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이 아이디어를 내면 조직원은 박수를 친다. 아이디어가 좋고 참신하다고. 한데 솔직히 아이디어보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로 박수치는 사람이 더 많다. 그 예의에는 두려움이 끼어 있다. 밉보이면 밥줄이 끊길 수도 있다는. 우리는 흔히 누군가를 ‘사람’보다 ‘그가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 세상에 ‘남의 것’을 빌려서 주인행세하려는 자들이 늘어나는 이유다.

전국시대 초나라에 소해휼이라는 재상이 있었다. 북방의 나라들이 그를 몹시 두려워했다. 초나라 선왕은 이웃 나라들이 그를 그렇게 두려워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느 날 강을(江乙)이라는 신하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북방 국가들이 어찌 소해휼을 그리 두려워하는가?”

강을이 말했다. “전하,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호랑이가 여우 한 마리를 잡았습니다. 잡아 먹히려는 순간 여우가 말했습니다. ‘잠깐 기다리게나. 천제(天帝)께서 나를 모든 짐승의 왕으로 임명하셨네. 거짓이다 싶으면 나를 따라와 보시게. 모두 내가 두려워 달아날 테니.’ 호랑이는 여우 뒤를 따라갔습니다. 과연 여우의 말대로 모든 짐승들이 놀라 달아났습니다. 사실 짐승들은 여우 뒤의 자신을 보고 달아났지만 정작 호랑이는 그걸 깨닫지 못했습니다. 북방 국가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실은 소해휼의 뒤에 있는 초나라의 막강한 군세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전한의 유향이 전국시대 책략가를 엮은 ≪전국책≫에 나오는 얘기로, 여우(狐)가 호랑이(虎)의 위세(威)를 빌려(假) 호기를 부린다는 호가호위(狐假虎威)는 여기에서 유래했다. 남의 위세를 마치 자기 것인 양 훔쳐다 쓰는 게 어디 여우뿐이 겠는가. 입만 열면 인맥과시로 이야기를 채우는 사람, 틈만 나면 자기자랑을 촘촘히 끼어넣는 사람…. 모두 ‘내’가 아닌 ‘내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고자 하는 자들이다.

재물·권력·명예·지식, 그게 뭐든 자랑삼아 내보이지 마라. 자긍과 자존은 안으로 품을 때 더 빛이 나는 법이다. “공작은 사람들 앞에서 그 화려한 꼬리깃털을 감춘다. 그게 공작의 자긍이다.” 니체가 ≪선악을 넘어서≫에서 한 말이다. 내보이는 데 급급하면 자칫 남의 것까지 훔친다. 한데 훔친 것을 오래 쓰면 그게 원래 내 것인 양 착각한다. 남의 위세를 빌려 목에 힘주는 것만큼 꼴불견도 없다.
신동열 한경닷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