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봄날에 찾아온 우울증…신간 '부서진 우울의 말들'
에바 메이에르에게 우울증은 이런 막연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텅 빈 시간과 공간과 같은 것들이었다.
"생각의 둥지 속을 비집고 들어와서 건강한 다른 생각들을 밀어내는 생각들"이 이어졌고, 삶은 조금씩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우울증의 우물에서 빠져나오고자 예술에 탐닉하기도 했다.
그가 문학, 미술, 음악, 철학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하게 된 이유다.
그러나 예술이 답이 될 수는 없었다.
기껏해야 더 밝은 쪽으로 향하는 통로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최근 출간된 '부서진 우울의 말들 그리고 기록들'(까치)은 네덜란드 작가 메이에르가 우울증을 소재로 쓴 에세이다.
저자에 따르면 우울증은 열네 살 무렵, 따뜻하고 화창한 봄날에 저자를 찾아왔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보이지 않는 진구렁 속으로 깊이 빠져드는 것 같았다고 저자는 회상한다.
우울증 탓에 그는 학교를 자주 빠졌다.
당시 삶은 혼란스럽고, 제멋대로였으며 부조리했다.
한때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깊은 회의감에 허덕이기도 했다고 한다.
거식증으로 뼈가 튀어나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몸도 피폐해졌다.
어떤 노력을 기울여도, 그는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저 버티고, 견디는 방법밖에 없었다.
"후퇴가 최고의 전술이 될 수도 있고, 만약 재앙을 피할 수 없다면 끈기 있게 견뎌내야 한다"는 몽테뉴의 말을 되뇌면서 말이다.
일이 일어나면 그냥 받아들이고, 그저 시간에 의지하며 견딘다는 스토아 학파적인 삶의 태도가 그의 삶 속으로 스며들었다.
또한 그는 약물 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일을 계속하며 바쁜 일상을 영위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능한 한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이런 모든 방법이 우울증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저자는 말한다.
"모든 것은 곧 끝날 것이고, 당신은 본래의 것으로 흡수될 것이다.
그러니 지구에, 당신이 지나온 나날들에 의지하자. 내일은 다를 수도 있다.
"
김정은 옮김. 180쪽. 1만4천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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