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진의 바이오 뷰] 과학자(科學者), 과학자(過學者), 과학자(果學者)
과학의 사전적인 뜻은 ‘보편적인 진리나 법칙의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 넓은 뜻으로는 학(學)을 이르고, 좁은 뜻으로는 자연과학을 이른다’이다. 과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 주로 자연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은 과학자라 한다.

‘과학’ 하면 떠오르거나 기대되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숫자로 정량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크기, 길이, 무게, 시간 등등 모든 변수를 수치화해 통계적으로 처리해 비교하고 해석해 보여준다.

이유는 단순하다. 공정함과 객관성, 정직함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과학적으로 관찰되거나 실험에 의해서 나온 결과를 표시하고 설명하고 이해하고 분석하여 나오는 결과는 과학자들의 인종, 종교, 문화, 교육적 배경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일정하고 지식과 경험을 갖춘 과학자들 사이에서 인정되는 범위의 결론에 이를 수 있게 함이다.

객관적인 연구 결과 도출, 꾸준한 소통… 과학자의 필요조건
과학의 생명은 객관성과 재현성, 그리고 정직함 혹은 진실함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지나치거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관찰하고 발명하거나 고안하고, 가설이나 이론을 만드는 것은 과학자의 천재성이나 기발함에 달려 있다.

하지만 도출되는 결론이나 이의 설명은 객관적 이어야 하고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일상생활에 응용,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주관적이고 유연한 결론보다는 정해진 틀과 합의된 잣대로 재고 비교하여 도출된 결론임을 대중이 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과학자의 첫 번째 임무인 연구에서는 정직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

과학자의 두 번째 임무라고 할 수 있는 바깥 세상과의 소통에서는 어떨까. 여기서 말하는 소통은 몇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하나는 자신의 연구실이나 기관을 벗어나 다른 연구실이나 기관과의 소통으로 여러 형태의 세미나나 심포지엄 혹은 학회에서 연구결과 발표를 통한 학계나 산업계와의 소통이 있다.

또 비전문집 단인 사회와의 소통으로 연구결과를 사회에 알리거나 바이오산업계의 경우 투자기관이나 소액주주를 포함한 투자자들에게 개발의 진행 상황이나 결과 등을 알리는 것이다. 회사의 가치가, 자연스럽게 투자 지분의 가치가 기대에 부응하는 수준으로 올랐다는 것을 알려 추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행위다.

필자가 꾸준하게 전달하려는 메시지 중 하나는 바이오산업, 그중에서도 신약 개발 분야는 얼마나 성공하기가 어려운 도전인지를 알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투자자들이 성공이나 실패 소식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기다려주는 성숙함과 함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고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주기를 부탁해왔다.

이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왜 바이오산업의 번창과 진정한 글로벌 바이오 회사의 탄생에 중요하고 결정적인지 이해를 구해보자.

대중과 소통, 재현 가능한 데이터 위주로 알려야 신뢰 구축 가능해
연구자가 학회에서 연구 결과를 발표하거나 전문 저널에 논문을 발간하는 것은 자신의 업적을 전문가에게 검증받고 토의를 통해 평가를 받음으로써 과학계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가치를 인정받는 의미가 있다. 또 이를 바탕으로 과학계에서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동호 세력을 구축하고 지원을 받아 연구의 지속과 확대를 도모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과학계와의 소통은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도출된 데이터와 이를 근간으로 세워진 가설이나 이론을 매개로 이뤄진다. 소통하는 전문 과학자 집단에 의해서 지나치게 도약되거나 과장된 결론이나 목표, 결과 예측은 철저하게 비판되고 정정을 요구받는다.

따라서 어떤 면에서는 과학자는 학계의 검증과 자정 시스템에 의해 감시를 받는 동시에 보호받을 수 있다.

그런데 소통의 대상이 전문인력이나 학계가 아닐 때는 어떨까. 바이오 기업이 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기업설명회(IR)나 언론을 통한 홍보 활동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과학적이고 학문적인 심도가 있는 내용보다는 일반인이 쉽게 이해하고 궁금해할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주어서 기업의 현재 가치와 기대되는 미래의 가능성을 알리려는 의도가 있다.

자연스럽게 과학자는 현재까지 진행된 개발 진도를 발표하고 도출된 데이터를 해석할 때 가능한 긍정적인 입지를 견지하려고 노력하며 이를 바탕으로 예측되는 결과와 결론에 조금의 과장과 높은 희망을 실어서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고 드물지 않게 투자자의 원성을 사거나 신뢰가 무너지는 일이 발생한다. 가장 중요한 감시나 검증 시스템을 건너뛰기 때문이다. 철저한 검토와 토의를 거치는 학계 시스템에서 결과물의 가치는 데이터에 대한 신뢰도에 달려 있고 이는 데이터의 재현성과 설정된 가설과 이론의 높은 실용화율로 평가된다.

즉 철저한 재현실험과 검증실험을 통해 결과물이 우연히 도출된 것이 아니며 다른 전문인력에 의해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데이터가 생산돼 세워진 가설과 이론으로 무리 없이 설명할 수 있음이 증명돼야 한다.

반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소통, 특히 그 목적이 현재와 미래의 기업의 가치를 최대한 높게 받아야 하는 것이고 기존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기업가치 상승을 충분하게 느끼게 해 주는 것이라면 과학자들은 어쩔 수 없이 과학적으로 지켜야 할 선을 넘어 경제학적으로 필요한 수위의 소통을 할 수밖에 없다.

특히 투자자나 사회에서의 기대치나 요구사항이 클수록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과학적 상식선에서 더 많이 벗어나는 내용의 소통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잘못하면 재현성이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를 발표하고 무리한 가설과 이론을 만들어내 후속 데이터의 도출이 불발되고 회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과들이 점점 더 많이 생산되게 된다. 당연히 비현실적이고 달성하기 힘든 미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심어주기 위한 과도한 소통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더욱 위험한 것은 바이오 분야에서 흔히 경험하는 실패를 인정하고 개선하는 것이 두려워지는 것이다. 지나치고 근거가 희박한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하는 과학자(過學者)가 되는 것이다.

바이오 분야, 특히 신약 개발은 실패와 좌절이 익숙한 무한경쟁의 소리 없는 전쟁터다. 단기적이고 시류와 유행에 편승한 위태로운 줄타기보다는 꾸준하고 변함없이 정직하게 연구하고 개발하는 우직한 과학자가 승자가 된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해도 열심히 농사를 지어 열매를 맺게 하고 그 열매의 향기와 맛을 사회에 나누어주는 과학자(果學者)가 탄생하고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과제다.
<저자 소개>
[김선진의 바이오 뷰] 과학자(科學者), 과학자(過學者), 과학자(果學者)
김선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취득한 비뇨기과 전문의다. 일본국립암연구소의 초빙연구원을 거쳐 미국 MD앤더슨 암센터 교수로 근무했다. 한미약품 부사장을 역임하고 플랫바이오를 설립했다. 중개연구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으로 미국암연구학회(AACR) 학술상을 수상했다.


*이 글은 <한경바이오인사이트> 매거진 2021년 12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