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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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서는 벨 에포크 시대의 영란은행에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이번에는 제1차 세계대전 동안의 영란은행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8세기 유럽은 57년의 전쟁과 43년의 평화를 경험했을 정도로 지속적인 전쟁을 겪었습니다. 이전에도 설명했지만 18세기 전쟁은 여러 유럽 정부들의 재정을 극단적으로 악화시켰습니다. 전쟁은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경제적으로 잔인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들어 전쟁의 경제성이 변화합니다. 프로이센을 격파한 나폴레옹은 1807년 틸지트 조약을 통해 자신이 지출한 전비를 프로이센이 배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결국 프로이센은 파산 직전에 이르게 됩니다.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독일제국은 1871년 프랑크푸르트 조약에서 사실상 프랑스 정부의 경제력을 파탄내며 독일이 지출한 전비에 이자까지 쳐서 받아냈습니다.

영국 또한 1차 아편전쟁 후 난징조약을 통해 막대한 배상금과 거대한 중국시장을 확보하였습니다. 2차 아편전쟁에서 승리한 후에는 천진, 북경조약을 통해 훨씬 더 많은 배상금과 구룡반도까지 받아냈습니다.

19세기 전쟁은 승리한다면, 돈이 되었습니다. 승전국의 입장에서 전쟁은 훌륭한 국책사업이었습니다. 물론 동시에 패배한 국가의 원한도 감내해야 했지만 말입니다. 1914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은 이전의 전쟁들과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행정력 발전으로 국가가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이 늘어났고 산업의 기계화를 통해 무기를 많이 그리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게 됩니다. 전쟁의 규모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되었고 당연히 더 많은 전비를 필요로 하였습니다. 이제 20세기의 전쟁은 패자는 물론 승자에게도 심각한 경제적 희생을 강요하게 됩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에 대항해 막대한 전비가 필요한 전쟁을 수행할 때 영국은 은행의 금반출을 금지하는 은행규제법을 실행했습니다. 금화 유통량이 급감해 야기될 수 있는 경기침체에 대비한 것입니다. 벨 에포크시대에 확립된 금본위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던 유럽 각국의 경제는 금보유량에 비례해 화폐를 발행할 수 있었습니다. 때문에 금보유량이 급감하면 화폐발행이 줄어들어 전비조달도 어려워지고 경기도 침체될 수 있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전쟁발발과 동시에 돈을 금으로 바꾸어주지 않는다는 금태환중단을 발표하고 금본위제를 포기합니다. 19세기 초 영국이 금반출을 금지했던 것과 같이 금보유량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프랑스는 국채를 발행해서 전비를 조달하기로 결정했고 독일은 마르크화를 찍어내서 전비를 조달합니다.

그런데 영란은행은 이와 다르게 금태환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대신 세금을 걷었습니다.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1919년 4월 파운드화 가치를 방어하는데 한계를 느낀 영란은행은 결국 금 수출금지 대열에 합류하게 됩니다. 그리고 프랑스, 독일과 마찬가지로 많은 화폐를 찍어냅니다.

금본위제를 사수하고 증세를 했던 영란은행의 노력은 전쟁을 통해 국가가 막대한 전비를 지출하고 나면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하이퍼 인플레이션과 경제침체에 대한 최소한의 대비였습니다. 이러한 영란은행의 노력은 금본위제 이탈 이전인 1918년 8월 이미 전쟁 종식 후 금본위제 복귀를 계획한데서도 나타납니다.

전비조달을 위해 세금을 더 걷는 것은 당장은 많이 아프지만 회복이 빠릅니다. 그러나 돈을 아주 많이 빌리거나 찍어내면 당장은 빠르게 자금조달이 가능하지만 회복이 힘듭니다. 프랑스와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심각한 경제위기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홍기훈 홍익대학교 경영대 교수, 메타버스금융랩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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