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해 8월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 부지를 찾아 현황을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당시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가 지난해 8월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 부지를 찾아 현황을 살피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세종시에 대통령 제2 집무실과 국회의사당을 설치하는 것은 불가역적인 결정으로 되돌릴 수 없다. 법안도 다 통과됐다. 추진해야 한다”

선거 때마다 단골 공약으로 등장했던 ‘행정수도 이전’이 다시 관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국회의장단 초청 만찬에서 이같이 밝히면서 공약 이행 의지를 재확인했다. 대통령실은 최근 과천청사에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와 서울청사에 있는 여성가족부도 세종시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민의힘 지도부는 세종시 국회 세종의사당 예정 부지를 방문해 대통령 세종집무실 설치를 재차 약속했다.

실패로 끝난 박정희·노무현의 꿈

역사 교과서에서나 본 듯한 ‘천도(遷都)’ 논의는 반세기 넘게 이어져 왔다.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가 대전으로 행정수도를 옮기겠다고 한 1971년 처음 등장했다. 이후 1977년 2월 10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시 연두순시에서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 안보 차원에서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수도의 인구 집중 억제는 다른 정책도 수립해서 강력히 밀어야 하겠지만 결국은 통일될 때까지 임시 행정수도를 만들어 다른 데로 옮겨야겠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고 있는 하나의 구상”이라며 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백지계획’을 천명했다. 수도의 입지 조건으로 휴전선에서 평양보다 먼 거리인 70km 이남, 해안선으로부터 40km 떨어진 곳을 선택하도록 지시했는데 그 땅이 바로 공주시 장기면(현재 세종시)이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북한과의 대치 상황에서 수도 이전으로 국민 불안이 가중되자 이듬해 1월 18일 연두 기자회견에서 “한가지 확실히 해 둘 것은 임시 수도가 딴 곳으로 옮겨간다 해도 대한민국의 수도는 여전히 서울”이라며 “수도를 최후까지 사수하겠다는 우리의 결의는 변동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유사시에는 옮겼던 주요 기관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올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1979년 박 전 대통령의 서거로 무산됐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2년 10월 민자당 대선후보 시절 “11개 중앙행정기관을 대전으로 이전해 대전을 제2의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1993년 9월 대전 청사가 착공돼 1998년 병무청과 통계청 등이 이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96년 10월 30일 대전 지하철 1호선 기공식 연설에서 “이곳에 세워지고 있는 정부 제3 청사는 본격적인 ‘지방화 시대’를 열어가고자 하는 우리들의 의지를 상징한다”며 “정부의 행정기관이 옮겨지면 대전은 우리나라 제2의 행정수도 역할까지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수도권 집중 억제와 행정력 분산을 통한 지역 균형발전에 국정의 방점을 찍은 노무현 전 대통령은 더욱 강력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앙정부 18부 4처 3청 등 74개 기관을 이전하는 ‘신행정수도’를 건설하기로 한 것. 노 전 대통령은 2003년 11월 21일 ‘신행정수도 건설 특별법’ 등 관련 3법 국회 통과를 앞두고 “언제까지 수도권 과밀과 지방의 낙후된 현실을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결단을 내리고 실행에 옮길 때”라며 조속한 처리를 당부했다. 그러나 이듬해 헌법재판소가 수도 이전은 ‘서울이 수도’라는 관습헌법에 어긋난다며 위헌 결정을 내리면서 불발됐다.

결국 당초보다 축소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다시 추진, 2005년 3월 22일 ‘행정수도 건설을 결심하게 된 사연’이란 제목의 대국민 서신을 통해 “행정수도 이전 계획은 수도권 문제 해결을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고 호소했다. 그는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독재를 지지하진 않지만, 그분이 행정수도 이전을 시도한 것은 사리사욕이 아니라 국가 장래에 대한 지도자로서 안목을 가지고 한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한나라당 대권 주자들의 반대 공세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2007년 7월 20일 행정중심 복합도시 기공식에 참석, 발파 터치버튼을 누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다음 정부에서도 이들 정책이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과 부인 권양숙 여사가 2007년 7월 20일 행정중심 복합도시 기공식에 참석, 발파 터치버튼을 누르고 있다. 노 대통령은 축사를 통해 "다음 정부에서도 이들 정책이 흔들림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이명박 ‘세종시 수정안’ 뒤집은 박근혜

“수도 이전은 탱크를 동원해서라도 막겠다”며 신행정수도 건설을 강력히 반대했던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노 전 대통령의 서신에 “수도 분할은 국가 정체성과 통치의 근본을 쪼개는 것으로, 수도 이전보다 더 나쁘다”며 직격했다. 2년 뒤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세종시 건설의 전면 재검토를 선언, 세종시를 행정수도가 아닌 교육·과학 중심 도시로 수정하는 방안을 내놨다.

이 전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에 반발한 유한식 당시 충남 연기군수와 격한 설전이 생중계되면서 주목을 받기도 했다. 2009년 11월 27일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유 군수가 “하루아침에 약속을 파기하면 어느 국민이 대통령을 믿겠느냐”며 거세게 항의하자, 이 전 대통령은 “행정부처 9개가 옮겨졌다고 해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무엇이 주민을 위해 도움 될 것인가 냉철하게 생각하자”고 답하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의 수정안은 민주당은 물론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마저 강력히 반기를 들면서 부결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후보 시절부터 “세종시를 명실상부한 행정수도로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2018년 2월 1일 열린 ‘국가균형발전 비전과 전략 선포식’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국가균형발전의 엔진을 다시 힘차게 돌려야 한다. 우리 정부는 노무현 정부보다 더 발전된 국가균형발전 정책을 더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2018년 행정수도 이전 가능성을 열어두는 내용을 개헌안에 포함했지만, 야당 반대로 좌초됐다. 세종시에 청와대 제2 집무실을 설치하는 방안도 논의됐었으나 비용과 안보 공백을 이유로 포기했다.

서희연 기자 cub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