 매수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지수 투기자는 원자재 인덱스펀드를 매수하는 투자자를 가리킨다. 이런 펀드에 들어간 자금이 2003년 130억달러에서 2006년 3월 중순 2600억달러로 늘었다.그 결과 원자재 지수에 포함된 원자재 가격이 동반 상승했다. 미국산 밀, 인도산 면화, 과테말라산 커피, 러시아산 원유, 칠레산 니켈, 카타르산 천연가스 등이다. 지수에 포함되지 않은 원자재는 이런 동조 현상이 약했다.저자가 지적하는 금융화의 또 다른 부작용은 ‘가격 거품’이다. 생산이나 소비에 쓰이는 상품은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감소한다. 금융화한 상품은 반대다. 가격 상승을 기대하고 수요가 더 몰린다.책은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상황들을 전해주지만 안타깝게도 단순화의 함정에 빠진다. 헤지펀드 등 투기 세력이 원자재 시장의 변동성을 높인 것은 맞다. 하지만 모든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예컨대 세계은행은 2007~2008년 세계 식량 위기의 주요 원인으로 바이오연료를 든다. 환경과 유가 안정에 도움을 준다는 이유로 미국 정부는 옥수수 에탄올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옥수수 생산량이 늘어도 식량으로 쓰일 옥수수는 거의 늘지 않았다. 중국에서 수요가 급증한 점, 유가 상승으로 농업 생산·유통 비용이 늘어난 점, 일부 국가에서의 흉작으로 세계 밀 생산량이 감소한 점 등도 책은 언급하지 않는다.저자는 투기 세력이 ‘추세 추종 전략’을 따르면서 가격 상승과 하락을 부채질한다고 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다. 가격이 너무 떨어졌다고 판단하면 저가 매수에 나서기도 한다. 1980년대 알루미늄 가격이 급락했을 때 알루미늄을 매집하며 산업 붕괴를 막은 것도 투기 세력이었다. 큰돈을 벌려고 벌인 짓이 세상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책을 쓰면서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찍은 저자는 부지런히 세상을 돌아다녔다. 이라크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 케냐에서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이 책에도 나온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제프리 삭스, 로버트 실러 등 유명 경제학자들도 만나 얘기를 듣는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자본주의와 금융화를 탓하는 얄팍한 주장에 그치고 말았다.책의 부제는 ‘원자재 시장은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흔들었는가’다. 흔들린 세상을 보여주는 데는 성공했지만 원자재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깊이 파고들지 못했다는 게 아쉽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화성 연쇄살인 사건’ 범인으로 몰려 20여 년간 억울하게 옥살이한 윤성여 씨가 풀려난 것은 진범 이춘재가 붙잡힌 2019년이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대한민국 법원은 지난해 “국가는 윤씨에게 18억7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잃어버린 20년’이 돈으로 온전히 보상될 리 없다. ‘어느 날 내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로 유죄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간다면 어떨까?’ <죄 없는 죄인 만들기>를 쓴 마크 갓시 미국 신시내티대 법학과 교수는 이렇게 묻는다.저자는 미국 연방검사로 일했다. ‘범죄에 맞서 싸운’ 검사로 지내다 형법 교수가 되면서 우연히 켄터키 이노센스 프로젝트라는 단체에서 학생들을 지도했다. 로스쿨을 기반으로 활동하며 전국 단위 조직망을 구축하고 잘못된 유죄 판결로 복역 중인 이들을 석방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였다.그동안 판결이 틀릴 리 없다고 확신해온 저자는 이노센스 프로젝트를 통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로 교도소에서 복역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깨달았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을. 이들을 돕기 위해 오하이오 이노센스 프로젝트를 설립했고 2022년 현재 39명을 감옥에서 꺼냈다.책의 목차는 모두 ‘눈’과 연관돼 있다. 눈을 가리는 부정, 야심, 편향, 기억, 직관, 터널 비전이다. 이를 통해 저자는 죄 없는 죄인을 만들어내는 사법 시스템의 잘못된 관행, 정치적 요인, 오판에 관여하는 인간의 심리 결함을 두루 다뤘다. 검찰, 경찰, 재판부, 변호인단 모두 증거와는 상관없이 저마다 자신의 최초 직감을 의심하고 싶지 않은 탓에 ‘터널 비전(시야)’에 갇혀 비이성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확증 편향, 기억의 오류 등 보편 심리의 문제점을 짚어냈다.미국의 사건과 상황을 설명하지만, 읽다 보면 한국의 현실이 오버랩된다. 특히 강압적인 수사가 이뤄지던 시기, 범죄를 입증할 과학기술이 발전하지 않은 시절에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렸다가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사례들이 떠오른다.저자는 시스템 내부의 압력과 정치 논리에 따라 법이 움직이는 현실을 이같이 꼬집었다. “정말이지, 우리 형사사법 제도는 정의의 여신처럼 눈을 가린 채 정의를 실천하는 게 아니라 그저 불의에 눈감고 있다.”이금아 기자 shinebijou@hankyung.com
어느 순간 세상이 바뀌었다. ‘다 같이 잘살자’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내가 잘사는 게 우선’이다. 정치권에서든 시민사회에서든 공동체 의식은 허물어지고 독자 생존이 우선시되는 시대다. 이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정의란 무엇인가>로 널리 알려진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에서 그 원인을 찾아 나선다. 미국 건국 때부터 시작해 정치 철학의 발전 양상을 좇는데, 2차 세계대전 전후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진단한다. ‘케인스 경제학’이 미국의 주류 담론으로 떠오른 사건을 말한다.그전까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는 긴장 속에 공존했다. 케인스 경제학을 받아들이면서 오로지 경제가 중요해졌다. 미국 정치권의 논의는 어떤 정책을 펼쳤을 때 경제적 파이를 가장 크게 만들 수 있는지, 이를 분배하는 공평한 방법은 무엇인지와 같은 경제적 질문에 집중됐다. 샌델은 “새로운 정치경제학의 출현은 단지 경제학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 정치의 공화주의적 노선이 소멸하고 오늘날의 자유주의가 등장하는 변곡점의 순간이기도 했다”고 말한다.개인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국가는 서로 다른 견해 사이에서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여겨졌다. 어떤 공공선을 추구해야 하는지, 무엇이 바람직한 시민적 덕목인지에 대한 논의는 차츰 사라졌다. 자유도 좋지만, 한쪽으로의 지나친 쏠림은 문제를 일으킨다. 샌델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이 책은 1996년 펴낸 책의 개정판이다.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