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노동자'라 했으니…화물파업의 가려진 교훈 [여기는 논설실]
화물연대 파업으로 근로자 혹은 노동자란 무엇인가, 경제적으로, 법적으로, 사회·역사적으로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안팎으로 경제위기감이 고조되는 와중의 심각한 파업이어서 더욱 그렇다. 이런 근본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은 한국레미콘공업협동조합 등의 파업중단 하소연에 진중하게 귀 기울여볼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레미콘 업계도 다른 물류 분야와 더불어 이번 파업으로 적지 않은 피해를 입고 있다.

레미콘공업조합은 레미콘 운송 차주의 파업에 대해 ‘불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차주'여서 노동자가 아니라는 논리다. 그런 취지로 나온 법원 판례를 제시하며 고용노동부에 직접 조치도 촉구했다. 2006년 대법원, 2014년 울산지방법원 판례 등에서 레미콘 운송 차주는 근로자·노동조합원 지위가 아니라는 판결이 나왔고, 그에 따라 고용부도 2008~2009년 시정조치를 한 적이 있다는 주장이다. 파업으로 심각한 피해를 입은 레미콘 업계에서는 레미콘 차주 가운데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자금도 받은 사례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근로자가 갖는 파업권 행사는 부당하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운송 차주들은 민주노총 소속의 노조원이라고 맞선다.

차제에 최근 몇 년 새 부쩍 확대된 근로자 혹은 노동자의 법적 해석 범위가 어디까지 왔는지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총체적으로 ‘친노조’ 행보를 보였다는 평가는 받아온 문재인 정부 때 특히 그러했다. ‘노조 쪽으로 운동장이 심하게 기울어졌다’는 평가를 자주 들은 그대로 문 정부가 일련의 노조 프렌들리 정책 행보를 걸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동자·노동조합에 대한 해석과 정의, 외연의 확대는 이런 정책 기류에서 이뤄져왔다. 과거 같으면, 근로기준법 조항의 자구 그대로만 본다면, 노동자라고 보기 어려웠던 고용·노동시장의 틈새지대 종사자들이 상당부분 근로자가 된 것이다.

법적으로 근로자가 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권리가 커진다. 파업과 단체교섭권 같은 노동자 고유의 권한을 합법적으로 보장 받는 것은 물론, 고용보험이라는 사회보장제도의 틀 안에도 들어설 수 있다. 임금체제에서도 이점이 생긴다.

◆특고도 고용보험 적용 … 늘어나는 정부 예산 부담

근로자에 대한 정의와 법적 지위 확대는 세 갈래에 걸쳐 꾸준히 펼쳐졌다.

첫째, 정부의 친 노조 행보가 큰 요인이었다. 어떤 부문에서든 정부의 정책 기조는 중요할 수밖에 없다. 파급력이 크다. 근로자 범위가 넓어진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령,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줄여서 특수고용직, 더 줄여서 흔히 특고라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근로자가 된 게 오래되지 않았다. 특고는 회사와 근로계약이 아니라, 독립사업자 즉 자영업자로서 계약을 맺는 근로자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대리운전과 택배 기사, 방송연기자 같은 직종이다.

한 예로 2021년 하반기부터 특고의 12개 직종 종사자도 고용보험을 적용받고 있다. 대상 직종은 보험설계사, 신용카드 회원 모집인, 택배기사, 방문 판매원, 화물차주, 방과 후 학교 강사, 대출 모집인, 학습지 방문 강사, 교육 교구 방문 강사, 대여 제품 방문 점검원, 가전제품 배송·설치기사, 건설기계 조종사 등이다. 2022년부터는 퀵서비스나 대리운전 등 플랫폼 종사자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있다. 특고 종사자가 고용보험을 적용받으려면 계약 관계로 얻는 월 보수가 80만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과 만 65세 이하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그래도 고용보험은 사업주·고용주에게는 없는 근로자만의 특혜적 공적 보험이다. 이렇게 정부가 근로자의 범위를 넓혔다.

◆정부 주도에 법원, 플랫폼 산업계 등 기업도 가세

이런 기류에 맞춰 법원도 근로자의 범위 확장에 크게 기여해왔다. 쉽게 말해 웬만하면 노동자라고 인정해준 것이다. 정책기류의 영향이 컸겠지만, 법원 특유의 ‘언더 도그마 현상(약자는 대개 선하다는 편견)’ 탓이 컸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기업계도 특고 및 유사 종사자들을 많이 ‘껴안는’ 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함께 일하는 상대방에 대한 선의의 처우개선 의지와 노력이 무엇보다 컸을 것이다. 하지만 늘 정부 눈치를 보고 사회적 분위기도 고려해야 하는 게 한국 기업의 처지다. 속속 팽창하는 양대노총의 현실적 힘도 무서웠을 것이다. 근래 몇 년 동안 조합원 늘리기로 나타나는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세 팽창 경쟁은 밖에서도 여실히 보일 정도였다.

2020년10월6일 '플랫폼 노동 대안 마련을 위한 사회적 대화 포럼'의 배달 서비스 관련 협약식과 합의문 발표가 그런 사례다. 배달 플랫폼 기업과 배달 기사(라이더)가 배달 산업의 안전과 효율을 높이고 공정한 배달 서비스 운영을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인데, 양측 각각이 서로를 노사로 본 것이다. 자발적 협약을 통해 현행 노동법이 플랫폼 노동을 보호하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메우고 상설협의기구를 만들어서 정부에 법·제도 개선을 촉구하기로 했다는 등의 내용이 그때 명시됐다. 합의문에는 배달 서비스의 정의를 비롯해 플랫폼 노동과 노동조합의 정의, 공정한 계약 체결의 원칙, 작업 조건과 보상, 후속 과제 등 노사가 향후 준수해야 할 내용이 포괄적으로 담겼다. 그러면서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종합보험 등 배달라이더 안전망에 대한 제도 개선을 정부에 요청했다.

협약의 핵심은 배달 플랫폼 종사자에 대해 플랫폼 기업이 고용자 입장에 있음을 인정하고 종사자를 노동자(근로자)의 지위로 인정하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배달앱 배달의민족 라이더 같은 배달 플랫폼 종사자는 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했는데, 당시 협약에 참여하는 기업은 실질적 노사 관계임을 인정한 셈이다. 배달 플랫폼 종사자들이 노동 조건 개선을 위해 노동조합도 결성할 수 있으며, 기업은 이를 정식 노조로 인정해 단체교섭 주체로 존중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배달의 민족(우아한 형제들) 요기요(DH코리아) 스파이더크래프트 같은 기업이 여기에 참여했다.

◆'복지확대''근로 사각지대 줄이기' 명분 쫓은 대가 치러야

근로자들의 범위, 복잡다기한 현대 산업의 사각지대 종사자들을 근로자로 규정해 법적 보호를 강화하자는 취지는 좋다. 하지만 좋은 명분이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어려울 때 더 체감되기 마련이다. 복지도 형편을 봐가면서 하고,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과 같다. 정부 정책이 한쪽으로 급격히 쏠리고 균형점을 잃으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이전 정부의 거침없는 근로자 외연 확대가 다음 정부의 경제운용에 짐이 되고 있다. 그런 정책이 이뿐 이랴만….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