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시꽃 피면 산불 끝' 옛말…"2100년까지 50% 증가" 비관 전망
전문가들 "나무도 거리두기 필요" 간벌, 혼효림 등 산림관리 강조
[동해안산불 1년] ⑤ 기후변화→산불→기후변화…산림 파괴 악순환
'전문가들은 2100년까지 산불 발생 건수가 50% 증가할 것이며 정부는 이를 대비하지 않는다고 경고한다.

'
지난해 2월 23일 유엔환경계획(UNEP)이 발표한 산불 보고서의 보도자료 제목은 전 세계가 산불 위험 증가에 직면해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UNEP는 "기후변화와 토지이용 변화로 산불이 더 빈번히 발생하고 강도도 세질 것"이라며 산불 발생 건수가 2030년까지 14%, 2050년까지 30%, 2100년까지 50% 증가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을 했다.

한반도 역시 기후 위기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갈수록 산림을 위협하고 있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아까시꽃 피는 5월 이후엔 산불이 나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다.

벚꽃이 필 때를 산불 발생 위험시기로, 아까시꽃이 필 때를 나무들이 물을 머금어 수분 함량이 많아지고 녹음이 본격적으로 우거져 산불 위험이 사라지는 시기로 본다는 데서 유래한 것이지만, 최근에는 속설이 깨지고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5∼6월 산불 발생 건수가 1990년 25건, 2010년대 84건, 최근 5년 87건으로 산불의 연중화가 심화하고 있다.

지난해 5월 31일부터 6월 5일까지 660㏊의 산림 피해를 낸 경남 밀양산불이 단적인 예다.

[동해안산불 1년] ⑤ 기후변화→산불→기후변화…산림 파괴 악순환
산림과학원이 지난 60년간(1960∼2020년) 기상관측 자료를 활용해 20년 단위로 산불 기상지수(습도, 온도, 풍속, 강수량을 활용해 산불 발생 위험도 점수화) 변화를 분석한 결과 봄·가을철 산불 발생 위험도 증가 경향과 함께 1월과 6월의 산불 위험도 증가 폭이 두드러졌다.

이는 매년 2∼5월과 11∼12월 중순으로 지정했던 산불 조심 기간이 초겨울이나 초여름까지 1∼2개월가량 더 늘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문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산불 위험이 커지고, 산불로 인해 방출되는 이산화탄소(CO₂)가 또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하는 '악순환'이다.

산림과학원이 산불피해지와 미 피해지를 조사한 결과 소나무 숲 100㎡가 산불로 탔을 때 이산화탄소 약 54t이 배출됐다.

이는 자동차 7대가 1년간 배출하는 양과 같다.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할 산림이 오히려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후변화에서 비롯된 산불이 다시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끊이질 않는 구조다.

산림이 타면 이산화탄소뿐만 아니라 메탄(CH₄), 일산화탄소(CO), 아산화질소(N2O), 질소화합물(NOx) 등 비이산화탄소(Non-CO₂) 온실가스도 배출하기 때문에 결국 대형산불 증가는 기후변화에 가속페달을 밟는 것과 같다.

[동해안산불 1년] ⑤ 기후변화→산불→기후변화…산림 파괴 악순환
이에 전문가들은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방안으로 "산림관리가 곧 산불관리"라고 입을 모은다.

권춘근 국립산림과학원 박사는 "산불이 확산하는 데는 지형, 기상, 연료 등 3가지 요소가 있고, 이 중에서 인간이 개입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연료뿐"이라며 "산불이 취약한 지역을 선별하고, 산불에 강한 숲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박사는 "밀집·밀접한 환경에서 코로나19가 빨리 확산하듯 나무가 빽빽하게 밀집돼있으면 산불이 빨리 확산한다"며 "나무도 거리두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더해 나무의 가지와 잎이 달린 수관부를 태우며 비화하는 불길을 일컫는 수관화(樹冠火)가 아닌 바닥에 있는 낙엽과 토양층을 태우면서 번지는 지표화(地表火)로 유도해야만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역설한다.

수직으로는 잔가지를 베어버림으로써 지표면으로부터 가지 위치를 높이고, 수평으로는 나무 솎아베기를 통해 나무 간 간격을 늘려야만 산불 예방 효과는 물론 건강한 숲 관리가 가능하다는 견해다.

산불에 강한 '내화수림'을 조성해야 한다는 점도 산불 예방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해결책이다.

[동해안산불 1년] ⑤ 기후변화→산불→기후변화…산림 파괴 악순환
이시영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초대형 산불이 2017∼2018년을 기점으로 빈도가 잦아지고 있다"며 "간벌과 가지치기를 통해 숲을 가꾸고, 산불에 취약한 소나무보다는 활엽수를 섞어서 심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지질이나 기후 특성이 활엽수 생육에 적합하지 않아 산림과학원이 2019년 강릉 옥계면 산불피해지에서 토양 개량 연구를 진행 중이며, 연구 결과에 따라 그동안 이론으로만 머무른 내화수림대 조성이 현실화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은 "기후 위기로 산불이 달라졌다는 걸 외국 이야기로만 생각했는데 2017년 동해안 산불을 계기로 우리 이야기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며 "이제는 꽃이 아닌 산불이 봄을 알리는 우울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서 전문위원은 "공무원들에게 외람된 말씀이지만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불면 다른 업무 내려놓고 산자락에 가서 대기하는 게 효과적이지 않나 하는 생각까지 든다"며 "사회 공동체 모두가 산불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