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윤 칼럼] DJ의 '국민기초생활보장' 어디로 갔나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가 도입된 지 올해로 20년이다.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 시행됐다. 의식주뿐만 아니라 기본적인 문화생활까지 국가가 보장했으니 ‘복지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 불릴 만했다. 당시 주무부처였던 보건복지부 최선정 장관은 “복지를 하는 사람이라면 꿈의 제도라 할 만한,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제도”라고 했다.

하지만 요즘 이 제도를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은 찾기 힘들다. 정치권에서 특히 그렇다. 제대로 집행되는지 들여다보려는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의 관심은 국민의 눈길을 확 끄는 새 복지제도 도입이다. 노인들의 삶이 고단하니까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청년들이 실업의 고통을 겪고 있으니까 청년수당을 신설하고,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동수당을 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돈들은 그러나 빈곤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초연금이나 청년수당처럼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원금을 받으면 최저생계비 지원액이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고교 무상교육도 마찬가지다. 극빈층과 차상위계층은 이미 교육비 지원을 받고 있다.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이 문제다.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다문화 가정 자녀, 학교에 가더라도 기초 학습이 안 돼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탈북 청소년, 가족과 떨어져 사는 홀몸노인들은 계속 방치되고 있다. 정작 혜택을 받는 쪽은 중산층과 고소득층이다. 직원들에게 자녀 교육비를 지원하는 기업도 수혜자다.

정부는 지난달 말 국무회의에서 2020년 예산안 편성지침을 확정했다. ‘확장적 재정지출’을 하겠다고 방침을 정했다. 내년 국가예산은 올해보다 30조원 이상 늘어난 500조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3년 만에 100조원 늘어나는 초(超)슈퍼 팽창 예산이다. 이 중 복지예산은 180조원 정도로 추정된다. 전체 국가예산의 3분의 1을 넘는 엄청난 규모다.

복지 항목도 매년 새로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아동수당, 올해 고교 무상교육이 신설됐다. 내년에는 저소득 실업자에게 월 50만원을 6개월 동안 지급하는 실업부조가 새로 도입된다.

빈곤층에 도움을 주려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적극 활용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원 대상이 ‘최저생계조차 유지하지 못하는 저소득층’으로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수혜자를 늘리고 싶다면 최저생계비 기준을 올리거나, 대상자 범위를 확대하면 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이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별 관심이 없다. 이미 도입한 제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표’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빈(貧)과 부(富)의 개념도 정치적으로 오용(誤用)된다. ‘1% 부자와 99%의 가난한 사람’이라는 정치공학적 접근이다. ‘극소수 강남 집부자들에게 세금을 중과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몰아간다.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非)강남 주택보유자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편가르기 여론몰이다. 집이 아예 없는 진짜 빈곤층은 여기서도 소외된다.

예산과 정책의 성과가 거꾸로 가는 경우도 있다. 저출산 관련 예산이 대표적이다. 저출산 대책 기본계획을 내놓은 2006년부터 13년간 152조원을 썼는데도 합계출산율(0.98명)은 지난해 세계 처음으로 1명 밑으로 추락했다. 지원 방식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되짚어보는 것이 정상적인 판단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은 여전히 저출산 대응 예산을 늘리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올해 저출산 대응 예산 8992억원 가운데 94.7%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정부가 돈을 준다고 해서 애를 낳겠다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돈을 뿌려 다수의 표를 얻겠다는 천박한 민주주의가 복지 포퓰리즘이다. 쇼핑중독 환자처럼 돈을 쓸 곳을 계속 찾아다닌다. 신상품 사들이듯 매년 새 복지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그렇다. 심각한 단계의 복지중독증 환자다. 김대중 대통령이 최대 치적 중 하나로 꼽은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가 기억 속에서 희미해진 것도 그 징후다. 국가 파탄의 길로 이미 접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hyunsy@hankyung.com