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와 그를 변호하는 강한 신념의 변호사. 이들에 의해 쿠바의 미군 기지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행해진 충격적인 고문 실태가 드러난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은폐된 진실…영화 '모리타니안'
서아프리카 모리타니 공화국에 살고 있던 '슬라히'(타하르 라힘)는 빈 라덴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사촌의 전화를 받았다는 이유로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되고, 어디론가 끌려간다.

여러 수용소를 거쳐 그가 머무르게 된 곳은 악명 높은 관타나모 수용소. 이곳에서 그는 어떤 혐의로도 기소되지 않고, 재판 한번 받지 못한 채 수년간 수감생활을 한다.

가족들은 그의 생존 여부조차 알 수 없지만, 살인자, 강간범은 물론 테러범에게도 변론권이 있다고 믿는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슬라히의 변호를 맡게 되고 진실에 조금씩 다가간다.

여기에 더해 슬라히의 유죄를 확신하고 사형을 구형하기 위해 증거를 수집하던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 역시 은폐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은폐된 진실…영화 '모리타니안'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증언록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이 책은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실존 인물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의 저서로, 미국 정부가 은폐해왔던 진실을 세상에 알리며 충격을 줬다.

슬라히는 석방 이후 고향인 모리타니 공화국으로 돌아가 생활하고 있다.

영화는 슬라히의 결백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가혹행위를 당한 그가 분노가 아닌 신에 대한 믿음과 인간애로 지옥 같은 시간을 버텨냈다는 점을 보여준다.

영화 속 슬라히는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는 간수들과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고, 자신을 변호하겠다는 낸시에 대한 믿음을 갖는다.

얼굴을 볼 수 없는 수용소 동료에게도 용기를 불어넣는다.

이런 슬라히의 모습은 그를 단순한 희생자가 아닌 용기와 사랑을 가진 인간으로서 바라보게 만든다.

영화의 제작자이기도 한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슬라히는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용서하며 스스로 더 강해졌다.

그의 모습이 '인간'으로서 좋은 예시가 됐다고 생각한다"고 영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은폐된 진실…영화 '모리타니안'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극적인 구조를 띠기보다는 슬라히의 수감소 생활을 시간순으로 따라간다.

기본적인 형식은 법정 드라마지만,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논쟁보다는 다큐멘터리처럼 인물들의 행동과 선택을 지켜보는 데 공을 들인다.

고문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보다는 시각 효과와 음향 효과를 이용해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이뤄진 충격적인 만행들을 드러낸다.

잠을 재우지 않고, 신체적 한계에 다다를 때까지 구부정한 자세로 서 있도록 하는 고문부터 가족을 이용한 협박, 강제 성교 등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벌어졌던 고문 형태를 나열한다.

고문 장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데도 관객은 슬라히의 고통을 그대로 느끼게 된다.

무엇보다 낸시를 연기한 조디 포스터의 카리스마가 압도적이다.

그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과 같은 이 사건에서 한 치의 물러섬도 없는 변호사의 모습을 완벽하게 구현해낸다.

신념을 갖고 일을 밀어붙이는 박력은 물론 꼿꼿한 자세로 침착하게 문서를 읽어 내려가는 침착함까지 그는 등장할 때마다 극에 무게감을 더한다.

관타나모 수용소의 은폐된 진실…영화 '모리타니안'
영화 특성상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비롯해 체격이 큰 군인들이 주로 등장하는데도 키 160㎝의 조디 포스터는 전혀 왜소해 보이지 않는다.

그의 대사나 몸짓은 큰 소리를 내거나 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데도 강렬한 힘을 뿜어낸다.

백발의 단발머리에 짙은 립스틱을 바른 조디 포스터는 모습은 누구도 감히 쉽게 대항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조디 포스터는 이번 영화로 한인 2세인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거머쥐기도 했다.

다음 달 열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미나리'에 출연한 윤여정과 여우조연상을 두고 경쟁할 것으로 점쳐진다.

그는 앞서 '피고인'(1988)과 '양들의 침묵'(1991)으로 두 차례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바 있다.

오는 17일 개봉.
관타나모 수용소의 은폐된 진실…영화 '모리타니안'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