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전훈은 단순한 휴식이 아닌 재충천의 시간"
"베트남에서 손흥민 모르는 사람 없어…자랑스러운 후배"
쉼표 없는 도전자 박항서 "지난 일은 추억…도전은 감독의 인생"
"1년만 버텨보자고 했던 게 여기까지 왔네요.

지난 일들은 추억일 뿐이죠.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감독의 인생이니까요.

"
베트남 축구의 역사는 이제 박항서(60) 감독 부임 이전과 이후로 양분되게 됐다.

2017년 10월 박항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이후 베트남 축구 역사에 수많은 이정표가 세워졌다.

2018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역대 처음으로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지난해 12월에는 10년 만에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 우승에 성공하더니 이번 달에는 베트남 축구 역사상 60년 만에 동남아시안게임(SEA) 정상에 오르는 쾌거까지 달성했다.

베트남 축구 역사를 매번 새롭게 바꾸는 박 감독은 베트남의 '국민 영웅'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가운데 박 감독은 동남아시안게임을 끝낸 뒤 선수들을 이끌고 14~22일까지 일정으로 통영 전지훈련에 나섰다.

지친 선수들에게 분위기 전환과 재충전의 기회도 주고 내년 1월 태국에서 열리는 2019 AFC U-23 챔피언십 준비가 이번 전지훈련의 목표다.

박 감독은 17일 통영실내체육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동남아시안게임을 마치고 선수들의 체력 회복과 부상 치료를 위해 통영을 찾았다"라며 "항상 베트남 선수들을 환영해주는 팬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 감독과 일문일답.
쉼표 없는 도전자 박항서 "지난 일은 추억…도전은 감독의 인생"
-- 경남FC 감독을 맡았던 이후 오랜만에 통영에 온 소감은.
▲ 경남FC 초대 감독을 지낸 뒤 전남 드래곤즈와 상주 상무 등을 지휘하면서 전지훈련으로 통영을 자주 찾았다.

경상남도 산청이 고향이다.

한국에 온 게 기쁘다.

베트남 선수들을 환영해주신 팬들에게 감사드린다.

-- 전지훈련지로 통영을 선택한 이유는.
▲ 베트남 U-23 대표팀이 최근 끝난 동남아시아의 올림픽이라고 불리는 '동남아시안게임'(SEA)에서 60년 만에 남자 축구 우승을 해냈다.

대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부상 선수들도 있어서 체력 회복과 부상 치료 차원에서 통영을 전지훈련지로 선택했다.

선수들도 재충전이 필요한 때다.

한국은 저의 고국인 만큼 내년 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을 준비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어서 추운 날씨지만 통영에 왔다.

동남아시아축구도 최근 급성장하고 있다.

아직 동북아시아 팀들과 간격은 있지만 모두 '탈(脫)동남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이번 전지훈련은 휴식의 의미가 큰가.

▲ 제가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함께 맡고 있다.

동남아시안게임 준비 기간이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과 겹쳐서 그동안 U-23 대표팀에 신경을 많이 못 썼다.

AFC U-23 챔피언십은 엔트리가 23명이다.

필드 플레이어 25명과 골키퍼 3명을 데리고 왔다.

출전 기회를 덜 받았던 선수들은 정상 훈련을 치르고, 부상이 있는 선수들은 회복 훈련에 집중할 것이다.

선수들을 A, B, C 그룹으로 나누어 훈련할 예정이다.

-- 올 한해를 돌아보면 어떤 느낌인가.

▲ 처음 베트남에 갔을 때는 '1년만 버텨보자'는 생각이었다.

1년을 버티고 나니까 계약 기간을 채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2018년이 끝날 즈음에는 '2019년은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올해 많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 일들은 추억일 뿐이다.

다시 도전해야 한다.

이것이 축구 감독의 인생이다.

-- 축구 철학은 어떤 것인가.

▲ 깊은 축구 철학이 있었으면 3부리그 팀을 맡다가 베트남에 갔겠는가(웃음). 선수들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데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베트남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목표를 이뤘다는 것은 좋은 선수를 만났기에 가능했다.

선수들도 감독을 믿고 따라와 줬다.

이영진 코치, 김한윤 코치 등 한국인 코치를 비롯해 베트남인 코치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좋은 코치들은 만난 것도 행운이다.

-- AFC U-23 챔피언십에서 8강에 진출하면 한국과 만날 가능성이 있는데.
▲ 우리는 조별리그 통과가 우선이다.

