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로 내한…"한국은 기적의 나라"
아민 말루프 작가 "대치하는 시대, 문학은 어느 때보다 중요"
"기술이 우리를 물리적으로 가깝게 했지만, 심리적으론 대치하는 세상에 살고 있죠. 지구 다른 편 사람을 알게 됐지만 편견의 시대에 사는 것이죠. 이런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이 문학이에요.

"
제11회 박경리문학상 수상자인 레바논 출신 프랑스 작가 아민 말루프는 1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문학은 타인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 분쟁이 계속되는 시대 속 문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기술 발전 시대에 사는 건 특권이지만, 정신적으론 한 세대에 뒤져있다"며 "서로 적개심을 느끼는 상황에 놓여 있고, 이는 우리가 겪는 현재의 문제다.

타인에 대해 더 깊이 알게 해주는 문학이 그 어느 시대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말루프는 그간의 작품을 통해 현대 문명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제시하며 문학이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고 그 자체가 문학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박경리문학상 심사위원회도 말루프를 올해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타자성의 포용을 통해 중심부와 주변부의 경계를 허물고자 평생 노력하고 이런 것들이 작품 속에 녹아있다"며 "현대의 폭력적 사태와 사고를 막기 위해 끊임없이 용서와 화해, 공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문학적 업적을 평가했다.

대표작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은 십자군 전쟁이 유럽인의 아랍세계 침략이란 시각을 넘어 서구와 아랍세계의 충돌에 관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1993년 프랑스 공쿠르상을 받은 '타니오스의 바위'는 레바논 민족의 수난 역사와 애환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말루프의 이 같은 문학적 관점은 그의 성장 배경이 영향을 미쳤다.

말루프는 1949년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태어났다.

노트르담 드 잼아워 대학과 세인트조셉대학에서 정치경제학 및 사회학을 전공했다.

1971~1976년 레바논 베이루트 일간지 '안-나하르'에서 기자로 활동했으며 레바논 내전으로 1976년 프랑스로 귀화한 뒤 프랑스에서 발행되는 아프리카 시사주간지 '죈 아프리크'에서 일했다.

그는 기자 출신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세계정세에 관심이 많았으며 혼돈의 지역에서 나고 자라 역사의 존재를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말루프는 "제가 나고 자란 레바논은 기회가 많은 나라였지만, 슬프게도 현실적으로 긍정적으로 풀리지 않았다"며 "1950~60년대엔 민주화 가도로 가고 있었지만 이후 10년은 끔찍하게 악화했고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했다.

한국은 어렵고 복잡한 상황에도 놀라운 걸 이뤄냈고, 기적적이라 생각한다.

레바논도 동일한 가능성이 이뤄지길 바라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아민 말루프 작가 "대치하는 시대, 문학은 어느 때보다 중요"
그는 또한 "지난 세기를 돌아볼 때 인간 갈등이 끝날 때면 미제를 남겼다"며 "1차 세계 대전의 미제가 2차 대전으로 이어졌고, 이후 미제로 인해 냉전이 시작됐다.

냉전의 시대에 가장 핫한 지역이 한반도였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현재 갈등은 인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무능력에서 기인한다"며 "인간은 단기적인 해결 방안에 만족하면 장기적인 해결 방안을 찾으려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장기적인 걸 보지 못하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이달 국내에는 그의 최근작인 '초대받지 않은 형제들'이 출간됐다.

기존 작품과 결이 다른 환상 문학적 경향을 띤다.

그는 "지난 몇 년간 세계가 재난 상태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반영됐다"며 "2~3년 전 이 작품을 집필할 땐 핵전쟁 위협이 높았던 시기이어서 기적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썼다.

기존 작품이 고대, 근현대사를 다룬 반면, 이 작품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인간이 등장하고 우리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역사를 다뤘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찾은 한국에 대해 "체류하면서 더 긍정적인 인상이 심어질 것 같다"며 "한국은 기적의 나라다.

1960년대 빈곤국에서 번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궁금하다.

아직 미해결 문제가 있지만 한국이 역사적인 고난을 극복하고 단기간에 최빈국에서 잘 사는 나라로 위상을 구축한 건 강력한 인상"이라고 말했다.

토지문화재단과 원주시가 주최하는 박경리문학상은 박경리(1926∼2008)의 문학정신을 기리고자 2011년 제정됐다.

세계 전역 소설가를 대상으로 문학 본연의 가치를 지키며 세계 문학사에 큰 영향을 미친 작가에게 수여한다.

초대 수상자 최인훈을 시작으로 루드밀라 울리츠카야(러시아), 메릴린 로빈슨(미국), 베른하르트 슐링크(독일), 아모스 오즈(이스라엘), 응구기 와 시옹오(케냐), 앤토니아 수전 바이어트(영국), 리처드 포드(미국), 이스마일 카다레(알바니아), 윤흥길(한국) 작가가 상을 받았다.

시상식은 13일 서울 송파구 시그니엘서울에서 열리며 15일 원주 백운아트홀에서 축하 공연, 17일 교보컨벤션홀에서 수상 작가 대담회가 마련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