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 최종라운드가 열린 경기 포천 포천힐스CC의 8번홀(파4). 박민지(24)가 이 홀에 들어설 때만 해도 그의 우승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박지영(26)을 비롯한 2위 그룹을 4타 넘게 앞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민지의 짱짱한 실력과 단단한 멘탈을 감안할 때 추격자들이 이 정도 격차를 줄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하지만 243야드짜리 짧은 파4홀에서 박민지는 추격의 빌미를 내어줬다. 버디 또는 이글도 노려볼 수 있는 이 홀은 이번 대회 코스에서 가장 쉬운 홀로 평가된다. 하지만 여기서 박민지는 티샷을 벙커에 빠뜨렸다. 무사히 그린에 올렸지만 4m 버디퍼트를 놓치며 파로 마무리했다. 반면 박지영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티샷을 곧바로 그린에 올렸고 2퍼트로 버디를 잡아내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다. 8번홀에서 만든 좋은 흐름은 9번홀(파4)에서도 버디로 이어졌다. 박민지와 박지영의 양강구도가 굳어진 순간이다. 후반은 박지영의 시간이었다. 파 세이브로 이어가던 두 선수간 평행선을 먼저 깬 건 박지영이었다. 15번홀(파4)에서 5m 버디퍼트를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1타차까지 따라붙었다. 박지영의 추격은 박민지를 동요시켰다. 박민지는 16번홀(파3)에서 2m 파퍼트를 놓치며 보기를 기록해 박지영과 동타로 내려앉았다. 이어진 두 홀에서 두 선수 모두 타수를 줄이지 못하며 승부는 18번홀(파5) 연장으로 이어졌다. 먼저 웃은 것은 '어우박(어차피 우승은 박민지)' 박민지였다. 세번째 샷 어프로치가 다소 짧았지만 버디퍼트를 잡아내며 끝내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박지영은 버디퍼트에서 공이 홀을 스쳐가며 시즌 2승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신인 윤이나(19)는 최종라운드에서 2언더파 70타를 쳐 3위(11언더파 205타)에 시즌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디펜딩 챔피언 임진희(24)는 2타를 줄인 끝에 공동 6위(9언더파 207타)로 '포천힐스CC의 강자'임을 증명했다. 2라운드에서 단독 선두에 올라 생애 첫 우승의 기대에 부풀었던 서어진(21·9언더파 207타)은 이날 3타를 잃고 공동 6위로 밀렸다.포천힐스CC=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박민지(24)는 그동안 연장전을 네 차례 치렀다. 세 번 이겼고, 한 번 졌다. 박민지에게 유일하게 ‘연장 패배’를 안긴 대회가 2년 전 이맘때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BC카드·한경 레이디스컵’이었다. 당시 버디 기회를 잡았지만, 이글을 기록한 김지영(26)에게 밀렸다.26일 경기 포천시 포천힐스CC(파72)에서 열린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2022’ 최종 라운드 연장에 들어갔을 때, 박민지는 2년 전 연장 승부를 떠올렸을까. 상황은 그때와 비슷했다. 박민지는 3m 버디퍼트를, 박지영(26)은 2m 버디퍼트를 남겨놓은 상황. 결과는 반대였다. 박민지는 “‘이걸 넣지 못하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들어갔다”며 웃었다. ‘넘사벽’ 된 박민지박민지가 또다시 정상에 우뚝 섰다. 올 시즌 10개 대회에 나와 3승을 올렸다. 이런 속도라면 지난해 세운 한 시즌 최다승(6승)을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종합계 12언더파 204타를 친 뒤 연장 승부 끝에 우승한 그는 상금 1억4400만원을 추가하며 상금랭킹 1위(6억3803만원)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KLPGA투어 통산 13승으로, 김효주(27)와 함께 역대 공동 4위에 올랐다. 이 부문 1위는 20승을 거둔 고(故) 구옥희와 신지애(34)다. 첫 승을 거둔 뒤 13승을 쌓기까지 걸린 시간은 5년2개월10일로 김효주(9년5개월4일), 장하나(8년4일)를 능가한다.이제 박민지는 국내에선 그 누구도 ‘라이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 되고 있다. 상금왕(6억3803만원), 대상 포인트(351점), 다승왕(3승), 평균타수(69.9타·1위) 등 모든 타이틀이 그의 손에 있다. 세부적으로 그린적중률(78.9%·5위), 평균퍼팅(29.93타·19위), 드라이버 비거리(241야드·41위) 등 모든 분야에서 약점을 찾기 힘든 ‘올 라운드 플레이어’다. “근력은 여성 골퍼 상위 1%”박민지는 어떻게 ‘최강’이 됐을까. 전문가들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운동 선수 DNA’부터 꼽는다. 박민지의 어머니는 1984년 LA올림픽 핸드볼 은메달리스트인 김옥화 씨다. ‘몸을 쓰는 능력’을 박민지에게 물려준 사람이다. 자질만 내려준 게 아니었다. 강도 높은 운동으로 자질을 꽃피울 수 있도록 도왔다. 박민지는 비시즌 때도 매일 2시간가량 근력 운동을 한다. 골프 선수들의 근력 운동을 담당하는 팀 글로리어스 관계자는 “박민지는 여자 골프 선수 가운데 상위 1%의 체력과 근력을 갖고 있다”고 했다.박민지를 넘사벽으로 만든 두 번째 요인은 ‘강철 멘탈’이다. 연장전 승률(80%)이 말해준다. ‘승부사’ 김세영(29)의 연장전 승률(75%)보다 높다. 웬만한 선수들이 다 받는 멘탈 트레이닝을 안 받는데도 그렇다. 좋지 않은 기억은 빨리 잊고 눈앞의 목표에만 집중한다. 또 승부를 즐긴다. 박민지는 “연장전을 좋아한다. 연장에 가면 2등은 확보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끈기도 남다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국체대 축구 전공 대학생들과 똑같이 체력 훈련을 받았을 정도다. 박민지는 “매일 10㎞ 넘게 뛰었다”며 “그때 훈련량을 돌이켜보면 어떻게 해냈는지 저 스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라고 했다. 마지막 퍼즐은 적절한 휴식이다. 박민지는 “시즌이 끝나면 한 달 이상 클럽을 잡지 않는다”며 “스트레스 받을 때 맛있는 것 먹고 수다를 떨면 골프에 더 집중이 된다”고 말했다.한국 골프를 평정한 박민지는 다음달 21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 ‘에비앙 챔피언십’에 출전한다. 세계랭킹 18위 자격으로 나간다. 박민지는 “과거에 비해 LPGA투어 진출에 대해 전향적으로 바뀐 건 사실”이라며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포천힐스CC=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
26일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BC카드·한경레이디스컵 우승자 시상식에서 강춘자 한국여자프로골프투어(KLPGT) 대표(왼쪽부터), 최원석 BC카드 사장, 박민지, 김정호 한국경제신문 사장, 김철수 포천힐스CC 대표가 기념촬영하고 있다.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