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빈 필하모닉이 연주한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 4악장.

새해가 다가오면 많은 직장인들이 달력을 넘기며 세어보는 것이 있습니다. 빨간 날의 숫자죠. 빨간 날을 유독 발견하기 어려운 해엔 직장인의 한숨도 커집니다.

평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며칠 휴가를 내고 푹 쉬면서 기분 전환을 한다면 힘이 불끈 날 것 같은데요. 하지만 “휴가 좀 보내주세요!”라고 상사에게 얘기하기엔 눈치가 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음악으로 당당히 외친 음악가가 있습니다. '교향곡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전주의 음악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1732~1809)입니다. 굉장히 오래 전 시대를 살았던 음악가다 보니 왠지 거리감을 느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하이든의 음악과 행동은 친근하기만 합니다.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이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위 영상을 먼저 보실까요. 하이든의 '고별 교향곡' 4악장입니다. 이 곡을 한참 동안 같이 연주하던 단원들이 갑자기 하나둘씩 자리를 뜹니다. 그리고 지휘자만 남겨 두고 모두 사라지죠.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요.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이끄는 악단의 부악장이었습니다. 당시 음악가들은 자신의 후원자에 소속돼 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는 악단의 부악장이었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음악감독의 일을 맡고 있었습니다. 지휘부터 악단 관리, 작곡까지 하이든이 했죠.

에스테르하지 후작은 음악을 매우 사랑해서 악단의 연주를 자주 감상했는데요. 그러던 중 어느 해 여름, 후작은 본궁을 떠나 별궁에 머물며 휴가를 보내게 됐습니다. 그리고 휴가 내내 악단을 불러 매일 연주를 하게 했죠. 후작 본인에겐 즐거운 휴가였겠지만, 단원들은 여름 내내 가족들도 보지 못하고 연주를 해야 해서 정말 괴로운 나날들이었습니다. 하이든은 이런 단원들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고별 교향곡'입니다. 대부분의 교향곡은 빠르고 웅장하게 마무리 되는데요. 그는 일부러 느린 부분을 추가했고, 그 부분에서 단원들이 하나둘씩 퇴장하게 했습니다. "휴가 좀 가게 해주세요"라는 말을 대신한 거죠.

이를 본 후작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음악에 담긴 메시지를 포착한 후작은 다행히 화를 내지 않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본궁으로 돌아갔습니다. 덕분에 단원들은 마음 편히 휴가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하이든의 재치와 품격이 돋보이는 일화죠. 단원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줄 알았던 섬세한 리더십에도 감탄이 나옵니다.

트럼페터 다비드 엥코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 '장학퀴즈'의 시그널송과 '오징어 게임'의 기상음악으로 사용됐다.

하이든은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목수 아버지, 요리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음악을 전문적으로 하는 분들은 아니었지만, 평소 많은 음악을 즐겼습니다. 덕분에 하이든도 음악을 어릴 때부터 접하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하이든은 처음엔 성악가가 되는 듯 했습니다. 8살에 성 슈테판 대성당의 성가대 단원이 돼서 9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17살 사춘기에 접어들며 변성기가 찾아왔고, 성가대는 그런 하이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내보냈습니다.

하이든은 갑작스러운 위기에도 침착하게 음악 공부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재능 있는 그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많았죠. 덕분에 그는 모르친 백작의 가문에서 음악감독으로 일하게 됐습니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나서 그는 작곡을 본격 시작했습니다. 교향곡도 쓰며 '교향곡의 아버지'로서의 첫 발을 뗐죠.

그리고 29살이 되던 해 하이든의 음악 인생이 꽃 피기 시작합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가문으로 자리를 옮겨 든든한 재정적 후원을 받게 된 겁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가문이었던 만큼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대거 고용해 음악의 수준을 높이려 했죠. 하이든은 30년이나 이 악단을 이끌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했습니다.

하이든의 작품들은 오늘날 듣기에도 개성이 넘칩니다. EBS '장학퀴즈'에서 항상 울려 퍼지던 경쾌한 시그널 송을 기억하시나요. 그 곡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 3악장입니다. 이 음악은 최신 한 드라마에도 나와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겼는데요. 전 세계를 사로잡은 '오징어 게임'에서 456명의 참가자들을 깨우는 기상 음악으로 사용됐죠.

마리스 얀손스가 지휘하고 베를린 필하모닉이 연주한 하이든의 '놀람 교향곡' 2악장.

그의 '놀람 교향곡'도 많은 분들이 즐겨듣고 좋아하시는데요. 조용히 연주가 이어지다 갑자기 '빰' 하고 큰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야말로 청중들을 '놀라게 하는' 작품이죠. 연주 내내 긴장하며 그 순간을 기다리다, 큰 소리가 울려 퍼지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하이든은 이 곡을 비롯해 총 104편에 이르는 교향곡을 작곡했습니다.

하이든은 다양한 음악 영역에도 도전했습니다. 두 대의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함께 어울려 아름다운 선율을 빚어내는 현악 4중주를 개척하고 발전시켰습니다. 오라토리오(대규모의 종교적 극음악) '천지창조' '사계' 등도 만들었죠.

덕분에 하이든의 유명세는 갈수록 높아졌습니다. 오스트리아뿐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영국 등 전 유럽에 이름을 알렸죠. 그리고 그는 평생 뛰어난 음악가로서 큰 사랑을 받았고, 77세가 되던 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이든의 삶은 이처럼 대체로 평탄했습니다. 그런데 사후엔 정말 기괴한 일을 겪게 됐습니다. 죽은 그의 머리가 사라지는 사건이 벌어진 겁니다.

하이든은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를 침공해 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세상을 떠났는데요. 전쟁 때문에 그는 급히 빈의 한 묘지에 안장됐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에스테르하지 가문은 하이든을 자신들의 가문 묘지로 옮겨 오고 싶어 했죠. 그래서 이장을 하게 됐는데, 그 과정에서 하이든의 머리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겁니다. 갑자기 머리가 없어졌다니 정말 놀랍죠.

범인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서기, 그리고 그와 손을 잡은 한 형무소장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 유행하던 '골상학(두개골 형태를 통해 사람의 성격과 지능 등의 특성을 연구하는 학문)'에 빠져 있었습니다. 음악 천재 하이든의 머릿속을 알고 싶어 이런 일을 벌였던 겁니다.

그런데 범인들을 잡은 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이 머리를 누군가에게 팔아버려 행방을 알 수 없었던 거죠. 정말 흉측하고 엽기적인 일인데요. 여기서 그 시대 사람들이 하이든을 신기하게 생각하고, 굉장히 높게 평가했다는 점을 알 수 있긴 합니다.

그리고 하이든이 세상을 떠난 지 145년이 흐른 1954년에야 머리와 몸은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에스테르하지 가문이 끈질기게 이를 추적해 하이든에게 안식을 되찾아 준겁니다. 오늘은 하이든의 음악을 들으며 그를 기리고, 하이든의 놀라운 천재성도 다시 한번 느껴보시는 게 어떨까요.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