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 사본 이용해 대포폰·대포통장 개설한 뒤 대출받아
"금융기관 엉터리 비대면 실명 인증 시스템 바뀌어야"
[OK!제보] "나도 모르는 새 수천만원 대출" 허술한 비대면 금융거래
대전에 사는 직장인 윤모 씨는 최근 4천500만원 상당의 대출 사기를 당한 뒤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자신의 명의로 알뜰폰이 개통됐다는 문자를 받은 뒤 이를 경찰에 신고하고 거래하던 은행을 통해 금융 정보를 확인해보니 이미 누군가 A 캐피탈사에서 윤씨 명의로 4천500만원을 대출받은 상태였다.

실상을 파악해보니 사기범은 윤 씨의 운전면허증 사본을 가지고 여러 개의 알뜰폰을 개통한 뒤 이를 이용해 B 은행에 윤 씨 명의로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A 캐피탈사에 대출을 신청하고서 B 은행 계좌를 통해 대출금을 취득한 것이다.

총 4천500만원의 대출금 가운데 600만원은 이미 인출됐고, 세 차례에 걸쳐 총 2천150만원이 윤씨가 모르는 타인 명의의 C 은행 계좌에 입금된 상태였다.

윤씨는 사기범이 돈을 더 인출해가는 것을 막기 위해 1천750만원이 남아있는 B 은행 계좌와 2천150만원이 입금된 C 은행계좌를 지급 정지시켰다.

하지만 윤 씨 사례가 보이스피싱에는 해당하지 않아 더 이상의 구제 조치는 해 줄 수 없다는 것이 은행 측 답변이었다.

윤씨 측은 "소송 외에는 별다른 해결방안이 없지만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상태라 승소 여부도 확실치 않고, 소송 비용과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납부해야 할 이자도 부담이 된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는 또 "은행에서 이렇게 본인 확인도 정확히 하지 않은 채 비대면으로 계좌를 개설해주고 대출해주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면서 "이런 피해를 막고 구제해 줄 법적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 이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비대면 금융거래가 활발해지는 가운데 금융사의 허술한 본인 확인 시스템을 악용한 금융 사기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비대면 거래를 통한 최근의 금융 사기는 유출된 신분증 사본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사기범들은 해킹이나 피싱, 도난당한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신분증 사본을 손에 넣은 뒤 비대면으로 대포폰을 개통한다.

그런 다음 이 대포폰과 신분증 사본을 이용해 대포통장을 개설한 뒤 피해자 명의로 대출을 받거나 무단으로 계좌에서 돈을 인출하는 수법이다.

이처럼 비대면 대출 사기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금융기관들의 비대면 실명 인증 시스템이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신분증 원본이 아니라 이를 촬영한 사본만 있어도 실명 인증 절차를 쉽게 통과할 수 있고, 심지어 분실 신고된 신분증으로 실명 인증 절차를 통과한 사기 사례도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현재 핀테크 시장에 신분증 원본 진위를 확인하는 시스템이 개발돼 있지만, 시중 5대 은행 중 이 시스템을 갖춘 모바일뱅킹은 현재 단 한 곳도 없다"면서 "시중은행, 저축은행뿐 아니라 캐피탈, 카드사, 보험사 등 금융업계 전반에서 엉터리 사본 인증 시스템만 제공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엉터리 비대면 실명확인 시스템을 방치해 금융사고를 낸 금융회사들은 적반하장으로 피해자들을 소송으로만 내몰고 있다"면서 "엉터리 신분증 사본 인증 시스템이 금융 사기 사고를 허용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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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