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칼럼] 민주당, '바보배'에서 탈출해야 산다
“바보라네, 슬기롭게 처신해야지 하면서/ 정도와 도리를 모르는 사람은/ 지혜롭게 살아야지 하면서/ 뻐꾸기를 가지고 매사냥에 나서는 격일세/ 하는 말은 지혜와 슬기가 철철 넘치는데/ 하는 행동은 바보쟁기를 끌고 있다네.”

르네상스 시대 독일의 인문주의자 제바스티안 브란트(1458~1521)가 쓴 《바보배(Das Narrenschiff)》의 한 구절이다. 자신의 영리함과 약삭빠름만 믿고 다른 사람의 조언을 무시하는 사람은 어리석다는 얘기다.

1494년 지금의 스위스 바젤에서 독일어로 처음 출간된 이 책은 풍자 산문시집이다. 책에는 수많은 바보들이 등장한다. 돈 많은 바보와 가난한 바보, 권력자, 술꾼과 노름꾼, 게으름뱅이, 매춘부, 사채업자, 악덕 사장 등 종류가 다양하다. 충언에는 귀를 막고 간언에는 솔깃한 바보, 이간질하는 바보, 진실에 입 다무는 바보도 있다.

저자는 110가지가 넘는 유형의 바보들을 배에 가득 태우고 어리석음의 풍랑이 몰아치는 세상의 바다를 지나 바보들의 천국인 ‘나라고니아’로 향한다. 설렘과 즐거움에 들뜬 승선자들은 쾌락의 노래를 합창하며 즐기다 배가 침몰하고 나서야 깨닫는다. 자신들이 추구했던 가치가 헛되고 부질없음을…. 가련한 바보들을 향한 풍자가 신랄하다. “무릇 세상의 쾌락에는 비참한 종말이 닥치니/ 바보들아 보아라, 어디에 닻을 내리게 될지.”
[토요칼럼] 민주당, '바보배'에서 탈출해야 산다
당대 유럽 전역의 베스트셀러였던 이 책에 등장하는 인간 군상은 현대인들과도 별반 다르지 않다. 광기와 비이성, 어리석음과 무능함, 탐욕과 무절제, 편견과 불통, 허세와 자아도취, 아첨과 이간질 등 인간의 어리석음은 동서고금을 관통한다.

나온 지 500년도 훨씬 넘은 이 책을 새삼 떠올리게 된 건 침몰 직전의 거대 야당을 보면서다. 브란트가 바보의 그물을 워낙 넓고 촘촘하게 쳐놓은 탓에 웬만한 바보들은 다 걸리게 돼 있지만, 어쩌면 이렇게도 콕콕 잘 짚어놨을까 싶을 정도다.

2017년 대선 이후 제7회 지방선거, 21대 총선에서 잇달아 압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올해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내리 3연패했다. 실패 원인은 여럿이지만 뭉뚱그려 말하자면 오만과 불통, 편 가르기기와 내로남불이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의 기치를 높이 올렸지만, 조국 사태에 이르러서 스텝이 꼬였다. ‘우리 편’에 대해서는 한없이 관대했고 어떤 비판도, 조언도, 고언도 통하지 않았다. 온 나라가 둘로 쪼개져도 개의치 않았다. 한쪽에선 ‘조국백서’를 냈고 반대쪽에선 ‘조국흑서’를 냈다. 불법의 증거가 드러나고 재판에서 유죄 판결이 나도 “내 편은 옳다”고 외쳤다. 바보배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저 혼자 옳다는 바보’라고 했다. 고집불통과 허세와 불화의 바보에도 해당할지 모르겠다.

이른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은 또 어땠나. 경제학의 기본원리도 모른다는 비판은 통하지 않았다. 부동산정책도 시장과 싸우면 안 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에 귀를 닫고 밀어붙였다. 원자력이 탄소중립에 불가결한데도 탈원전을 고집해 에너지 생태계를 망가뜨렸다. 상대편의 비판과 고언에 조금이라도 귀를 기울였다면 이렇게 됐을까.

부동산 임대차 3법,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법 개정 등 입법 폭주도 마찬가지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밀어붙였다. 2020년엔 연동형 비례대표를 위해 꼼수 위성정당을 만들었고, 2022년엔 꼼수 탈당과 시간 쪼개기로 검수완박법을 해치웠다. 이제는 21대 국회 후반기 원 구성을 놓고 약속과 달리 법제사법위원장을 못 내놓겠다고 우기고 있다.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한 것이 이른바 ‘문빠’ ‘개딸’ 등등의 팬덤 정치다. 팬덤의 애정과 지지는 무조건적이다. 그래서 비민주적이다. 비판은 절대 불용이다. 우리 편이 아니면 좌표를 찍고 ‘닥공’으로 초토화한다. 말은 거칠어지고, 문자 폭탄에는 증오가 넘쳐난다. 이들 강성 지지층에 기댄 정치는 그 어떤 변화도, 이견도 수용하기 어렵다. 그 결과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그대로다.

브란트는 《바보배》에서 “권력이란 마르고 닳도록 지속하는 줄 알지만 봄볕에 눈 녹듯이 스르르 사라지고 마네”라며 “권력과 행복을 누리는 건 기껏해야 한순간”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바보들의 유토피아 나라고니아로 갈 것인가. 침몰할 때까지 바보배에서 쾌락의 노래를 합창할 것인가. 지금이라도 얼른 배에서 탈출해 생존을 모색할 것인가.

선거 패배 책임을 놓고 ‘네 탓이오’ 공방하는 이들에게 브란트가 귀띔한다. “폭풍과 뇌우가 몰려오는/바다 한복판에서/내 편 네 편 갈라서 서로 다투다가/ 항해를 마치기도 전에/ 배를 침몰시키는 /선원들처럼 행동하지 말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