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작가 정서경, 소설가 서유미 등이 전하는 돌봄 이야기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는 법…신간 '돌봄과 작업'
"내게 아직 아이가 없었을 때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설마 그 아이를 내가 키우게 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설사 내가 키우게 되더라도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
영화 '헤어질 결심'(2022)을 쓴 시나리오 작가 정서경 얘기다.

그는 비교적 늦은 결혼 탓에 아이를 가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주중에는 부모님이 키워줄 거"라는 남편의 그럴듯한 제안과 '아이는 낳는 게 반'이라는 자신의 오만이 결합하면서 덜컥 아이를 낳아버렸다.

그 후 삶은 덜컥거렸다.

예상은 했지만 아이는 정말 끝없이 울었다.

"고요와 평화가 균형 잡혔던" 일상은 완전히 끝장나버렸다.

"이제 난 망했다.

짧게 잡아도 20년 정도는 망한 거야…아무도 울지 않는 조용한 집, 순철과 두 고양이. 다시는 그 삶으로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
실제로 그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일상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렇지만 또한 맹렬한 행복을 느꼈다고도 했다.

둘째를 가진 이유였다.

그는 그 이후의 삶에 대해 "나를 내주고 엄마라는 사람이 되었다"고 간략하게 소개했다.

그는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에게 모든 것을 주었고, 간혹 텅 빈 마음을 느꼈지만, 그 자리를 채운 건 역시 사랑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이를 키우며 그는 진짜 사랑을 느꼈고, 앞으로는 진짜 사랑이 아닌 것은 쓰고 싶지 않다고 결심했다.

정서경은 그 후 시나리오 인생에서 분기점이 된 '아가씨'(2016), '헤어질 결심' 등 로맨스 걸작을 잇달아 써냈다.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는 법…신간 '돌봄과 작업'
최근 출간된 에세이 '돌봄과 작업'(돌고래)에 나오는 얘기다.

책에는 소설가 서유미, 아티스트 전유진, 번역가 홍한별, 입양지원 실천가 이설아,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과 장하원, 미술사 연구자 박재연, 편집자 김희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이자 엄마라는 정체성을 또렷하게 의식하며 작업해온 이들이 쓴 글이 담겼다.

외동을 키우거나 아이 셋을 키우거나 직접 낳았거나 입양을 했거나, 아이 기질이 예민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파트너와의 관계가 협조적이거나 그렇지 않거나, 저자들이 처한 환경은 저마다 다르다.

그러나 열 한 명의 필자는 이 다양한 변수를 통과해 나름의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대해 나름의 책임을 지는 과정을 선보인다.

그렇게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다 보면 어느덧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고, 그 시간은 자신의 내면을 한층 단단하게 해준다.

또한 그런 시간의 힘은 일에도 투영된다.

소설가 서유미는 이렇게 말한다.

"아이는 열 살이 되었고, 나에게는 소설책 열 권과 에세이 한 권이 쌓였다.

그중 일곱 권은 아이의 임신과 출산 이후에 썼다…. (중략) 완성도 면에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아이가 자라는 동안 밤에 일어나 모유와 분유를 먹이고, 이유식을 만들어서 냉동실에 얼려두고, 아이를 재우려고 유아차에 태운 채 동네를 돌아다니고, 기저귀를 갈고 어린이용 반찬을 만드는 중에도 쓰는 일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
208쪽.
나를 잃지 않고 엄마가 되는 법…신간 '돌봄과 작업'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