목표가 조별리그 통과다.

한국은 당연히 조 1위를 차지할 것이다.

같이 조 1위를 하면 8강에서 안 만날 수도 있다(웃음).
쉼표 없는 도전자 박항서 "지난 일은 추억…도전은 감독의 인생"
-- 신태용 감독이 인도네시아 대표팀을 맡을 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 신 감독은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다.

너무 많이 재는 것 같다(웃음). 감독은 1년 이상 쉬면 현장 감각이 떨어지는 만큼 빨리 복귀해야 한다고 조언했었다.

동남아시아 팀이든 중국 팀이든 타국에서 감독을 하는 게 쉽지 않다.

언어와 관습이 너무 다르다.

스스로 잘 판단해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곳을 찾아야 한다.

연봉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

-- 휴식을 취한다고 했는데 선수들과 통영도 둘러볼 생각인가.

▲ 휴식한다고 하니까 놀러 왔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절대 아니다.

재충전을 위해 통영에 온 것이다.

선수들도 고단백 음식의 섭취가 필요한 시점이다.

식단 문제는 의무팀에서 피지컬 코치와 관리한다.

이번 전지훈련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선수들을 위한 스트레스 해소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나도 그런 점을 잠시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내가 베트남에서 축구 감독을 하는 것에 대한 관심도 있을 것이다.

베트남 축구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기술적으로는 한국보다는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선수들은 패배 의식에 대한 '헝그리 정신'이 강하다.

그라운드에서 강하게 싸우려는 전투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 모습들이 한국의 기성세대들이 볼 때는 몇십년 전 한국 축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추억을 주는 듯하다.

-- 다음에 한국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은 생각도 있나.

▲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한국에는 나보다 젊고 유능한 지도자가 많다.

나에게 요청도 오지 않겠지만 오더라도 생각은 물론 욕심조차 없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 재계약을 한 만큼 나의 축구 인생을 베트남에서 마무리하고 싶다.

-- 계속해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쉽지 않은데.
▲ 베트남 선수들은 장단점이 있다.

전체적인 전력은 한국이 낫지만 베트남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에게 없는 정신적인 부분이 있다.

그런 부분을 극대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쉼표 없는 도전자 박항서 "지난 일은 추억…도전은 감독의 인생"
-- SEA 결승전에서 퇴장당했는데 베트남 팬들은 칭찬을 해주고 있다.

▲ 아마도 부모님들이 공부 잘하는 자식은 조금 잘못해도 예쁘게 보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퇴장은 절대 좋거나 정당화될 장면은 아니다.

잘못했다고 팬들에게도 얘기했다.

베트남 대표팀 감독으로서,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일할 때 품격을 높이려고 노력하고 있다.

-- 내년 1월 AFC U-23 챔피언십에 나서는 각오는.
▲ 작년 중국에서 열린 대회는 부임한 지 3개월 만에 선수들 이름도 잘 외우지 못하고 출전했는데 운이 좋아서 준우승까지 했다.

제가 베트남에 와서 처음 성과를 낸 대회여서 기억이 많이 난다.

이번 대회는 내년 도쿄 올림픽 출전권이 걸린 대회여서 베트남 팬들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다.

조별리그 통과도 쉽지 않지만 준비를 잘하겠다.

-- 베트남어는 늘었나.

▲ 베트남어가 배우기 쉽지 않다.

인사 정도나 훈련 때 필요한 용어 정도 사용한다.

아직 일반 사람들과 베트남어로 소통하는 것은 어렵다.

쉼표 없는 도전자 박항서 "지난 일은 추억…도전은 감독의 인생"
-- 손흥민(토트넘)이 터트린 '원더골'을 보셨나.

▲ 베트남에서도 손흥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일부에서 네덜란드 헤이런베인에서 뛰는 도안반하우와 손흥민을 비교하는 사람도 있어서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얘기했다(웃음). 손흥민은 정말 자랑스럽고 대단한 선수다.

하이라이트 영상으로 봤는데 저렇게도 골을 넣을 수가 있구나라고 감탄했다.

손흥민 아버지는 잘 알지 못해도 같이 축구를 했던 세대여서 훌륭한 자식을 둬서 부럽기도 하다.

손흥민은 한국의 보물이다.

국민과 언론이 잘 관리해줘야 한다.

축구 선배로서 자랑스럽다.

베트남에서도 손흥민 이야기가 나오면 어깨를 쭉 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